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이 일제히 '반미'로 돌아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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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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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 속의 반미]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V.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1980~1992

5. 1980년대 소설 속의 미국 (2)

앞에서 얘기했듯 1980년대에 발표된 반미 소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째, 이른바 기지촌 소설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주한미군의 오만함이나 범죄 행위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이른바 '5월 문학'을 통해 광주학살의 공범 및 전두환 독재의 지지자로 비난받았다. 1985년부터 광주항쟁을 그린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황석영의 보고문학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가 출판된 직후부터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인 황석영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될수록 즉시 폭로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르포르타주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나 걸렸다.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이었다.

윤정모는 1985년 동포애를 바탕으로 미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넌지시 표출하는 <밤길>을 발표했다. 박호재는 1987년 <다시 그 거리에 서면>에서 데모를 묘사하는 가운데 "양키 고 홈" 등 반미구호를 소개하면서 미국이 광주학살의 방조자였음을 암시했다. 홍희담은 <깃발> (1988)을 통해 인습을 깨고 광주항쟁을 계급투쟁으로 해석하는 시도를 하면서,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민중 특히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묘사했다.

앞에서 '1980년대 가장 활동적인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소개했던 정도상은 많은 작품을 통해 광주항쟁을 다루었다. <발자국 소리> (1986), <십오방 이야기> (1987), <친구는 멀리 갔어도> (1988), <여기 식민의 땅에서> (1988)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여기 식민의 땅에서>는 제목이 암시하듯 '미제'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국인들을 착취하고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해 광주학살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군사독재의 살인적 야만성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 활동적인 반미 작가는 1988년 '5월문학상'을 받았다.

셋째, 미국은 다국적 또는 초국적 기업을 통해 한국을 '착취'하는 '제국'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소설은 1987년 가을 내내 전국적으로 분출되었던 노동자 투쟁의 물결에 이어 1988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도상은 한미 공동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야만적으로 진압하는 것을 그린 <새벽 기차> (1988)를 발표했다. 유순하는 1988년 <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 <내가 그린 네 얼굴 하나>, <생성>이라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미국인 소유 회사에서의 노동분쟁을 다루며 미국의 경제적 침략을 묘사했다. 이에 그는 1989년 아산 문학상을, 1991년엔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다.

아마 이 부류의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렬한 반미적 작품은 김인숙이 1988년 발표한 <성조기 앞에 다시 서다>일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기업의 자회사에서 일어나는 노동투쟁을 다루면서 주인공의 가족사를 통해 1945년부터 이루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약탈'의 실상을 그렸다. 그 회사의 한국인 관리자는 그가 어렸을 때인 미 군정 시절 미국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무고한 한국인 수십 명을 어떻게 죽이고 해쳤는지 증언한다. 그는 양키들에 대한 극도의 원한과 증오를 품어왔지만, '더러운 미국 놈들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것이 미국의 깃발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미국은 이른바 '분단문학'을 통해 한반도 분단을 꾀하고 한국의 독립을 방해한 나라로 묘사되었다. 한국 지식인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특히 미 군정 시기 또는 '해방공간'에 대한 한국현대사를 공개적으로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을 펴낸 미국인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를 비롯한 수정주의 학파의 영향으로 베일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금기를 깨는데 소설가들이 합류했다.

강용준은 1985년 한국전쟁 중 한국인 부대를 욕보인 미국의 군사전술에 분노를 표출한 <파도야 파도야>를 펴냈다. 이태는 1988년 두 권짜리 <남부군>을 통해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 펼쳐진 빨치산활동을 미군의 점령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극우세력들에 대한 민족해방투쟁으로 특징지었다. 이 빨치산 출신 작가는 1988년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 작품은 1990년대 초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권운상 역시 1989~1991년 펴낸 9권짜리 대하소설 <녹슬은 해방구>에서 빨치산 활동을 민족해방투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1990년 6월 연세대학교에서 마당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김달수는 1946년 가을의 인민봉기들에 초점을 맞춰, 한반도 분단과 점령을 정당화하는 미 군정의 다양한 책략들을 보여주는 두 권짜리 <태백산맥>을 1988년 출판했다. 재일동포 작가인 그는 외세에 대한 한민족의 저항을 보여주기 위해 원래 이 작품을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일본의 월간지에 연재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1989년 전국 노동자 문화운동단체 협의회에 의해 노동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되었다.

위 작품과 똑같은 제목의 10권짜리 대하소설이 1986~1989년 출판되었다. 이 분야의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1990년대까지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작가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실제상황을 파헤쳤다.

그는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기습공격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민족해방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암시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한국인들과 미국 사이의 전투라는 결론을 내리며, 미국은 '인디언'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을 몰살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노예화하면서 현재의 상태로 발전했다고 비판했다. 이 소설 역시 전국 노동자 문화운동단체 협의회가 1989년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하였다.

한림화는 1948년의 제주 4.3항쟁을 소설화한 세 권짜리 <한라산의 노을> (1991)을 통해 이 항쟁은 미군점령에 대한 독립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 '폭동'이 1948년 38선 이남에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이었다는 1980년대까지의 일반적 인식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역사적 사건은 7살 때 이를 직접 겪었던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이 1979년 <순이 삼촌>을 통해 처음으로 소설화했는데, 그는 미 군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그는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 소설은 배포금지 처분을 받았다.

