김민재(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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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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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코치 시절(우측), 왼쪽은 함께 부임한 정명원 코치

롯데 자이언츠
김민재(Min-Jae Kim)
생년월일1973년 1월 3일
출신지부산광역시
학력중앙초-경남중-부산공고
포지션내야수(유격수, 2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1년 롯데 자이언츠 신고선수
소속팀롯데 자이언츠 (1991 ~ 2001)
SK 와이번스 (2002 ~ 2005)
한화 이글스 (2006 ~ 2009)

1 소개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선수, 전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kt wiz 수비코치. 현 롯데 자이언츠 코치

1973년 1월 3일생. 포지션은 유격수, 2009년에는 2루수.

수비의 귀재

그리고 KBO 리그 역사상 FA 신청 2번으로 3팀에서 뛴 유일한 선수[1]

통산기록을 보면 평범하지만 FA직전시즌에는 짭짤한 성적을 올리고 준수한 계약을 이뤄낸 원조 FA로이드 수혜자.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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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부산공고 출신으로 1991년 롯데 자이언츠(고졸 출신)에 입단하여 1992년에 롯데의 V2를 경험.[2] 3년차인 93년 주전 2루수인 박정태가 무려 2년을 날려먹은 엄청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주전 2루수로 기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부턴 주전 유격수 박계원이 군복무를 하게 되어 신인 김종훈에게 2루수를 넘겨주고 주전 유격수로 출장하기 시작하며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통산 타율이 2할 5푼이 안 되지만 팀 배팅에 능하고, 리그 정상급의 견고한 수비가 장점인 선수로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다.하지만 KBO 통산 실책 1위 그점을 높이사 강병철의 양아들의 소리와 함께 1군 주전으로 뛰게 되었고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1회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나 올림픽, 아시안 게임 국가 대표로 많이 발탁되었다. 삼성김재걸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히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전에서 3루까지 무리해서 진루한 것이 가까스로 세입이 되었는데 이때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는 일본팀 3루수와 같이 그 표정짤방급이라 최훈의 WBC카툰에도 기합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재조명되었다.

출장 경기 수로 치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였다[3]. 또한, FA 계약으로 팀을 두 번이나 이적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4] 고졸 출신의 선수가 뛰어난 자기 관리를 하면 이 정도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수.

롯데 팬들에게는 진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데, 1995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맹타를 휘두르며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7차전 연장 11회에서 결승 2루타를 쳐냈기 때문이다.[5] 또한 전준호와 더불어 가장 오래 리그에 남았던 92년 우승의 멤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92년도 포스트시즌때는 2경기 대수비로 나온게 전부지만...[6] 99년도 포스트시즌 때 동영상은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참고. 그래서 김민재가 롯데를 떠나 다른 팀에 있었을때도 사직구장에 가면 한잔 걸친 아재들이 "김민재는 (언제나)롯데꺼!"라고 외칠 정도였다.그리고 15년 뒤에 실제로 롯데에 코치로 복귀하며 롯데꺼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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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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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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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2001 시즌이 끝나고 첫 FA 자격을 얻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7][8] 2003 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4위팀을 KBO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 1회초(…)에서 김진우를 상대로 포스트시즌 최초 홈스틸까지 뺏어내기도 했다.

2004 시즌에는 9연타석 안타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2013년 7월 LG 이병규가 NC전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10연타석 안타를 때려내면서 깨졌다.

2005 시즌이 끝나고 다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다. SK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화에서는 코치직 보장이라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적했다고 한다.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이후에 타격 스탯은 낮으나 돌글러브 이미지가 강했던 한화 내야에 큰 힘이 됨으로서 팀 수비 안정화에 공헌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타격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김태균-한상훈-이범호-김민재로 이어지는 철벽내야를 구축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초대형 계약도 아니었기에[9] 숨겨진 FA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2009시즌이 끝나면 세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제 슬슬 나이를 먹어서 기량이 노쇠화되고 있으므로 다시 장기 계약이 힘들 것 같았고, 본인 스스로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점점 비켜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 코치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2010년 코치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0년 8월 6일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그의 은퇴식이 조촐하게 펼쳐졌다. 오랫동안 꾸준한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은퇴식을 할 정도의 레전드도 아니고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은 기간이 4년 밖에 안될 정도로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란 점에서 한화 구단의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성적만 잘 나오면 참 좋은 구단일텐데….

