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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박학다설] 국군 기무사의 뿌리

조주연

tbs3@naver.com

2018-08-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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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 *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8. 3.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서해성의 박학다설] 국군 기무사의 뿌리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폭염은 잘 견디고 계십니까? 건강관리 잘 하고 계시죠?

    ▷ 서해성 : 네.

    ▶ 김종배 : 너무 더워가지고, 정말. 네. 오늘 어떤 얘기,

    ▷ 서해성 : 더 덥네요, 사실은요. 보안사 일 때문에요.

    ▶ 김종배 : 보안, 기무사.

    ▷ 서해성 : 기무사 일 때문에,

    ▶ 김종배 : 보안사는 전두환, 지금 시침이 딱 거기서 멈춰 계십니다. 이번에 또 이름 바뀐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바뀐다고 그래서 본질이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수박에 그러니까, 아니죠. 거꾸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나.

    ▷ 서해성 : 그런 말을 흔히 하는데, 그래서 제가 사실 그런 방첩부대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탄생하게 되었는가, 그 얘기를 오늘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딱 맞네요.

    ▷ 서해성 : 오늘 또 마침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 방첩부대를 근원적으로 바꾸겠다.

    ▶ 김종배 : 해편. 작가시잖아요. 저는 솔직히 학교 다닐 때 국어공부 잘 했는데, 수학은 못 했어도, 해편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 서해성 : 잘 안 쓰는 단어이죠. 한자로 구성된, 해체하고 편성을 다시 한다, 그런 뜻인데요. 잘 안 쓰는 말인데, 그런 단어를 쓸 때는 정치인들에게 목적이 있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특히 그건 이제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이전부터 나왔던 해체 수준의 개혁, 그걸 강조하기 위해서 해편이라고 하는 단어,

    ▷ 서해성 : 사실 그런 걸 원하면서 이 방송을 준비했는데, 오다가 뉴스를 들으니까 해체하기로 했다고 얘기를 들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사실은요.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쭉 살펴봐야죠. 방첩부대, 방첩부대의 성질,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 겁니까?

    ▷ 서해성 : 방첩부대는 한국전쟁 이전 분단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그냥. 이 사람들이 했던 일은 일종의 사상 감별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공산주의하고 사회주의, 이런 걸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사상을 감별했고, 그리고 그런 사상에 오염되는 걸 전염병 취급을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문기술과 그리고 총을 든 일종의 사상의 의사 같은 역할들을 하고, 또 사형집행인 일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 앞에 이제 보안부대 혹은 방첩부대 앞에 서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 이념적 건강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 김종배 : 무서워라.

    ▷ 서해성 : 무섭죠.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그 사람들이, 그런데 이념적 건강성을 그 사람들이 임의로 그었습니다.

    ▶ 김종배 : 그렇지. 자기들이 그은 거지.

    ▷ 서해성 : 네. 그냥 자기들이, 그리고 대개 개인의 판단하고, 거의 개인적 판단에 가까웠죠. 그래서 그렇게 의심되는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그 조사란 관동군식 고문을 얘기하는 겁니다. 조사를 하고 나선 처형을 했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전염병처럼 표현되게 된 그 어원은 사실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파시즘들이 위험하다는 그런 의미로 이걸 사용했거든요. 가령 병균이라든지 오염이라든지 질병이라든지 그런 것으로부터 건강한 국가를 보호해야 된다.

    ▶ 김종배 : 막아내야 되는 대상이 파시즘이었던 건가요?

    ▷ 서해성 : 네. 파시즘이었는데, 이걸 그대로 이제 북한을 규정하거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규정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미국도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봉쇄하고, 접촉을 차단하고, 외곽을 강화하고, 이른바 건강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이제 질책하고, 사상을 검증하는 그런 일들을 했죠. 6.25 당시, 한국전쟁 당시에 사람들이 길거리에 걸어 다니려면 피난을 갈 때 꼭 필요했던 게 신분증이었습니다. 도민증이었죠. 도민증이 있어야, 없으면 이제 바로 데리고 갔죠. 소지품 검사를 했고, 그리고 사실은 액센트(accent)가 중요했습니다.

    ▶ 김종배 : 액센트는 뭐예요?

    ▷ 서해성 : 사투리를, 북한식 사투리를 쓰면 일단 의심받았습니다.

    ▶ 김종배 : 사상이 의심되는 대상이?

