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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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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View] '저유황' 디젤연료 확보 비상...'고유가 파동' 불러오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7.27 08:22

-IMO, 2020년부터 배출 규제 …황산화물 배출 줄인 연료 의무화 

-선박유, 전체 원유 수요서 5% 차지…"유가 200달러로 폭등할 수" 

-국내 정유사, 잇단 탈황설비 투자…SK 이노, 해상배합 저유황유로 수익성↑


▲(그래픽=에너지경제신문DB)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라는 공격적인 전망이 제기됐다. 이란, 베네수엘라 등 지정학적 위험이나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등 원유시장 내부의 요인이 아니라, 18개월 앞으로 다가온 국제해사기구(IMO) 유황 규제 때문이다.

지난 2016년 IMO는 해상 선박 연료유의 황함량을 현행 3.5%에서 2020년 1월부터 0.5%로 낮추는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최종 승인했다. 산성비를 유발하는 황산화물(SOx)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당장 2020년부터는 황함량이 0.5%을 넘어서는 고유황 제품들은 선박 연료유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IMO 규제 1년 앞으로…선박연료 총 원유수요 5% 차지

에너지경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에너지컨설팅 업체 PK벌리거 설립자인 필립 벌리거는 IMO 규제로 인해 2020년 저유황 디젤연료가 극심한 공급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빌리거는 디젤연료가 촉발한 유가 폭등이 끔찍한 경제붕괴를 야기하는 등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온다고 경고했다.

IMO 규제 발효까지는 1년 반 가량의 시간이 남았지만, 정유업계와 해운업계는 벌써부터 저유황 선택지를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유 능력으로는 전세계 선박들이 저유황유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저유황유를 생산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됐다.

벌리거 전문가는 "해운산업은 전세계 원유 수요의 약 5%를 차지하는데, 대부분의 선박은 유황 함량이 높은 중유를 태운다"고 설명하며 "전체 수요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저유황 디젤과 휘발유로 전환하는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강조했다.


◇ 저유황유가 유일한 선택지…전세계 정유소 절반 IMO 규제 충족 연료 생산 불가능

선박소유주들에겐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 △유황 제거를 위해 값비싼 스크러버(배기가스 정화장치)를 설치하거나, △디젤, 휘발유 등 저유황 연료로 바꾸거나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장치를 다는 것이다. 스크러버와 LNG는 전체 선박을 교체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지출비용이 요구되는 탓에, 흔히 가장 비싼 선택지로 간주된다. 자금이 풍부한 대형 선사들이 아닌 이상 저유황 연료로 교체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문제는 모든 원유가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중질 사워 원유(Sour Crude Oil) 같은 경우 유황 함유량이 높은 편인데, 별도의 처리과정 없이는 저유황 디젤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정유소들이 중질 원유를 디젤유로 가공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해양산업은 정제 과정 이후에 남은 연료들을 태워 선박 연료로 사용해왔다. 선박 연료는 원유의 가장 하단에 있는, 가장 값싸고 가장 더러운 연료로 알려져왔다.

