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요리 ‘쿠스쿠스’가 알제리·모로코 갈등 씻어줄까읽음

심진용 기자

이웃 국가지만 20년 넘게 국경 봉쇄 ‘앙숙’…지역 음식, 유네스코 인류유산 공동등재 추진

전통요리 ‘쿠스쿠스’가 알제리·모로코 갈등 씻어줄까

음식을 통한 평화와 화합은 가능할까.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마그레브(북서아프리카 지역) 3개국이 이 지역 전통음식 ‘쿠스쿠스(사진)’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것을 추진한다. 3개국 중에서도 알제리와 모로코는 20년 넘게 국경까지 걸어 잠근 오랜 앙숙이다. 쿠스쿠스가 두 나라 사이의 깊은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알제리 국립 사회문화인류학연구소(CNRPAH) 슬리마니 하치 국장은 지난달 23일 국영 APS통신에 “쿠스쿠스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마그레브 국가들의 공동 프로젝트”라면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조만간 각국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제리 일간 엘와탄은 “마그레브가 쿠스쿠스로 연합하고 있다”면서 이 전통요리를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두 나라의 화해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쿠스쿠스는 밀을 으깨고 쪄서 채소, 고기, 향신료 등을 곁들이는 마그레브 전통요리다. 나라와 지역마다 요리법이 다채롭다.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3개국은 오랜 기간 “쿠스쿠스는 우리가 원조”라고 다퉈왔다. 알제리와 모로코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특히 심했다.

알제리와 모로코는 사실 역사와 문화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사용하는 언어도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두 나라는 1994년 이후 지금까지 1600㎞ 국경을 걸어 잠그고 육로 왕래를 막을 만큼 사이가 나쁘다. 1963년부터 이듬해까지는 국경 문제로 교전해 서로 사상자 수백명을 내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관계개선을 이루는 듯했던 양국은 1994년 마라케시 폭탄테러로 다시 사이가 틀어졌다. 모로코는 마라케시에서 벌어진 테러의 배후에 알제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알제리는 이에 반발하며 국경 폐쇄를 단행했다. 이때 걸어 잠근 국경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다.

두 나라는 역사와 문화를 두고도 자주 부딪쳤다. 2016년 알제리가 마그레브 전통 대중음악 ‘라이’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단독 등재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특히 갈등이 컸다. 라이는 20세기 초 알제리 북서부 오란을 중심으로 성장한 음악이지만 모로코에서도 인기가 많다. 모로코는 알제리의 ‘독점’ 시도에 크게 반발했다. 알제리는 라이에 이어 쿠스쿠스까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단독 등재하려 했다. 라이 때보다 훨씬 더 격렬한 갈등이 예고됐다.

그러나 2016년 라이와 쿠스쿠스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단독 등재하겠다고 나섰던 CNRPAH가 태도를 바꿨다. 공동 등재로 방향을 틀면서 쿠스쿠스가 갈등이 아닌 화해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다.

CNRPAH 연구원 우이자 갈레즈는 APS통신에 쿠스쿠스의 역사적 뿌리는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할 수 없다면서 “같은 음식, 같은 전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쿠스쿠스가 마그레브 사람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엘와탄 인터뷰에서 쿠스쿠스에는 마그레브 사람들의 역사적 경험과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고 했다. 갈레즈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이를 되짚어 가는 과정에서 알제리와 모로코, 그리고 튀니지까지 마그레브 사람들이 간직해온 유대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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