    ▷ 서해성 : 네. 북에서 내려왔으니까, 왜냐하면 5년간 북한 지역에서 살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 같이 의심받았던, 그런 것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정보를 조사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알고 있으니까 마치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12.12 같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번에도 기무사가 그런 계엄령 문건이 12.12 쿠데타하고 굉장히 유사한 그런 문건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럼 이 방첩부대의 기원을 어떻게 봐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크게 두 가지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부대의 창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하고, 두 번째 인맥 구성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거겠죠.

    ▶ 김종배 : 그럼 부대부터 한 번 살펴보죠.

    ▷ 서해성 : 네. 그렇게 하시죠. 48년도에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처의 특별조사과로 출범했습니다. 당연히 이건 미국 CIC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겁니다. 한국인이 그냥 했다기보다 미군이 이걸 먼저 하자고 그런 거죠.

    ▶ 김종배 : 미국 CIC라는 게 지금 CIA의 전신이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지는 않습니다. CIC는 군대 내에 있는 겁니다, G2 내에. 미국 군편체제가 G1, 그러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건 인사에 해당하는 거고요. G2는 정보를 얘기하는 거고, G3는 작전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형성이 된 게 아니라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G1이 생기고, G2가 생기고 했는데, G2의 그 산하에 그런 조사를 하는, 수사를 하는, 탐문을 하는, 간첩을 보내는, 도청을 하는 그런 부대를 CIC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영어로는 하이 인텔리전스 콥스(High Intelligence Corps), 뭐라고 해야 될까요? 고급정보부대, 직역하면 그런 거겠습니다만 고등정보부대, 이렇게 번역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그게 이제 우리에 와서는 방첩대라는 이름으로 간첩을 막는 부대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형성이 되었는데, 그 당시의 이름은 스페셜 인베스티게이션(special investigation)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얘기냐면 그 당시에는 탐정 개념으로 번역을, 영어를 요구했던 것 같아요.

    ▶ 김종배 : 그러네요. 인베스티게이션.

    ▷ 서해성 : 네. 그러다가 48년 11월쯤 되면 특별정보대, 그래서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그런 개념으로 변화를 했고요. 나중에 이제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방첩대가 되고, 그리고 나중에 특무대가 되고, 김창룡이 했던, 그런 부대로 점점, 그다음에는 이제 민주당 정부가 오면서 다시 육군방첩부대가 되었고, 68년도에 박정희가 육군보안사령부라고 이름을 붙였고, 그다음 77년도에 이제 육해공군에 있던 보안부대를 통합한 국군보안사령부가 되었고, 91년도, 90년에 있었던 윤석양 이병 민간인사찰 폭로로 해서 기무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가 되었다가 마침내 오늘 2018년 드디어 8월, 오늘이 며칠입니까? 3일입니까? 8월 3일 날 드디어 기무사가 근본적으로 개편되는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최초에는 미군들이 요구를 해가지고 최초의 선발요원은 33명이었습니다.

    ▶ 김종배 : 33명?

    ▷ 서해성 : 네. 33명이었는데, 그때 초대 대장은 박정희하고 동기생이었던 사람, 김안일이라는 사람이 초대였고요. 그런데 그렇게만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에 우리나라에 사조직들이 이런 간첩, 방첩 내지는 그런 것을 슬로건을 내세운 사조직들이 제법 있었는데, KDRK,

    ▶ 김종배 : 뭐예요?

    ▷ 서해성 : 대부분 다 처음 들으셨을 겁니다. Keep Dr.Rhee Korea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 김종배 : 뭐예요?

    ▷ 서해성 : 뭐냐면 한국 이 박사 보호, 이런 뜻이죠.

    ▶ 김종배 : 잠깐만요. 이 박사가 이승만 얘기하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이승만만 Rhee로 썼기 때문에 이건 명백하게 이승만 정치인을 얘기하는 겁니다.

    ▶ 김종배 : 이런 게 있었어요?

