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 한 접시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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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18. 오후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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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친구가 외국에 나갔다가 한국을 잘 아는 무슬림을 만났어요. 경기도에서 몇 년 살던 사람이었대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친구한테 그러더랍니다. “다음에 만나면 삼겹살에 소주나 한번 하죠.” 무슬림이 돼지고기와 술을 먹자고 제안하다니, 농담일까요 진담일까요? 농담이라도 무슬림 아닌 쪽이 먼저 꺼낼 농담은 아니겠지만요.

고기는 욕망! 인간은 고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의 종교는 육식 문제를 규제하지요. 아시다시피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종교는 많습니다. 유대교인은 치즈버거를 먹지 못한대요.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고 율법이 정했으니까요. 이렇게 ‘금지된 고기’에 대한 글은 이미 많으니, ‘허용된 고기’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기독교에도 육식에 대한 금기가 있어요. 가톨릭의 금육재. 사순절(예수가 수난을 당했다는 40일)과 매주 금요일(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요일)에 고기를 먹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래도 다른 종교에 비해 관대한 편이라 하겠습니다. 물고기를 먹는 일은 허용하거든요.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고기에 대한 ‘육욕’ 또한 마찬가지죠.

물고기란 무엇? 물에 사는 동물이면 물고기로 볼 수 있을까? 일 년 365일 내내 고기가 먹고 싶은 기독교인들은 물고기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옛날부터 물새 퍼핀을 물고기처럼 먹었대요. 2010년, 미국 뉴올리언스 대주교는 악어를 물고기로 해석했고요. 니카라과에서는 파충류 이구아나가 사순절 음식이라나요.

기독교에서는 비버도 물고기래요. 교회의 공식 입장이 나온 때가 17세기. 사순절에 비버를 먹어도 되느냐고, 캐나다의 주교가 프랑스의 신학자들에게 물었고 그래도 된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훗날 캐나다 학자들은 ‘이 때문에 비버 수가 크게 줄었다’며 개탄했대요.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신학자들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에도 비버를 물고기로 여겼나 봅니다. 영국의 토종 비버가 멸종된 것이 16세기의 일이라니까요.

제가 직접 맛본 요리를 여기 소개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비버는 먹어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미국의 육가공 업체에 따르면 비버 고기는 맛이 진한 붉은 살코기라고 합니다. 스물네 시간 이상 고기를 재웠다가(나름 ’민물고기’니까요) 향신료를 곁들여 오지그릇에 끓여낸다고 해요. 물론 바비큐로 구워 먹기도 하고요.

비버 수가 준 이유는 잡아먹혀서가 아니라 ‘비버 산업’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털가죽은 모피 시장에, 해리향(카스토레움)은 유럽의 향료 시장에 팔렸거든요. 북아메리카에서 비버 사냥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도, 캐나다의 주교가 비버에 대한 유권해석을 파리의 신학대학에 부탁한 사실과 관계없지 않을 겁니다. 종교가 속세의 산업과 타협한 사례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날 종교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죠. 대신 개인의 신념에 따라 육식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육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살아 있는 동물을 살코기와 달걀을 찍어내는 기계 취급을 하는 공장식 축산이 불편한 사람이 있고, 고기소를 대량으로 사육할 때 일어나는 환경 파괴가 걱정인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시장 논리에 따르면 싼값에 많은 살코기를 ‘생산’해야 이익이고요. 이제 육식 문제를 둘러싸고 산업과 윤리가 새롭게 맞서기 시작합니다.

김태권(고기 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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