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구랑 나누어 먹을까?

입력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갑남 기자]
▲ 우리집 만물상인 텃밭. 각종 작물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2005 전갑남
비가 개이자 나는 감자를 캔 자리에 들깨모를 심고 있다. 신문 배달을 하는 동네 이장은 매일 우리 집 앞을 자전거를 타고 지난다. 장터에서 오토바이 센터를 하는데 새벽에 운동 삼아 신문을 돌리고 있다. 일하다 얼굴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인사를 대신한다. 어제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났다.

“전 선생, 감자 몇 박스나 나왔어?”

“40박스 넘게 캔 모양이야.”

“씨감자 두 박스 심었지? 그 정도면 수월찮구먼. 농사짓는 폼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달라.”

“그런가?”

“참 대단해! 장사할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부지런하니…. 사람들 칭찬이 자자해.”

우리가 지금 사는 농촌마을로 이사 온 지 올해로 3년째다. 이장의 덕담 한 마디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아마 이웃들은 자기네나 다름없는 삶 속으로 젖어드는 우리의 모습이 살갑게 느껴지고 있는 모양이다. 낯선 곳에 정착하여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장은 너무 배게 심으면 들깨가 많이 달리지 않는다며 지금 심는 것보다 드물게 심으라고 일러준다. 나중에 시간나면 술이나 한잔 하자니까 좋다고 하면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간다.

 
▲ 이웃집 할머니가 보내 준 양파
ⓒ2005 전갑남
그날 오후에 가지를 따고 있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양파를 한 아름 안고서 나를 부른다. 할머니네 밭은 우리 집과 바로 붙어 있으나 집은 한 집 건너 있다.

“선생님네 양파는 안 심었지? 이것 좀 갔다 잡수셔.”

“아니, 애써 농사지어 우리 주면 어떻게 해요. 내다 팔지?”

“농사지어 다 파나? 좀 씨알은 작아도 집에서 먹기는 괜찮을 거야.”

“잘 먹을게요. 할머니네도 가지 심었지요?”

“심었지. 우리는 늦게 심어 아직 어린데, 이 집 것은 실하네.”

“그러면 이것 좀….”

내가 지금 바로 딴 가지를 건네자 손사래를 친다. 가지를 20여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 한창 열리기 시작했다. 어린애 키만큼 자란 가지에서 이틀만 지나면 오늘만큼 또 딴다. 가지나 오이는 대여섯 그루만 심어도 식구 적은 집은 실컷 따먹고도 남는다.

“우리도 며칠 있으면 따는데…. 사모님 미국 간다며?”

“벌써 갔는 걸요.”

“그래? 한 열흘 선생님 혼자 독수공방하겠네. 그럼, 내가 이거 갔다 먹어도 되겠구먼.”

“오이도 한창인데 따 드릴까요?”

“우리도 많아.”

오이는 남 주지 말고 오이장아찌를 담가 먹으란다.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고 물이 잠기도록 돌멩이를 얹어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사실, 오이장아찌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한여름 오이장아찌를 송송 썰어 찬물에 넣고 간기를 어느 정도 뺀 다음, 얼음 동동 띄워 먹으면 냉국으로 그만이다.

할머니가 우리 텃밭을 사열이라도 하듯이 한 바퀴 삥 둘러본다. 멀리서만 보았지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500여 평 되는 우리 텃밭에 여러 가지 심어놓은 것들이 실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는 표정이다. 초보농사꾼이 하면 얼마나 했겠나 싶었는데 막상 가까이 보니까 다른 모양이다.

“이집, 올해는 영 딴판이네. 세상에! 이렇게 잘 가꾸었어.”

“이장도 아침에 그러더니만, 할머니께서도 같은 말씀이시네.”

“옥수수는 이리 많이 심었나? 마리산 주차장에서 장사해야 되겠네.”

“할머니랑 동업하면 좋겠네요.”

할머니가 피식 웃으며, 아내가 옥수수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어서 내가 많이 심은 것 같다고 한다.

▲ 지금까지는 건강한 우리집 고추
ⓒ2005 전갑남
“지금 같아서는 고추도 우리보다 낫겠어. 작년에 비하면….”

“아무려면요?”

할머니는 고추탄저병은 장마철에 시작되니까 때맞추어 약을 쳐라, 다른 것은 몰라도 고추는 약 안치고는 못 먹는다, 미련하게 무공해 고집하다가는 망가진다며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일러준다.

냉장고에서 수박하고 음료수를 내어 대접했다. 한여름 일하다 쉬면서 먹는 시원한 음식은 꿀맛이다. 할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시원한 느낌이다.

▲ 주렁주렁 달린 우리집 참외밭
ⓒ2005 전갑남
올해 50여 그루 심은 참외 농사도 잘 되었다. 아들 넝쿨, 손자 넝쿨 잘 구분하고, 때맞추어 순지르기를 했더니 지난해와 다르다. 할머니가 얼마나 달렸나 봐야겠다며 이파리를 들추더니만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보고 혀를 내두른다.

“식구가 몇이나 된다고…. 이 많은 거 어쩔 참이지?”

“많이 달렸지요?”

“이 집은 참외만 먹고 살아도 되겠네. 원두막 차려야겠어.”

“할머니네는 참외 안 심으셨죠? 아무 때나 따 잡수세요.”

남의 농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면서 집에 놀러오면 몇 개 따주면 된다며 흐뭇해 한다.

요즈음 우리 텃밭은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많지 않은 우리 식구가 먹고도 넘칠 만큼 여러 가지를 넉넉하게 심었다. 만물상 텃밭에서 몇 가지 작물은 지금 한창 수확을 하고 있다. 오이, 가지는 진즉부터 따고 있고, 방울토마토도 익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애호박이며 꽈리고추, 피망도 주체를 못하고 있다. 일주일이면 옥수수며, 참외가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수정이 되어 굵어지고 있는 수박을 몇 개 발견했다. 아직 어린 나무여서 많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살구, 자두가 열렸다. 좀 늦게 씨를 뿌린 상추, 치커리 같은 야채도 아직 싱싱하다.

나는 우리 집에서 나온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재미로 새벽부터 밭에 나간다. 하루 중 처음 만나는 이장과의 손인사도 정겹다.

“오늘은 수확한 것을 누구랑 나누어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전갑남 기자


덧붙이는 글
전갑남 기자는 강화 강남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