    ▷ 서해성 : 네.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관찰부, 코리아 리서치 브루(Korea Research Bureau), 이런 조직도 있었고, 방호국, 사정국, 통일사, 대한정치공작대, 이렇게 다 이승만의 사조직들이었는데, 그런 것들까지 같이 묶어서 외곽에 이걸 두거나 혹은 묶거나 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방첩대인 CIC 한국방첩대가 출범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그러면서 알다시피 이 사람들이 했던 게 군부대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사찰은 일상적인, 민간인 사찰이라고 표현할 필요도 없었죠. 그냥 주요 인물도 늘 조사했고, 그리고 웬만하면 그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였던, 그런 거였던, 물론 간첩수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던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최초에 설치되었던 CIC, 미군방첩대죠. 그건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부대가 미 24군단이었기 때문에 그 산하에 있었던 거고요. 당연히 거기에 G2가 있었고, G2 아래에 CIC가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문건이 한 10년 전에 나왔다, 그런 것이 바로 그게 G2보고서입니다. 그 G2보고서에서 일했던, CIC를 관리했던 사람이 쉴리라고 하는 사람, 중령이었습니다, 미군. 그런데 그 사람이 이제 거기에 김구를 표현했는데, 김구를 블랙 타이거(Black Tiger)라고 표현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참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미군이 볼 때는 블랙 타이거인 거예요. 그리고 김창룡은 스네이크(sneak).

    ▶ 김종배 : 뱀.

    ▷ 서해성 : 그러니까 자기들이 쓰면서도 안 믿은 거죠,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제 안두희를 자신들이 관리했다는 표현이 거기에 나옵니다. 안두희는 원래 자신들의 CIC의 인포머(informer), 정보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에이전트(agent)가 되었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리고 백의사에서 활동했다, 이런 것도 들어있는데, 바로 이제 이런 일을 여기 남아서 당시에 48년도에 공식적으로는 미군 CIC가 한국에서 철수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철수하지만 실제로는 남아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드라마에 맨날 자주 나오는 켈로부대, KLO부대. 코리아 리에이젼 오피스(Korean Liaison Office)라는 뜻인데, 그 켈로부대를 만들거나 혹은 북한으로 보내는 간첩, 그걸 인간첩보부대라 그랬는데, USAP, 우삽, 이렇게 표현했는데, 그런 것들을 길러내거나 그런 데 사람들을 보내거나 하는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 김종배 : 그럼 이렇게 출범을 했는데, 그럼 또 한 번의 분기점, 전환점이 여순사건이라고 봐야 됩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여순사건과 제주에 의해서 우리 분단체제가 실질적으로 완벽하게 체제를 갖추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바로 이때 이 성질을 특별조사과를 특별정보대, 아까 말했던 스페셜 인텔리전스 서비스(Special Intelligence Service)로 이제 이걸 개편을 합니다. 그러면서 박정희를 체포하는 숙군작업을 이때 진행하는 거죠. 숙군작업을 진행한 게 바로 특별정보대가 했던 그런 사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이때부터 잡아들이기 시작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는 한국전쟁이 터지지 않습니까? 그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보도연맹 처형 그리고 형무소 수용자들 대량학살 했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을 바로 이 방첩대가 수행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몇 명을 처형했는지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숫자를 처형했다. 수십만, 적어도 십만, 많게는 백만 정도까지 잡을 수 있는, 그런 걸 총괄적으로 기획하거나 집행하거나 감독하거나 감시했던 그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랬다가 한국전쟁이 나면서 50년 8월에 낙동강으로 밀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방첩대, 서울에 있는 방첩대 기능이 무마되니까 경남지구 방첩대를 가지고 주로 작업을 했고요. 그리고 잠시 서울을 수복했지 않습니까? 9월 28일 날 수복하자 다시 김창룡이 주도해가지고 점령기간 동안에 부역자를 색출하고 처형하는 그런 일을 했고요. 다시 평양으로 가서까지도 또, 평양에서도 방첩부대를 김창룡이 운영을 했고, 다시 우리가 1.4 후퇴 때 밀렸지 않습니까? 부산에 가서 또 그런 일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51년도가 되면 이제 한 400여명이 공식직원이 되고, 민간정보원이 공식적으로 190명 정도, 그리고 대개 5개 팀으로 나눠서 활동을 했고요.

    ▶ 김종배 : 33명으로 시작했다 엄청 커졌네.

    ▷ 서해성 : 네. 그리고 51년도 3월쯤 되면 HID가 여기서 분리됩니다. 그러니까 HID도 소관이었다는 걸, 이해가시죠, 그러니까? 얼마나 파워가 막강했을지, 그 당시에는 HID가 지금은 하이 인텔리전스 디비전(High Intelligence Division), 이렇게 말하는데, 그 당시에는 헤드쿼터 오브 인텔리전스 디태치먼트(Headquarter Intelligence Detachment)라고 이름이 영어 이니셜만 같지, 성격, 이름이 좀 바뀐 거죠, 그러니까.