마침 그 날의 상대팀이 자신이 데뷔한 팀이자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였다. 이 날 경기는 롯데가 한화를 11-3으로 개발살냈는데, 고향팀이자 친정팀인 롯데의 승리를 축하했을지, 아니면 현 소속팀인 한화의 패배를 아쉬워 했을지….

3 지도자 시절

3.1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은퇴하자마자 별다른 연수 없이 한화 이글스의 수비코치, 작전코치, 주루코치 등 요직을 맡고 있는데 그야말로 최악이다. 3루에서 주자에게 냅다 팔을 돌려서 홈에서 주자가 비명횡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한화 루상횡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한화 선수들의 수비 능력은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다.

한화팬들로부터 무뇌 코치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으며, 조경택, 정민철과 세트로 물러나야 할 코치진의 암세포로 찍혔다.

결국 종범갑이종범이 주루코치로 부임하면서 2012시즌 종료 후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3.2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2012년 10월 23일 문동환, 강성우와 함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갔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 시절 최악의 코칭실력, 전임 주루코치이자 LG 트윈스로 옮긴 김민호 코치의 업적 때문에 두산 팬들은 김민재의 영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중이다.[10] 다행히 2013년 시즌 무난한 코칭 능력을 보여 주면서 비난 여론은 많이 잦아진 상태.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그 여파로 조원우 외야수비코치와 함께 사의를 표명하였다.

3.3 kt wiz 코치 시절

12월 16일 정명원 코치와 함께 kt wiz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SK 선수 시절 조범현 감독과 함께 한 인연으로 보인다.

3.4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2016 시즌을 끝으로 kt wiz 조범현 감독이 팀을 떠났고, 친분이 두터운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과[11] 그의 부름을 받은 김원형 코치의 설득에 2017 시즌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로써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에는 15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그대로 수비코치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4 역대 성적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1롯데 자이언츠1615.13320001000.133.133
19928296.1771721031103.219.202
1993104253.261665432230223.348.320
199498248.246619333027725.343.310
1995122325.2157014413237541.292.299
1996115302.2427311343133631.338.310
1997114289.23267161221211119.315.278
1998120323.23877162543361333.347.306
1999130389.272106201653541835.375.328
2000133382.24995103333471442.314.322
2001105335.30110114123748628.367.352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2SK 와이번스131488.2581262131250511537.387.308
2003129369.21178161436431448.293.299
2004129435.260113131440571127.322.300
2005125440.277122190237582048.334.346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6한화 이글스121375.21179170527411135.296.277
2007118395.27310817064743735.362.332
2008114357.24186130535261332.319.303
2009105272.2065611142933128.298.280
통산(19시즌)21116088.24715032442971607696174570.331.308