다섯째, 미국은 이른바 '통일문학'을 통해 전쟁을 도발하며 한반도 통일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묘사되었다. 소설가들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 전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 (1983)과 그것을 영어로 옮긴 (1989), 이상문의 <황색인> (1987), 황석영의 두 권짜리 장편 <무기의 그늘> (1985, 1988), 그리고 홍파의 역시 2권짜리 장편 <지저스 크라이스트 주니어> (1993)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출판된 안정효의 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로부터 다음과 같은 평을 얻었다. "실제로 베트남전쟁에서 공포의 하얀 훈장을 받은 한국인 작가의 뛰어난 소설 <하얀 전쟁>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자행되는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적 면모와 함께 전쟁의 광증과 타락상을 고발한다"

안정효처럼 베트남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에서는 반미감정이 더 많이 드러난다. 전쟁터 베트남에서의 블랙마켓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의 제국주의적 경제침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미국의 달러야말로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이끄는 미국의 신분증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원래 1975년 연재되기 시작해 정부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초 다시 시작되다 또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어렵게 출판되었다. 실제로 한국의 독재정권은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소설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1989년 작가는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작품은 전국 노동자 문화운동단체 협의회에 의해 노동자들의 필독서로 추천되었다.

일부 작가들은 미국의 핵정책을 비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1980년대 말부터 전개된 반전반핵 시민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남정현의 <핵반응> (1988)과 정도상의 <겨울 꽃> (1989)을 들 수 있다. 윤정모는 1988년 <빛>을 통해 1976년 시작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을 비판했다. "미군만도 37만과 두 척의 핵 항공모함까지 참여"한 이 연례훈련은 "안보 강화가 아니라 하와이,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지의 새로 신설된 경보병사단의 훈련장으로 활용된 측면"이 크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배의 지렛대로 활용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무렵 이 군사훈련은 미국과 남한이 주장해온 대로 '방어훈련'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공격훈련이며,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윤정모의 <고삐> (1988)는 1980년대 그녀를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만든 가장 반미적 작품일 것이다.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녀의 "파란 많은 가족사"를 통해 그야말로 "미국 제국의 모든 악행들"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1945년 한반도를 분단했다. 1945~48년 군정을 펴는 동안 공장을 몰수하고 시위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1950~53년 한국전쟁 때는 농토를 압류하고 마을을 폭격했으며 여인들을 집단 강간했다. 1980년대에는 광주학살을 공모했고 군사독재를 지원했다. 제국주의적 착취를 일삼으며 한국시장을 개방하라고 커다란 압력을 행사했다.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으면서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있다. 미군들은 한국인들에 대해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한국에 GI(미군 병사들에 의한 저급문화를 속칭하는 표현) 의한 문화를 침투시켰다.

그녀는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소설은 거의 자전적이다. 나는 물론 도덕이 뭔지도 모르는 어미를 가졌고 GI와 결혼한 성이 다른 동생도 있다. 또 그 동생의 남편에게 우리 민족을 이해시키려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결국은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파경도 겪었다..... 동생을 친미광으로 고발할 땐 내가 당했던 당시의 일이 떠올라 다시금 분노에 몸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만약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미국이 조선을 일본 식민지로 넘겨주지 않았다면, 또는 1945년 일본으로부터 이 땅을 되빼앗고 점령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분단 조국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리운 부모 형제를 사할린에, 중국에, 일본에, 바로 지척인 북한에 두고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비극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스물다섯 살까지 환락가나 유흥업소 여성들과 매우 가깝게 부대끼면서" 살아오다, "매춘과 윤락은 외세와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는 것을" 마흔 살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며, 이제 미국이라는 "고삐를 끊고 당당히" 나가자고 호소한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초까지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1991년 <한겨레신문>에 의해 대학 신입생들이 읽어야 할 20권의 책에 뽑히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1993년 여름 전국의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대학 1학년 때 <고삐>를 읽고 충격을 받아 활동적인 반미주의자가 되었다는 한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의 지나친 친미정권 아래서 미국에 대한 부정적 정보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는 '픽션'조차도 충격적이었고 반미운동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맥과이어와 파파죠지스 (Mcguire and Papageorgis)가 1961년 제시한 이른바 '(예방)접종 효과' (inoculation effect) 가설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미국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긍정적 모습도 배우고 부정적 측면도 접했다면 맹목적 친미로 흐르거나 갑작스런 반미에 빠지지 않을 텐데, '미국은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나라'라고만 보고 듣고 배워오다가 악하고 추한 일도 많이 저질렀다는 소설책 한 권에 충격을 받아 반미운동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반미에 대한 면역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1980년대 말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함께 전개된 통일운동은 이른바 '통일소설'의 등장을 불러왔다. 김규동을 비롯한 18명의 작가들은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29편의 콩트를 써서 <임진강 흘러 하나 되리> (1988)라는 소설집을 출판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미국을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비판했다. 1990년 8월에는 다른 작가들이 통일에 대한 콩트를 일간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1990년 8월 26일 자에 실린 마지막 회는 남정현의 <그래도 양코배기>였다. 제목이 풍기듯 미국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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