    ▶ 김종배 : 우리가 HID 하면 흔히 북파공작부대 정도,

    ▷ 서해성 : 북파공작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분리되었다. 51년도에 하도 이 사람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니까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걸 해체하겠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그랬는데, 그 총괄했던 김창룡은 도리어 육군 특무부대장으로 승진을 하는, 그래서 대통령령으로 육군 특무부대 설치가 되었고, 실제로는 그러면서 육군참모총장보다 더 영향력이 센, 이런 조직이 되었는데, 그러면서 김창룡이 56년도에 죽었는데, 그때 그가 죽을 무렵에 우리 특무부대의 소속원이 4,083명이었습니다.

    ▶ 김종배 : 엄청 늘었네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전국에 27개 지부를 가지고 있고, 프락치, 그러니까 인포머들, 정보원은 몇 명이었는지 알 길이 없는 거죠.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지금 기무사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여러분, 청취자 여러분 들으시면 놀라실지 모르지만 이 사람들한테 긴 뿌리를 대고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성격이 고쳐지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그 말씀을 제가 드리려고 이 자료를 준비한 것이고요. 하루아침에 이게, 이 사람들이, 이런 체질, 이게 갑자기 체질이 나타난 게 아니고, 수십 년 전부터, 적어도 70년 전부터 이런 형태의 DNA를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제 정말 근본적인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는 그 방향이 정말 이런 걸 뿌리 뽑는 방향이어야 된다고 하는 걸 보강하기 위해서 이 방송을 지금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바로 그거죠. 조직에 아로새겨져있는, 70년 동안 아로새겨져있는 그 DNA가 하루아침에 뿌리 뽑힐 수 있겠는가? 이게 사실은 중요한 관심사가 될 것 같은데, 원조가 미군 CIC라는 거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CIC 이전에 미국이 1918년도에 시크릿 서비스라는 부대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정식명칭입니다, 시크릿 서비스가. 비밀, 뭐라고 해야 됩니까, 이럴 때?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여기서 서비스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는,

    ▷ 서해성 :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비밀부대를 이제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면 1917년에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국제간섭군이 최소한 17개 이상의 나라가 국제간섭군들이 시베리아를 점령합니다. 그때 일본군이 제일 많이 갔고, 두 번째로 많이 간 게 미군입니다. 바로 그 미군이 바로 방첩부대를 운영해야 되겠다. 볼셰비키적 내지는 코뮤니스트적인 혹은 소셜리스트적인 그런 인간들 가려내야 했다 해서 만들어낸 게 이제 CIC의 기원이 되는 시크릿 서비스입니다. 그렇게 됐던 거죠. 그러다가 1941년도에 진주만 공격을 당하면서 CIC를 본격적으로 이제 만들게 되었던 거고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특수임무부대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던 거고, 그러다가 한국에 한국전쟁 직전에 이제 CIC가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방첩부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왜 방첩부대라고 부르게 된 거예요?

    ▷ 서해성 :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뭐냐면 이게 이 방첩부대라 부른 시간은 49년 10월부터 50년 10월, 정확하게 12개월 동안 불렸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방첩부대라고 불리지 말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냐하면 워낙 방첩부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 한국의 집단학살, 대량학살을 주도했기 때문에 한국인들한테는 이게 방첩대라는 말은 일종의 DNA 혹은 무의식에 새겨진 거예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 방첩대가 지휘하는 그 사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노무현 정부 때 광범하게 조사했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문제, 상당부분의 그 상층에는 CIC가, 방첩부대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부대 편제의 역사를 살펴봤는데, 또 한 가지 인적 구성이 어땠는가, 이걸 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죠. 인적 구성은 사실 일제 관동군 헌병과 그 당시에 한국에 있었던 일제경찰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쓴 물이 나와서 방송을 못 하겠습니다. 그중에 상당수 일부의 사람들은 간도특설대, 일본말로 간토 토쿠세스라고 하는 이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왔는데, 간도특설대는 대략 한 1천명 미만 정도로 운영되었던 그런 조직입니다. 지금 연변 일대에서 활동했던 조직이고요. 간도특설대가 정말 일제, 한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 가끔 신문 같은 데 보면 나오는데, 간도특설대에 있었던 대표적인 사람이 백선엽이라는 사람이죠. 우리나라 육군참모총장을 했죠. 간도특설대 부대가를 제가 불러드리면 금방 이해가 가실 겁니다. 부대 노래를 말하는 겁니다.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 김종배 : 조선의 건아들아, 이렇게 나왔어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그리고 선구자의 사망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뭐냐면 선구자라는 말이 80년대 많이 불렀던 그 노래 있지 않습니까? 그게 원래 친일노래거든요.

