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자살 보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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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긴다. 베르테르 효과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독일 젊은이들이 그의 죽음을 따라 한 것을 빗댔다. 반대의 경우가 있다. 파파게노 효과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는 연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관해 생을 마감하려 한다. 이때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요정들이 나타나 죽음의 유혹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자살을 막고자 하는 노력이 성과를 거둘 때 이 효과가 작동됐다고 일컫는다. 언론은 파파게노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번 주 초 한 연예인의 자살 보도를 두고 언론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특히 몇몇 매체의 접근 방식은 뭇매를 맞았다. 전염성이 강한 일부 인터넷과 방송의 자극적 보도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구체적인 자살 도구와 방법까지 묘사해 한때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는 그 도구명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고인이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들, 자작곡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교묘히 편집해 마치 오래전부터 자살 조짐이 있었던 것처럼 무리하게 해석한 곳도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자살 보도 윤리강령을 무시하고 타인의 슬픔을 흥밋거리로 소비한 여러 언론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자살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언론사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1만명 이상이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자살 보도 권고 기준 등에 따르면 자살 장소, 방법, 수단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말고 자살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해서는 안 되며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상업적 속성에 매몰된 언론이 경계를 너무 쉽게 넘나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끄러운 언론의 자화상이다.

자살 보도에 관한 원칙을 함축하는 경구가 있다. ‘누가 사망했다는 그 사실을 쓰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럼 할 말은 다 한 것이다.’ 통렬히 반성해야 할 언론의 등에 내리치는 매서운 죽비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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