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방담]게이머는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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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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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씨는 병역 특례 요인으로 자신이 헤비 게이머라고 밝혔다. 6개월 이상 게임 장애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 정상적인 군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2 B씨는 성추행을 저질러 법의 심판대에 섰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다가 성 충동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 감형받았다.  

#3 C씨의 자녀는 갑 병원에서 '게임 장애가 있는 청소년'이라고 판정을 받고 치료를 권유받았다. 또 다른 을 병원에서는 '게임 장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병원에도 방문할 예정이다.

허무맹랑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5월 국제질병분류기호 개정(ICD-11)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지난 9일 열린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언급된 직면하게 될 문제들을 각색해 봤다. 



잠재적 환자가 되는 게이머들

게임 중독에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게이머에게 '정신질환 환자'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앞으로는 게임을 한다는 이유로 잠재적인 정신질환 보유자가, 중독 진단을 받을 시에는 환자가 될 수 있다.

 

게이머에게 '당신은 잠재적 정신질환 환자입니다' 혹은 '게임장애를 지닌 정신질환 환자입니다'라고 했을 때 수긍할 수 있을까? 질병화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의 의견이다.

신선한 우유를 마신 A에게 상한 우유라고 말하면 A씨는 복통을 일으키는 것처럼 부정적인 믿음 때문에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노시보 효과'가 게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게임'이 외려 이상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될까 우려된다.

게이머 스스로도 게임을 하면서 '게임 장애'인가 아닌가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며 고민할 것이다.

게임을 '많이' 하면 병인가

보다 큰 문제는 질환이라고 진단할 기준도 모호하고, 근본적으로 게임이 질환을 유발하는 가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시간은 기준이 될 수 없다. 중독 기준을 5시간이라고 하면, 하루 10시간의 여유시간을 가진 A씨와 하루 3시간 놀 시간이 있는 B씨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A씨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24시간'이라는 높은 기준점을 둔다고 해도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여 미션을 수행하는 '오토전투' '자동전투' 시스템을 갖춘 게임을 이용하는 게이머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렇다고 ㄱ게임을 하면 중독 증세가 덜하고, ㄴ게임을 하면 증세가 심해진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 게임 콘텐츠 빠른 변화로 장르로 구분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침대 중독은 없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수치화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보고 있다. 게임으로 중요한 인간관계나 일자리나 학업, 가정을 포기했는가 등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진단 기준을 뒀다.

알코올이나 마약 같이 중독 물질의 복용 횟수나 양이 아니라 현상이 진단 기준이다보니 결과도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ICD-11에 게재될 중독 진단 기준으로 보면 게이머의 적게는 4%에서 많게는 40%까지 질병을 보유자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4%와 40%,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게임 과몰입센터를 찾은 이용자들을 보면, 10명 중 7.5명은 우울증을, 5.7명 불안장애를, 6명은 강박증을, 10명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타 중독 사례 대비 공존질환이 과도하게 많다. 

'우울증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우울해서 누워있는 것이지 침대 중독은 아니다' 여기에 '게임'을 넣으면 성립되지 않을까. 우울증이라서, 강박증이 있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게임에 빠지게 된 경우 치료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요인을 찾아야 한다. 

순수하게 게임에 중독 증세를 보인 집단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게임 중독이 포함되지 않았다. 

편견에 앓아 온 게임

질병으로 게임을 다루는 것이 최선책일까.

게임은 이미 사회적 편견에 앓아왔다. 미디어에서는 살인사건 용의자나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의 취미로 앞뒤 관계 없이 소환돼 쉽게 언급됐고, 자녀를 둔 부모는 '게임을 하면 공부를 못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단순한 시각 차이 였지만 정신질환이라는 의학적 진단까지 이뤄지게 된다면 게임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병력으로 의료 기록에 남는다는 점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례로 레이싱 게임에 중독 증세를 보인 게이머는 자동차 면허 취득 대상자에서 제외될 수도 있겠다. 

부정적인 꼬리표를 감수하고 게임을 즐길 게이머가 있을까. 여가시간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게임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이용자에게 당신은 잠재적인 정신질환자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까 두려울 뿐이다. 

강미화 기자 redigo@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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