    ▶ 김종배 :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선구자라는 노래?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일송정 푸른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선구자라는 그 말이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그게 바로 일본인이 만주에서 누구나 자발적으로 다 일어나서 일해야 된다는 뜻에서 그 선구자라는 말을 만든 거고요.

    ▶ 김종배 : 어떤 영화인지 제가 기억이, 독립투쟁 영화에 선구자 노래도 나오고 그러던데,

    ▷ 서해성 : 잘못된 거죠.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잘못된 겁니다.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자체로 보더라도 간도특설대가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것이고, 이 사람들 주요 임무는 조선인으로 구성된, 한국인이죠, 그러니까. 독립운동을 소탕하거나 그들을 감시하거나 혹은 그들이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습니다.

    ▶ 김종배 : 간도 밀정이었구만.

    ▷ 서해성 : 밀정보다 더한 거죠. 직접 처형도 할 수 있었고, 사람을 쏴죽일 수도 있었고,

    ▶ 김종배 : 그렇죠. 정보수집 정도가 아니었고, 그런데 이들을 좀 배제했어야 되는 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배제하자고 했던 사람이 당시 미군정 체제에 있는 경무부 수사국장 최능진이었습니다.

    ▶ 김종배 : 독립군 출신이라고,

    ▷ 서해성 : 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죠. 그런데 이때 그 위에 있던 사람이 조병옥이라는 경무부장이죠. 경무부니까, 이 사람은 수사국장이고, 이제 항의하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한 거예요. 일본경찰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프로잽(Pro-JAP), 프로재팬이라는 얘기죠. 친일파라는 뜻입니다. 프로잽이 아니라 프로잡(Pro-jab)이었다, 이렇게 말했어요. 프로잡이라는,

    ▶ 김종배 : 이게 말장난이야, 뭐야.

    ▷ 서해성 : 미국에서 공부했거든요, 이 양반이요. 그러니까 영어로 장난을 친 거죠. 프로 재패니스가 아니고 프로 잡이었다. 그러니까 직업인이었다는 거예요. 프로 직업인이었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이게 정말 교과서에 실려야 될 말이에요. 그리고 장택상은 경찰은 기술직이라 어쩔 수 없다, 처형해야 된다. 경찰이 기술직입니까? 하여튼 최능진은 그러고 이승만하고 맞섰는데, 결국 그러다가 나중에 51년도에 달성에서 처형되어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경찰을 쫓아내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당시 맞섰던 거의 유일한 사람, 최능진, 참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 김종배 : 김창룡 얘기 안 할 수 없잖아요.

    ▷ 서해성 : 그렇죠. 김창룡 얘기만 가지고도 사실 일주일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줄여서 말씀을 드리면 원래 만주국 수도인 신징, 우리말 한자로 읽으면 신경, 새 서울이다, 그 말이죠. 지금 지명은 장춘입니다. 거기에 있는 역무원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 서해성 : 네. 역무원이었어요. 그런데 일본인이 이 사람이 아주 일본말도 잘 하고, 잘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 소개로 일본헌병 보조원이었습니다. 프락치였다는 얘기입니다. 영어로 하면 프락치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포머였다는 거죠. 그러다가 헌병 이등병이 되었고, 그러다가 나중에 점점 일을 잘 하니까 이제 사복헌병이 되었습니다. 정탐원이었다는 얘기죠, 전문적인, 사복헌병. 그리고는 나중에 43년도, 44년, 45년도 동안에 50여개의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항일조직을 적발한 걸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50여개의 조직을 적발을 했다고요?

    ▷ 서해성 : 네, 50명이 아니고.

    ▶ 김종배 : 진짜 참, 일제는 엄청 좋아했겠네요.

    ▷ 서해성 :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없는 거죠.

    ▶ 김종배 : 총애했겠네.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우리가 전두환 체제 때 학생운동하면서 서클을 두 개에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50여개를 적발했다고, 이건 정말, 그만 얘기하겠습니다. 하여튼 46년도에 월남을 해가지고 계속해서 정보 분야에서 활동을 했고요. 그리고는 여순사건, 4.3사건, 박정희 체포, 그리고는 김구 선생 암살 배후로 했던 그런 사람이었죠. 그리고는 아까 말씀 잠깐 드렸었는데, 평양지구, 우리가 북을 점령했을 적에 평양지구 특무대장을 하고, 나중에 이제 이승만이 다리를 끊고 도망간 바람에 서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들을 시키거나 해가지고 이른바 부역자 색출할 때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리고 김수임 사건을 처형하는 것도 총책임자였고요.

