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전에 따르면 민원인들은 “당장 검침일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거나 “검침일을 바꾸면 전기요금이 인하되느냐”고 질문 세례를 하고 있다. 입주민 민원을 받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오기도 하고 일반 주택 거주자는 직접 한전 지사에 찾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검침일은 매월 1차 1~5일, 2차 8~12일, 3차 15~17일, 4차 18~19일, 5차 22~24일, 6차 25~26일, 7차 말일로 지정돼 있다. 인구 20만명인 경기 구리시의 경우 한전 지사에 근무하는 검침 담당 직원은 28명이다. 워낙 소규모여서 구리시 안에서도 지역별로 7개 구간으로 나눠 검침을 돌아가면서 실시한다. 그런데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혹서기 전기요금을 줄이기 위해 월초로 검침일을 변경해달라는 요구가 집중될 경우 업무에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빗발치는 민원 속에 한전의 속내는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전자식 스마트계량기(AMI)가 설치된 ‘원격검침’ 가구는 지금 당장 검침일을 바꿔줄 수 있다. 2016년부터 전기요금 납부 편의를 위해 검침 선택권을 부여한 ‘희망검침일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원격검침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한전 직원들이 직접 검침을 나가야 하는 ‘인력검침’ 가구가 문제다. 특히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의 경우 올해 6월 기준 전체 검침 대상(1515만8000가구) 가운데 원격검침이 가능한 비중이 19.1%(290만8000가구)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전 본사에서는 각 지사에 공문까지 내려보냈다. 공문에는 “인력검침의 경우 고객 희망일과 검침순로를 감안해 고객과 ‘협의’해 검침일을 조정하거나 소비자가 검침 정보를 제출하는 것을 전제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오는 24일부터 모든 가구에서 검침일을 마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발표한 탓에 이를 일일이 설득하기도 벅차다. 그렇다고 검침 정보 제공을 개별 가구에 자율적으로 맡기자니 납부해야 할 요금을 줄이기 위해 사용량을 속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검침일을 변경해도 연간 전기요금 총액이 획기적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다. 검침일 변경은 1년에 한 번 가능하다. 이에 따라 계절별 전기요금은 ‘복불복’이 될 수 있다. 기존에 15일이 검침일이었던 고객이 1일로 검침일을 바꾼다면 혹서기(7월 중순~8월 중순)에는 전기요금 누진률이 감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15일로 검침일을 정하면 온전히 혹서기가 포함돼 사용량이 극대화돼 누진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이어지는 혹한기에는 1일 검침시 되레 요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한전은 2016년 전기요금을 분석한 결과, 검침일을 바꿔도 연간 요금 변동폭은 0.8%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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