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것들을 위한 변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 두꺼비, 거미, 해파리와 같은 독毒을 가지고 있는 생물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독성생물들은 왜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이 생물들에게 독을 가지도록 만들었을까요? 그렇다면 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을 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조차도 지나치다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1g으로 1천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하는 치명적인 미생물 독소인 보툴리누스 독소는 아주 적은 양을 정확하게 사용하면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에 효과적이고 미용에도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은 모두 나쁜 것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은 다분히 인간들의 주관에 따라 구분되어 왔습니다.
사람이나 포유동물에게 치명적인 작용을 하는 물질도 곤충이나 연체동물에게는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 또 하이에나 같은 청소동물이나 코모도왕도마뱀 같이 사체를 먹는 동물들은 치명적인 독소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독인 것들이 어떤 동물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먹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구분이,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우리가 독에 대해, 독을 가진 생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을 가지기 위해서는 큰 대가가 따릅니다.
초록으로 뒤덮인 코스타리카 정글에는 눈에 띄는 작은 빨간색 개구리, 딸기독화살개구리가 있습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는 빨간색, 다리에는 마치 청바지를 입은 듯, 선명한 파란색 때문에 ‘코스타리카 블루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개구리는 독을 가지고 있어 포식자로부터 자유롭지만 그 대가로 작은 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작은 몸 덕분에 다른 개구리처럼 많은 알을 낳지 못하고 한번에 3~5개의 알을 낳습니다. 또 그 적은 수의 알을 잘 키워내기 위해 다른 개구리들과는 달리 양육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독이 궁극의 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숲에는 죽은 곤충,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폭탄먼지벌레라는 청소부딱정벌레가 있습니다. 1센티미터 남짓 한 폭탄먼지벌레는 작은 몸 안에 천연의 화학무기공장을 갖고 있어 개구리나 두꺼비를 만나면 열과 냄새를 동반한 독가스를 쏘아 공격합니다. 먹이도 풍부하고, 수백 배나 큰 포식자를 물리칠 수 있는 폭탄먼지벌레지만 아무리 독가스를 연달아 쏘아도 고슴도치만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식물과 동물은 독을 매개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구에 생물이 나타난 이후 모든 생물은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가시나 껍질 따위의 물리적인 방어 능력과 독과 같은 화학적인 방어능력을 키워 왔고 동물들은 식물들의 공격에 적응하거나 오히려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왔습니다.
코알라 어미는 새끼에게 제 똥을 먹입니다. 유칼립투스라는 독성식물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코알라입니다. 커다란 발톱으로 나무에 매달리는 것 말고는 특별한 재주가 없는 코알라는 다른 동물들과의 먹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도 먹지 않는 유칼립투스를 먹이로 선택했습니다. 코알라의 장에는 유칼립투스의 독성을 분해해줄 미생물이 있어,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부작용 말고는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코알라에게는 이 미생물이 없습니다. 코알라 어미는 제 똥을 먹여, 새끼가 유칼립투스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길러냅니다.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독을 사용하고, 동물은 그 독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독은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의 생태계는 엄혹한 자연 속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형을 유지하던 독의 생태계는 교란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탕수수두꺼비는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사탕수수두꺼비의 강력한 독에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동물들은 끔찍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미의 습지에 살던 그들은 어떻게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탕수수 농장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사탕수수밭의 해충, 딱정벌레를 퇴치하겠다고 도입한 사탕수수두꺼비, 인간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외래종의 유입은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던 독의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어설픈 인간의 개입은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독성생물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습니다. 단지 생존을 위해, 번식을 위해 독이 자연선택 되었고 다른 생물에 비해 작거나 약하거나 느린 이들은 대가를 치러가면서 독을 이용하여 생존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에게 독은 결코 목적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생물들이 독을 가지게 된 많은 진화적 과정들, 그리고 독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과정들이 수수께끼입니다. 하지만 수수께끼가 많은 생물들일수록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독이 주는 독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함께 발휘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