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모두가 저절로 행복해질까?
경제학의 ‘아버지’들은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듯하다. 애덤 스미스는 수요와 공급을 움직이는 자율적인 힘인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기면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쟁 시장은 개인들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도록 만든다며 개인의 이익 추구는 이로운 것이라고 여겼다. 이기심이 가진 구원의 힘을 믿은 토머스 R. 맬서스는 인구의 과잉 가능성만을 걱정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노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그런 걱정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영국의 출산율이 감소하자,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지닌 효율성을 찬양하던 알프레드 마셜은 여성에게 높은 임금을 주면 아내나 어머니의 의무를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케임브리지 교수로 재직할 때 여성의 입학을 거부했다.
‘그 아비의 그 자식’
자유주의 고전 경제학에 반기를 들고 노동 가치론을 주창하며 ‘경제학 비판’을 한 마르크스도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다른 형식의 생산은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 점에서 ‘그 아비의 그 자식’이었다. 여성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데 쏟아 붓는 시간과 노력을 사회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에도 경제학의 아버지와 아들들은 여전히 시장의 확장과 더불어 생긴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가족을 이기심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곳으로 낭만화하며 여성은 남성보다 더 이타적이라는 관념을 강박적으로 신봉한다. 가정과 시장이 각각 철저하게 이타심과 이기심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오랫동안 경제학은 사랑과 이타심이 어떻게 경제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가슴’에 기댄‘보이지 않는 손’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매사추세츠대학 경제학 교수, 대중경제학센터 상임경제학자)가 쓴 경제 에세이, 보이지 않는 가슴: 돌봄 경제학 Invisible Heart: Economics and Family Values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맹신하는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랑・의무・호혜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기대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남녀는 법 앞에 평등하나 남자보다 여자가 노약자를 돌보는 일을 하리라는 문화적 이중 규범의 명백한 예가 바로 주류 경제 이론이다. 생산적인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감소시키도록 고안된 체계적 폭력(전족, 퍼르다, 성기 절제, 가정 폭력 등)은 생산성을 낮추고 종속을 강요하고 여성에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우선시하도록 만들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수단인 동시에 돌봄 노동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종속이 늘 양질의 돌봄을 낳는 것은 아니며, 돌보는 이의 긴장, 분노, 격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진전으로, 강제되고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비시장의 돌봄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시장으로 나오면서 가부장적 질서는 부분적으로 와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여성에 의해 싸게 공급되어 왔던 돌봄 노동의 양과 질은 시장의 경쟁 압력으로 위기를 맞고 있고, 누구도 공짜로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 돌봄 노동의 비용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최소한의 이타주의가 없이는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기에 서로를 돌보는 책임 내용과 강제 방식에 대한 합의와 결정이 필요하며 그에 걸맞는 경제 이론이 요청되는 때이다.
「I부 돌봄 경제학」에서는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 모든 사람이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보수 경제학의 가정들의 정체를 조목조목 파헤친다. 어떻게 사랑・의무・호혜 등이 시장의 작동에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보여주며, 돌봄 노동에 드는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돌봄 서비스의 질을 감시하고 개선할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I부 좋은 정부」에서는 산업 사회를 거치며 가족과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갈등과 보완의 두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한다. 남을 더 돌보고 같이 돌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해결책이며, 인간의 능력과 자질에 투자하는 비용을 남녀 간에 그리고 가족과 국가간에 공평하게 효율적으로 할당할 수만 있으면 괜찮은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III부 진퇴양난」에서는 심화된 국제 경쟁의 영향이 가족과 국가에 함축하는 바를 고려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구태의연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의무, 성취와 돌봄을 조화할 창의적인 방법 강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을 통해 수요 공급이 충족될 수 없는 돌봄 노동이 있으며, 경제를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그런 돌봄이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장 밖 돌봄 노동과 시간
이 책은 경제학의 연구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며 ‘경제적인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급진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희소한 자원의 분배를 연구 대상으로 하고 화폐의 흐름과 그에 상응하는 시장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경제적 성공과 복지의 척도로 간주하는 주류 경제학과 달리, 돌봄 경제학은 시장 안과 밖에서 공급되는 돌봄 노동을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한 요소로 본다.
지은이가 ‘가족 가치’를 이야기할 때 혈연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에서 먼저 ‘부부, 자녀 등 가족 먼저’의 가족 이기주의를 떠올리기 쉽다. 이 점을 경계한 지은이는 가족 가치는 ‘사랑을 주고 돌보고 서로를 지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 가족 가치가 인정되고 사회로 확대되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개별 가족 구성원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와 위험을 줄임으로써 가족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대신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며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비용 삭감의 경쟁적 시장 압력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예방하여 양질의 돌봄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