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70년]애국지사 7명 배출한 강영각 일가
독립운동 자금 지원하며 신문 발간… 교포들에 태극기-3·1운동 등 알려
간직했던 신문 59부-사진 323점, 후손들이 독립기념관에 자료 기증
한 달에 두 번 발행이 목표였지만 그마저도 못 지킬 때가 많았던 4개 면짜리 신문의 구독료다. 영어로 쓰였지만 지면을 채운 것은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소식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기사나 태극기 아래 앉은 지청천 장군과 독립군의 사진 등이 지면에 담겼다.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피한 동포들의 민족운동 창구 역할을 한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American Korean) 얘기다.
강영각 애국지사(1896∼1946)가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발행했던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과 영코리안의 실제 발행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강영각 지사의 딸 수잔 강은 1921년부터 1941년까지 발행된 영자신문 59부와 소장 사진 323점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한인들이 영자신문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해외 한인 사회에서 발간된 영자신문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함께 기증한 사진엔 서재필 박사, 양유찬 주미 대사 등 저명인사와 하와이 한인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신문에는 또 매년 3월 1일이면 빠지지 않고 3·1절 행사 기사가 지면을 차지했다. 1941년 1월 23일자 지면엔 한글로 가사가 쓰인 애국가 악보가 실리기도 했다.
강영각 지사의 가문은 독립운동가를 7명이나 배출했다. 여섯 형제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이회영 가문 못지않다. 아버지 강명화 애국지사와 강영각 지사를 포함한 다섯 아들, 사위 양우조 지사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은 차남 강영소 지사의 집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또 형제들은 미국 시카고에서 식당을 운영해 번 돈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강명화 지사의 후손이 적고, 외국에 거주한 탓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기증을 통해 강명화 지사의 장남 강영대 지사 등 세 아들에게 5년 전에 수여 확정된 훈장도 주인을 찾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14일 강영각 지사의 딸 수잔 강에게 이들의 훈장을 전달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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