5 기타

  •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종범 선수의 말에 의하면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전에서 주자일 때 유격수를 보던 데릭 지터에게 I like you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터는 Me too로 응답, 흠좀무. 이에 대해서 김민재 자신은 사실 "I like your play"라고 말하고 지터도 이에 대해 응답한 건데 이게 와전되어서 동성애자라고 몰릴 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종범은 그거나 저거나 마찬가지라며 시치미를 떼었다(…).
  • 롯데 팬을 제외한 마구마구 유저들, 특히 마구마구 갤러리에서는 거의 공공의 적 수준으로 까인다. 그냥 꾸준히 선수생활 오래 뛰었다는 점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커리어에, 무엇보다 롯데의 프랜차이즈라 하기에도 애매한 김민재가 느닷없이 롯데 자이언츠의 하점달린 유격수 레전드 카드로 나왔기 때문. 이 카드의 등장으로 창단 이래 언제나 구멍으로 평가되던 롯데계열 덱의 유격수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으며, 거기다 통산 기록과는 한없이 위화감이 느껴지는 능력치를 말 그대로 퍼받아 11롯데 세트덱과 같은 롯데계열 세트덱에 넣으면 충격과 공포급 스탯이 되었다. 하도 까이다 보니 마갤에서는 통산 시즌 기록을 한 시즌 기록으로 보고 무려 70-170 클럽에 가입한 엄청난 선수라고 칭송받는 중 한때는 타석에 해당 카드가 등장하면 김민재 개X끼가 챗창에 도배되기도... 시간이 좀 지나서 그보다 못한 선수들마저 당당하게 하점달린 키스톤 레전드로 나온 지금은 그런 과격한 표현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런 자격미달 레전드의 시조(...)인 탓에 등장 때마다 사기소리 듣는 것은 여전하다.
  • 위에서 까인 이유 중 하나는 '시즌 중 준수한 기록을 달성'했다는 척도로 여겨지는 레어 카드가 현역시절을 통틀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은 선수가 뜬금없이 레전드 카드를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마구마구에서는 2차 재평가 때 드디어 01김민재의 레어카드를 추가시키고야 만다. 근데 그게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유일한 유격수 레어카드이기도(...). 게다가 그 레어카드에 팀케미스트리(=하이점프캐치, 대신에 단일덱, 올스타덱에서만 사용가능)가 달려 있어 레어마저 퍼주냐며 온갖 악담을 들었지만, 그 해 도루수가 적었던 관계로 스피드 책정이 낮아 똥차 취급을 받으며 롯데덱의 필수중 필수 소리를 듣는 레전드 카드에 비해 말 그대로 찬밥 신세에 있다.
  • 롯데 시절 결혼하기 전까지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사직의 아이돌(?) 스타였다. 특히 96년 TV 중계 당시 '민재 오라버니 열녀모임'이라는 피켓을 든 여자 고등학생이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흠좀무(...)
  1. 홍성흔도 FA 2번 모두 소속팀을 바꿨지만 두번째 FA때는 친정팀 두산으로 복귀한 것이다
  2. 사실, 이 해에 롯데의 주전 유격수는 박계원이었다. 김민재는 플레이오프 2경기에만 대수비로 출장한 것이 1992 포스트시즌 출장의 전부이다.
  3. 첫 번째는 바로 양준혁
  4. 이후 홍성흔이 2009년 두산 베어스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2013년 롯데에서 다시 두산으로 FA 이적을 하면서 더 이상 유일은 아니게 되었다.
  5. 실투를 잘노린 경우가 아니라 뱀직구를 순수하게 기술로 쳐냈다. 이후 SK 시절에도 당시 리그를 삼켜버린 조용준의 하드 슬라이더를 쳐낸적이 있을 정도. 다른건 몰라도 슬라이더 하나는 탁월하게 공략했다.
  6. 2009 시즌이 끝나고 두 명 다 은퇴했다.
  7. 2001 시즌에 커리어에 유일한 3할을 달성했다. FA로이드의 대표적인 예.
  8. 이 당시의 일화. 프런트가 자신과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깨닫고 고민 끝에 롯데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김민재는 후배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당시 후배였던 박기혁, 조성환, 신명철 등의 후배 내야수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팀을 떠날 것을 이야기하면서 "너희 앞길을 막는 것 같아 미안했다." 라고 하면서 롯데를 부탁한다고 했고, 후배들도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중 한 명이(대체로 신명철이라고 알려져 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기뻐해 열이 받았었다고 한다.(…) 속으로 '뭐 이런것들이 다 있노.' 라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롯갤에서는 잠시 '뭐 이런것들이 다 있노.' 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9. 계약금 5억, 연봉 2억, 옵션 1억.
  10. 게다가 이 셋은 물론이고 롯데에서 옮겨 온 조원우 외야수비코치까지 합하면 김태룡 단장과 같은 부산광역시 출신이기 때문에 낙하산, 인맥 야구로 팀이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 높아지고 있다. 물론 강성우 코치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 코치의 능력을 인정받아서 까이지 않았지만...
  11. 둘 다 같은 부산광역시 출신이고, SK 시절 한솥밥을 먹은 적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민재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