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정권은 2기 째를 향하여 간단히 허들을 넘었다. 재선된 푸틴의 득표율은 71%로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의 득표율보다 20%나 증가되었다. 하원 선거에서는 푸틴의 여당 통일러시아가 압도적인 강세로 의석을 확대, 지지정당 전체의 의석은 헌법개정도 가능한 전체의 3분의 2이상에 달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은 정권의 지배 아래에 놓여 투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야당 측 후보자의 선거활동에는 치안기관의 조직적인 방해 공작이 이루어졌다. 서방측에서는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대폭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서라도 국내외의 난처한 상황에 대처하려 하고 있다. 90년대의 러시아는 민주화에 실패했다. 대통령의 권력이 불안정했고 정권은 러시아경제를 시장경제의 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 그 반성에서 ‘관리 민주주의’라는 발상이 탄생했고 수직통합적인 정치지배체제 안에서 러시아경제를 띄우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푸틴 정권의 안정도는 인상적이다. 1990년대에 일반적이었던 급료와 연금 미지급 문제는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국제 석유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자원국가 러시아는 윤택해졌다. 2000년에 푸틴정권이 발족될 당시에 내세운 ‘강건한 러시아의 부활’이라는 슬로건도 실현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러시아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많은 의문이 느껴진다. 하나는, 체첸문제다. 푸틴이 정치가로서 부각되는 계기를 붙잡은 것은 그가 수상 시절에 주도한 체첸진공작전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이 작전을 통해서 민주적 선거로 체첸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밀어내고 실질적으로 독립을 약속한 체첸공화국을 다시 지배 아래에 두었다. 그 후, 러시아에서는 체첸 독립파의 테러가 빈발하게 되었다.
푸틴정권은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고 선언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한 미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군사진출을 인정하고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카프카스 지역의 요충지 그루지야에도 미군부대 파견을 허락했다. 그러나 체첸독립파의 테러에 대한 대책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협력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서방측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러시아의 반감은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올리가키로 불리는 국내의 신흥재벌에 대한 대책이다.
2003년 후반에는 국내 대기업인 석유기업 유코스에 횡령과 탈세를 조사하는 등 부정부패 추방이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젊은 나이에 러시아 최대 부호가 되어 있던 이 회사 사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체포는 국민의 공감을 얻으면서 지지율이 잔뜩 떨어져 있던 정부 여당의 반격과 연결되었다. 푸틴정권은 과거에 민영화 과정에서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여 국가의 자산을 획득한 올리가키를 처벌하고 그 재산을 국가로 되돌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정확하지 않다. 푸틴정권 쪽에도 전력, 천연가스, 철도와 관련된 독점기업이 있고 그 이권을 둘러싼 항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권항쟁의 배후에는 올리가키의 대표적인 정치사업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를 중심으로 전 대통령 옐친의 가족을 포함하는 세미야 그룹과 구소련 KGB의 중령이었던 푸틴을 둘러싸고 있는 치안기관출신자 실로비키 그룹의 대립이 있다. 여기에 츄바이스 중심의 개혁파 그룹이 가담하여 푸틴정권 아래의 러시아는 이들 그룹의 대립과 항쟁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언제 어느 때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에 빠질 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푸틴정권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있다. KGB 출신자를 포함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인물들이 왜 이렇게까지 정권의 중심을 장악하게 된 것일까?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제국’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개혁파 각료들이 여전히 주도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KGB의 중령에 불과했던 인물이 모스크바로 들어가 짧은 기간 안에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권력적 메커니즘이 작용한 것일까?이 책에서는 이런 수수께끼들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