    ▶ 김종배 : 이른바 여간첩 김수임 사건.

    ▷ 서해성 : 네. 현재로서는 거의 조작된 게 아닌가라고 보고 있고요. 사실 이제 시간이 없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1차 개헌이 발췌개헌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 계엄령이 내렸다 하는 얘기를 몇 주 전에도 방송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게 된 이유가 뭐냐면 금정산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무장공비가 나타났기 때문에 계엄령을 내린다, 이렇게 했는데, 사실은 그게 조직이었던 거예요. 바로 그걸 일으킨 사람이 바로 이 김창룡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국방부장관, 참모총장까지 다 아주 무시하다가 그런 과정에서 이 사람이 이제 사살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자기 부하들에게 혹은 자기 상관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같은 군인들에게 사살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56년도 1월 30일 날 처형당했는데, 사살 당했고, 권총 5발을 맞았습니다, 원효로에서. 그래서 이승만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적십자병원에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가서 현장에서 중장으로 추서했고, 애도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 김종배 :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됐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지 않습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국립묘지에 우리 김구 선생님 어머니이신 곽낙원 여사님과 거리가 한 300, 400m 떨어져있는 곳에 김창룡의 유해가 거기 묻혀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그 묘지명을 역사학자 이병도가 썼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게 무슨 이야기에요?

    ▷ 서해성 : 네. 이병도가 썼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이병도가 썼습니다. 그중에 한 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특히 동난 중에는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으로 맹활동을 개시하여 간첩, 오열,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만 5천명, 전시 방첩의 특수임무를 달성하였다.’

    ▶ 김종배 :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 서해성 : 이 묘비명에조차도 2만 5천명을 처형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처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글을 우리가 교과서, 우리 교과서를 만드는데 가장 기여했다고 하는, 친일문제도 있고 한, 하긴 합니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역사학자, 서울대 교수였던 문학박사 이병도가 이 글을 썼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우리가 이제 김창룡까지 이야기했는데, 사실은 특무대로 시작을 해서 보안사, 기무사라고 하는 역사에서 우리가 빼놓으면 안 되는 인물이 전두환도 있고, 또 양심선언 했던 윤석양도 있는데, 시간이 다 되어가지고, 이건 살필 시간이 없을 것 같고,

    ▷ 서해성 : 네.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 김종배 : 마무리를 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 서해성 : 네. 오늘 이 얘기를 할 때 우리가 정말 뺄 수 없는 사람은 윤석양이라고 하는 한 용기 있는 사병에 의해서 보안사의 성질이 많이 바뀌었다. 김대중, 김영삼, 그중에 대표적으로 당시 노무현 의원에 대한 엄청난 감시를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무현의 집 책상 위치까지 다 표시되어 있는, 어떻게 해서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그랬고, 그때 같이 드러났던 문건이 지금 이번에 친위쿠데타 성질하고 굉장히 비슷한 계획인 청명계획,

    ▶ 김종배 : 청명계획.

    ▷ 서해성 : 네. 그 당시 이미 만들었다는 게 같이 드러났었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 서해성 :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방송을 할 때는 세금 내는 자로서 참 슬픕니다. 납세를 우리가 하는 이유는 이런 일을 겪지 않고자 세금을 내는 것인데,

    ▶ 김종배 : 맞죠. 그렇죠.

    ▷ 서해성 : 정보기관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정말 슬픈 거죠. 저는 자신 있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정보기관은 스스로 변신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건 마치 전화기에게 ‘너 듣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보기관 이번에 대통령께서도 오늘 명령을 내렸습니다만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더구나 이번 발표된 내용 중에 면회객까지도 탐문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 김종배 : 수백만.

    ▷ 서해성 : 이미 민간인 사찰이지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께서 재직 중에 기무부대장하고 독대하는 일을 없앴습니다. 독대라는 말이 바로 무슨 얘기냐면 이승만이 김창룡과 만나서 정권을 주도하는 그런 일을 했다는 그런 뜻이죠.

    ▶ 김종배 : 기원이 그렇게 되는 거군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아야 된다는 겁니다. 뿌리가 잘못된 나무는 아무리 가지치기를 잘해도 근본이 달라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 정말 뿌리를 뽑아서 국민을 위한 국군정보부대로 거듭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갖습니다.

    ▶ 김종배 : 70년의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적기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박학다설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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