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연화도] 푸른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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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5.23. 오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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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협곡을 잇는 연화도 출렁다리는 그 자체로 스릴을 주지만,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절벽의 기암괴석도 장관을 이룬다.


경남 통영은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한 예향이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이름만 들어도 울림이 전해지는 거장들이 통영에서 태어나 예술적 감성을 키웠다. 통영의 골목과 바다가 이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핀 것은 아닐까. 통영은 섬의 고장이기도 하다. 부속 섬이 570개(유인도 44개, 무인도 526개)나 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오밀조밀 뿌리 내린 섬들은 저마다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며 뭍 사람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통영 섬 중에서도 우리 삶에 휴식과 사색을 제공하는 연화도와 욕지도로 떠난다.

통영항에서 남방 24㎞ 해상에 위치
섬 안팎에서 볼 수 있는 풍광 수려

佛者들, 연산군 억불정책 피해 이주
연화사·보덕암 등 불교 흔적 산재

■미륵도 명소들 왔다가 사라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김훈 <칼의 노래> 중에서)

시처럼 아름다운 김훈의 소설 가락을 따라 연화·욕지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다. 몰고 온 RV차량도 함께 실었다. 도보보다 차량 여행을 즐길 심산이었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동승한 것으로 봐서 주말엔 얼마나 붐빌지 알조다. 탐방객과 낚시꾼이 뒤섞였다.

바다는 잔잔한 편이지만, 늦봄의 해무가 사물을 불분명하게 한다. 해무는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뭔가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아마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탓일 게다. <무진기행>의 주인공이 무진으로 내려가던 날도 안개가 자욱했고, 안개 속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섬만 해도 오만가지 상상력을 피워올리는데, 하물며 안개에 덮인 섬은 얼마나 매혹적이며 허튼 기대를 하게 하는가! (이때까지만 해도 이 해무가 다음 날 짙은 안개로 변해 기자의 발을 꽁꽁 묶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배가 서서히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오른쪽에서 미륵도가 한참 따라오다가 뒤로 처진다. 연필등대와 윤이상국제음악당 등 통영 명소들이 차례로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미륵산(461m) 정상이 팽이를 엎어놓은 듯 뾰족하다. 미륵도 해안도로가 가물가물 기어간다. 멍게, 가리비, 굴 양식장이 넓게 펼쳐졌다가 오므라든다.

승객들은 뱃전에 나와 사진을 찍거나 양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에 넋을 놓는다.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은 적당하다. 오른쪽으로는 한산도 입구에 웅크린 대죽도·소죽도가 멀리서 눈짓을 보낸다. 내내 따라오던 갈매기들이 어느 순간 실 끊어진 연처럼 멀리 사라진다.

■불교 흔적 곳곳에 남아 
출항 1시간여 만에 배는 연화도(蓮花島)에 닿는다. 연화도 도착 직전에 섬 3개(연화도, 반하도, 우도)가 가로로 펼쳐지고 세 섬을 잇는 보도교 공사가 한창이다. 연말이면 다리를 통해 세 섬으로 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동행한 정윤정 통영시 문화관광해설사가 귀띔한다. 총 길이 30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보도교가 될 것이라고.

'바다에 피어난 연꽃' 연화도는 멀리 북쪽에서 보면 마치 연꽃이 피어난 듯 아름답다. 연화도는 통영의 섬 중에 최초로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고 절경을 자랑한다. 동서로 3.5㎞, 남북으로 1.5㎞의 작은 섬이지만, 수려한 해안 풍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연화도라 이름 붙은 것은 욕지도(欲知島)와 마찬가지로 불교와 관련이 깊다. 미륵도, 욕지도, 연화도, 세존도, 반하(반야)도…. 한때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에 뭍 사람들은 섬을 찾아 불교적 이상 세계를 구축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연화도의 기원은 500여 년 전 연산군의 억불정책으로 연화도로 피신해 은신한 연화도인이 제자들과 연화봉 밑에 토굴을 짓고 전래석(둥근 돌)을 부처님 대신 모셔 놓고 예불을 드리며 수행한 데서 출발한다. 연화도인은 "내가 죽거든 바다에 수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도사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하니 도사의 몸이 한 송이 연꽃으로 승화했다고 한다.

연화도는 통영항에서 남방 24㎞ 해상에 떠 있다. 섬에는 연화사와 부속 암자인 보덕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도한 토굴 터 등 불교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연화사의 가람배치.
연화도 선착장에 내려 걸어서 연화사로 간다. 도중에 원량초등학교 연화분교를 지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는 없고 대신 적막감이 감돈다. 전교생이라고 해 봐야 10명도 안 된다니 그럴밖에. 하지만 붉은색 지붕을 인 교사(校舍)는 단정하게 꾸며져 멋스럽다. 10여 분만에 연화사에 도착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쌍계사 방장을 지낸 고산 큰스님이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의 혼이 깃든 이곳에 사찰을 지었다. 1998년 8월, 낙성식을 했으니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다. 하지만 보덕암과 아미타대불 등이 순차적으로 조성되면서 연화도는 불교 성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화사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로 단출하지만, 절 분위기가 사뭇 엄숙하고 기품이 있다. 대웅전 앞에 고산 스님이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 스리랑카에서 진신사리 3과를 가져와 봉안한 후 세운 석가여래진신사리비가 우뚝하다.

■출렁다리 너머 망망대해가
보덕암에서 내려다보는 용머리해안.
연화사 부속 암자인 보덕암으로 발길을 돌린다. 연화사에서 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도한 토굴 터를 재현한 것을 볼 수 있다. 바쁜 일정 탓에 정상으로 가지 않고 보덕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연화사 부속 암자인 보덕암은 경사면에 세워져 바다 쪽에서 보면 5층이지만, 섬 안에서는 맨 위층의 법당이 단층 건물처럼 보이는 특이한 구조다. 보덕암에서 바라보는 용머리 해안은 통영 8경에 들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려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해무가 두터워 카메라에는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보덕암 아래쪽에 해수관음상이 용머리 해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보덕암 계단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갯바위 파도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간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난 뭍의 일들이 아득한 옛날처럼 흐려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느낌도 깨달음의 일종일까.

연화도의 또 다른 명물 출렁다리로 간다. 아찔한 협곡을 이은 출렁다리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출렁이며 몸과 마음마저 출렁거리게 한다. 동두(동머리)마을에 놓인 출렁다리 건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쪽빛 바다의 조망이 압권이다.

연화도는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A코스(약 9㎞)는 냉동창고 앞~연화봉~보덕암~출렁다리~용머리 전망대~동두마을~쉼터~연화사~선착장으로 이어지는데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B코스(약 8㎞)는 분교~연화사~연화봉~보덕암~석탑~용머리 전망대~쉼터~분교~선착장으로 이어지며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연화도에서 한 시간여 머물다 다시 여객선을 타고 욕지도로 간다. 연화도에서 욕지도까지는 8㎞ 남짓으로, 20분이면 충분히 닿는다.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연화도와 반하도·우도를 잇는 보도교 공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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