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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카오 역사 지구

[ Historic Centre of Macao ]

요약 마카오(Macao)는 국제무역 발전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부유한 항구이다. 1999년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는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의 통치를 받았다. 역사거리와 주거 지역, 그리고 포르투갈과 중국식 종교건물과 공공건물들이 있는 마카오 역사지구는 동양과 서양의 미적·문화적·건축적·기술적 영향력이 만나는 독특한 장소이자 증거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와 등대가 있다. 마카오는 활발한 국제무역을 바탕으로 한 중국과 서양의 최초의 만남,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된 교류가 있었던 지역이다.
마카오 역사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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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국(China)
위치 마카오 특별행정구(Macao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좌표 N22 11 28.651, E113 32 11.26
등재연도 2005년
등재기준 (ⅱ), (ⅲ), (ⅳ), (ⅵ) *참고: 세계유산 등재기준
유산면적 16㏊
완충지역 107㏊

본문

마카오의 역사는 세계 무역로 개발과 관련해 처음 발전하기 시작되었다. 중국 영토에서 마카오가 가진 전략적 위치와 중국과 포르투갈 정부 사이에 성립된 특수 관계로 인해 마카오는 수세기 동안 문화, 과학, 기술, 예술,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포르투갈이 서로 가치를 교환하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지니게 되었다.

마카오는 450여 년에 걸친 서양과 중국문명의 만남과 발전을 보여 주는 건축학적 총체의 뚜렷한 예이다. 마카오의 역사로는 다양한 도시 공간과 혼합된 주거 지역의 건축학적 총체이며, 아울러 고대 중국 항구와 포르투갈 도시를 이어 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단계의 문화적 만남을 보여 주는 건물과 구조물이 서로 독특한 조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중국 남동쪽 해안에 있는 마카오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주강(珠江) 삼각주의 서쪽에 이르는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Taipa), 콜로아네(Coloane) 두 섬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오기 전에는 어부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었다. 1531년 포르투갈인들은 처음으로 중국에 와서 유명한 광둥(廣東)의 시장을 방문했다. 1557년에 이 지역은 동아시아 최초의 유럽인 영구 거주지가 되었다. 마카오라는 이름은 14세기에 세워진 마콕(Ma Kwok) 사원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당시에는 원주민들이 여러 작은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바라(Barra)와 파타네(Patane)는 바다를 무대로 삼는 상인들의 소규모 거주지였으며 나머지는 농경 마을이었다.

마카오의 첫 번째 핵심 지역은 역사적 거주 지역의 중심부이다. 이곳에 마카오 최초의 도로인 루아 디레이타(Rua Direita)가 있다. 이 도로는 남부의 고대 중국 항구에서부터 시작해 북부의 오래된 기독교인 거주 도시에 이르고, 이 길을 따라 포르투갈적인 것들과 중국적인 것들이 융합된 여러 건물과 도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바라(Barra) 광장의 마조각(媽祖閣, A-Ma Temple, 15세기)은 유교, 도교, 불교, 민간신앙이 함께 녹아든 중국 문화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 사원은 특히 중국의 춘절 기간 동안 이용되는데, 전각, 기념당, 사당, 자비당, 관음당, 불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 북쪽에는 대리석 바닥 위에 넓은 베란다가 조성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무어리시 배럭(Moorish Barracks, 1874)이 있다. 이것은 인도 고아(Goa)에서 모집한 치안 병력의 기숙사로 지어진 것이다.

릴라우(Lilau) 광장은 만다린 저택(Mandarin’s House)과 더불어 마카오 최초의 포르투갈인 거주지였다. 만다린 저택은 유명한 중국 문인이 소유하던 전통적인 중국인 거주지였다. 성 아우구스틴 광장은 1591년에 스페인 아우구스틴 사제단이 건립했으며 오늘날까지 부활절 행진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중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돔 페드로 5세 극장(1860)은 벽돌로 지은 신고전주의 건물이다. 바로크 양식의 성 요셉 신학교와 성당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타 지역 선교사역의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두 개의 층으로 된 신고전주의 건축물인 릴 세나도(Leal Senado)가 자리 잡은 세나도 광장은 주요한 공공광장이다.

인근에는 대성당(1850년에 재건축)과 마카오 교구 본부가 있는 대성당 광장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성 도미니크 성당(1587)과 오랜 중국 상점가가 있는 성 도미니크 광장이 있다. 이 광장에 있는 삼가회관(三街會館)은 마카오가 중국인과 포르투갈인 사회를 꾸준히 함께 존중해 왔다는 증거이다.

예수회 기념 광장(Company of Jesus Square)에는 세인트폴 유적이 있다. 이것은 성모성당(Church of Mater Dei)과 나차(Na Tcha) 사원이 지금보다 앞쪽의 위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시가지 성벽(1569)은 진흙, 모래, 쌀겨, 돌가루, 딱딱한 굴 껍질을 혼합한 특유의 재료로 세워졌다. 이곳 동쪽 마운트힐(Mount Hill)에는 해상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마운트 요새가 있다. 카모에스 정원(Camoes Garden) 지구에는 옛날 영국 동인도회사의 본부였던 성 안토니 성당, 유명 인사들이 많이 잠들어 있는 프로테스탄트 묘지가 있다.

두 번째 핵심 지역은 기아(Guia) 언덕에 있는데, 기아 예배당(1622)이 있는 기아 요새, 남중국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인 기아 등대(1885)가 있다.

등재기준

기준 (ⅱ) : 마카오는 중국 영토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 중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성립된 특수 관계로 인해 수세기 동안 문화, 과학, 기술, 예술,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포르투갈이 인문적 가치를 주고받은 지역이다.

기준 (ⅲ) : 마카오는 중국과 서양의 최초의 만남,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된 만남을 지켜보아 온 지역으로,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역상, 선교사, 그리고 다양한 학문 분야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교류의 영향은 마카오 역사 지구의 핵심 지역을 특징짓는 다양한 문화들의 융합에 나타나 있다.

기준 (ⅳ) : 마카오는 450여 년에 걸친 서양과 중국문명의 만남과 발전을 보여 주는 건축학적 총체의 훌륭한 사례로, 이는 고대 중국의 항구와 포르투갈의 도시를 이어 주는 역사적 항로에 잘 나타나 있다.

기준 (ⅵ) : 마카오는 오랫동안 서양 중국문명의 다양한 문화적·종교적·과학적·기술적 영향력을 서로 교환해 왔다.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상들은 중국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국 황제가 통치하는 봉건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적 공화국을 성립시켰다.

마카오 역사 지구 위치

관련동영상

마카오 역사 지구 UNESCO TV / © NHK Nippon Hoso Kyokai 출처: unesco@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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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역사 지구

마카오 역사 지구 © Serge Dos Santos / Author: Serge Dos San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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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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