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산'의 진풍경, '와' 소리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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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여행기1] 중원의 심장, 화산 정상에 서다

[오마이뉴스 강윤경 기자]

무더위 기세가 등등하던 7월 중순, 중국 샨시성(?西省. 섬서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을 찾았다. 당초 무더운 날씨로 여행이 힘들지 않을까 했던 염려와는 달리, 시안에 머물렀던 5일 간 보슬비와 옅은 안개를 실어오는 바람이 내내 이어졌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 특유의 건조함도 더위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게 한 이유였으리라.

중원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 유적지가 있는 도시 시안. 5천 년 중국 역사상 경제와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당(唐) 왕조(618년~907년)의 수도였던 장안(?安).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통하는 고대 문명의 교역로 실크로드의 시작점. 그 이름만으로도 시안을 여행할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화산(?山) 때문이었다.

중국 오악(五岳. 중국의 5대 명산. 泰山,?山,衡山,恒山,嵩山)의 하나이자 중화민족 태고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신비의 산. 샨동반도에서 뻗어나와 허난성(河南省), 산시성(山西省)을 굽이쳐 흐르는 황하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땅. 바로 이곳이 진짜 중국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시안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여를 내달리다 보면 차창 너머로 화려한 도시의 흔적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야트막한 산자락 곳곳에 제각기 크기와 모양을 달리한 덩치 큰 바위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화산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 이정표인 셈이다.

 화산 관광지 입구에서 보이던 화산의 모습
ⓒ 강윤경

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로 여행을 나선 여행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쉴새 없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니 주차장은 이미 수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다시 화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관광용 버스를 타고 30-40분을 달려야 비로소 등산로의 시작을 알리는 입구에 닿을 수 있다.

 등산로의 시작을 알리는 화산의 입구
ⓒ 강윤경

해발 2000m를 넘나드는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산세에 지레 겁을 먹을 법 하지만, 화산 등반은 오히려 등산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인 데다, 산세가 워낙 험하다 보니 등반이 가능한 코스는 동봉(?峰, 서봉(西峰), 남봉(南峰) 세 개로 제한이 되어 있다.

게다가 각 봉우리의 정상 부근까지 견고하게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어, 발 아래와 사방으로 펼쳐진 진귀한 경관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산의 정상에 가닿게 된다.

우리는 경관이 가장 아름답고 오르기 무난하다고 하는 서봉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을 따라 기다리기를 40-50분, 드디어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서봉은 케이블카 길이만 4km가 넘는다고 하니, 산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헤아려 보게 된다.

백작사(白雀寺)가 자리한 중간 기착 지점을 향해 천천히 고도를 높이던 케이블카가 정점에 올라서면 탁 트인 시야 너머로 광활하고 웅장한 화산이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낸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화산의 전경
ⓒ 강윤경

마치 삐걱삐걱 오르막을 향해 천천히 오르던 롤러코스터가 깎아지르는 듯한 내리막 코스를 향해 쾌속 질주를 시작할 때의 반전과 짜릿함이랄까.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화산의 진풍경에 그저 "와~"하는 감탄 외에 형언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약 7천 만 년 전부터 지반의 융기와 침식 작용을 거쳐 형성된 장엄한 화강암산의 일렁임에 잠시 넋을 놓고 있노라면, 한낱 미물인 인간은 위대한 자연의 숨결 앞에 그저 말 없이 고개를 떨구게 되는 것이다.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익히 서악(西岳)으로 널리 알려진 화산은,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가장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중화산(中?山)'이라고도 불린다. 예로부터 화산과 황하 유역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아온 민족을 일컬어 '화하족(?夏族)' 또는 '중화민족(中?民族)'이라고 불렀으니, 오늘날 중국의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中?人民共和?)' 역시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 설화의 주인공인 반고(?古)씨는 혼돈의 시대에 알에서 깨어나 천지(天地)를 개벽하고, 사후에 그의 사지(四肢)와 오장육부는 산천과 초목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화산은 그 가운데서도 반고의 발이 변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화산은 중국의 오랜 역사가 싹튼 중요한 무대임이 틀림없다.

그 장구한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어느새 서봉과 남봉으로 통하는 케이블카 종착지에 다다랐다. 잠시 목을 축이고 정갈하게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서봉으로 향한다.

 서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화산의 절경에 황홀하면서도 깎아지르는 화강암산의 산세에 아찔함이 더해진다.
ⓒ 강윤경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10분여 남짓 오르면 연화봉(?花峰)이라고도 불리는 화산 서봉의 정상에 서게 된다. 숙소를 떠난 지 장장 8시간 만에 화산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서고 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 끝이 제각기 높이를 달리한 산맥의 물결로 뒤덮여 있다.

내륙의 안쪽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와 북서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건조한 모래 바람 탓인지 운무와 황사가 뒤엉킨 자욱한 공기가 가득하다. 청량하고 탁 트인 정상의 풍광을 기대했던 바람에 다소 실망이 없진 않았다.

 서봉 정상에서 바라본 화산. 멀리 연무가 가득하다.
ⓒ 강윤경

어쩌면 그것은 유구한 시간의 줄기 위에 다단했던 제국의 흥망성쇠와 영욕이 끊이지 않았던 인간사의 질곡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묵직하고 단단하게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화산의 억센 기운에서 태고적 황하 문명의 거센 힘이 느껴진다.

멀리 시야를 뒤덮은 황사 바람과 장엄한 화산의 파고가 뒤섞인 장관을 바라보며 '이 거센 역사의 줄기는 어디로 흘러 가고 있는걸까?' 하는 의문이 일자 순간 혼미함이 느껴진다. 거대한 자연은 말이 없을 뿐,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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