벌리거 전문가에 따르면, 2020년까지 디젤 생산량은 도로 교통과 기타 다른 용도에 필요한 3% 외에 최소 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IMO 규제에 따라 7%가 전부 저유황유로 생산되야 하는데,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을 지 불확실하다. 결론적으로 IMO 규제가 큰 폭의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IMO 규제는 저유황유 가격을 폭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고유황유 시장의 변화도 야기할 전망이다.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해양 부문에서의 연료 수요가 사라지면, 고유황유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고유황유 가격 폭락으로 석유 발전소가 발전연료를 고유황유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보고서는 "역설적이게도, 선박연료 전환은 세계 유황 배출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염원이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결과만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디젤과 휘발유 부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정유소들의 절반 가량이 새로운 규정을 충족하는 연료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008년 고유가 시대 다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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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2007∼2008년에 펼쳐진 역사적인 고유가 시대가 다시 펼쳐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시 유가는 배럴당 160달러까지 폭등했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저유황 오일 부족의 결과였다. 석유업계는 서서히 1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제업자들은 저유황유를 얻기 위한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이는 유가를 100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보고서는 "10년 전에 펼쳐진 상황이 2020년 다시 발생할 것"이라며 "변화의 폭은 훨씬 광범위하고, 정유 산업은 준비가 덜 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 급등은 훨씬 극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벌리거는 한층 공격적인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2020년 규제가 본격 시행되면, 유가가 배럴당 16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이다. 경제 활동은 느려지고, 어떤 곳에서는 멈추고, 연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농부들이 재배 면적을 줄이면서 식품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공장과 상점에 물품과 자재를 공급하는 것은 느려지거나 중단될 것이다. 휘발유를 많이 소비하는 SUV 같은 경우 자동차 판매량이 급락할 것이다.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 중 하나 이상이 파산에 직면하거나, 파산 직전 상태에 이를 것이다. 미국, 유럽, 기타 지역에서의 주택 압류가 급증할 것이다. 2008년과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이 실업자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 "정유업계 유연성 과소평가…충분히 감당 가능" 반론도

그러나 올초 발간된 컬럼비아 대학의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의 보고서는 벌리거 전문가의 결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보고서는 "저유황 연료로 바꾸는 선박들은 정유산업에 혁신의 부담을 지운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것보다 정유회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저유황 연료는 ‘연료 하이브리드(혼합물)’일 것이기 때문에, 실제 정제 과정만큼이나 블렌딩 작업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디젤유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는 전망은 업계의 유연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요의 구조적 변화와 새로운 종류의 연료 혼합물이 출현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벌리거와 컬럼비아 대학 보고서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느 쪽이 정확한 지는 18개월 후에 알게 되겠지만, 국내 정유업계는 일단 후자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


◇ 국내 정유사 대응책 마련 분주…"저유황유 시장 선점 경쟁 치열"

국내 기업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우선 SK이노베이션은 IMO 규제 강화가 오히려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처 인근의 해상에서 단순 배합만으로 저유황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규모 수익을 내고 있는 만큼, 내년에도 충분히 IMO 환경규제의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지난 2015년부터 싱가포르 현지의 초대형 유조선을 저장 탱크로 활용해 반제품을 최적 비율로 배합한 후 황함량 0.1% 수준의 저유황중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지역에서 선박유 수요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IMO 규제가 1년여 남았지만 미리 테스트 해보려는 선박 회사들이 늘면서 최근 이 지역 저유황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SK트레이딩은 매년 10만톤 가량을 시장에 공급한다. 작년 매출액이 6500만달러에 육박하는 고부가 사업으로 키웠다. 올해는 초저유황유(저유황 제품보다 황 함량이 낮은 고품질 제품, 황함량 0.001% 이하) 마케팅에 집중해 작년 5만4000톤에서 올해 10만톤까지 판매량을 2배 가량 늘릴 예정이다. 현재 싱가포르 내 초저유황유 공급 업체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센텍(Sentek) 등 2곳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고유황 연료유와 저유황 연료유의 가격 격차가 확대되면 탈황 설비 건설 덕에 수혜가 예상된다"며 "규제 정책이 구체화되는 2019년 SK이노베이션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정유업계는 저유황유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고유황유에서 황 성분을 걸러내는 탈황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다. SK에너지는 2020년까지 울산공장에 1조원을 투자해 탈황설비를 완공하기로 했다. 에쓰오일도 4조8000억원을 들여 고유황 중질유를 저유황 연료유와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할 수 있는 고도화 설비를 올해 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7만4000배럴, 15만 배럴의 고도화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제 효율을 높이는 고도화작업을 올해 안에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저유황유를 미리 사용해 보려는 선박회사가 늘고 있다"며 "저유황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유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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