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한국이 난적 이란을 잡고 2연속 금메달로 가는 고갯길 가운데 하나를 넘어섰다. 눈앞에 보이는 또 하나의 고갯길 이름은 우즈베키스탄이다. 이 고개에 이어 두 개의 고갯길을 더 넘어야 목적지에 이른다.

한국은 지난 23일 밤 인도네시아 치카랑 위바와무크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16강전에서 이란을 2-0으로 꺾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같은 곳에서 앞서 열린 경기에서 홍콩을 3-0으로 이겼다.

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24년 전인 1994년으로 돌아가 보자.

1994년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 흥행을 위해 동·하계 대회를 교차 거행하기로 결정한 첫 번째 해다. 이후 한국 스포츠 팬들은 4년마다 겨울철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그리고 여름철 아시안게임 등 3대 스포츠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그 첫해인 1994년 한국 스포츠는 기분 좋게 출발했다. 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대회에서 동계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2개)과 은메달(1개), 동메달(2개)을 한꺼번에 차지하며 단숨에 종합 순위 10위에 오른 한국은 2년 뒤 2월에 열린 릴레함메르(노르웨이)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종합 순위로 치고 올라갔다.

전이경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와 3,000m 릴레이 2관왕에 오르며 한국의 메달 레이스를 이끌었다. 전이경은 다음 대회인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같은 종목 2관왕에 다시 올라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2연속 2관왕이 됐다.

이어 6월과 7월 미국에서 열린 제15회 축구 월드컵에서 한국은 선전했지만 2무1패로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대회는 30대 중반 이상 축구 팬들 모두 기억하고 있듯이 본선 진출 과정이 극적이었다.

1993년 10월 29일 새벽 서아시아 모래바람을 타고 날아온 축구 대표 팀의 낭보는 국민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마지막 날 한국은 기적 같은 경기를 펼치며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에 성공했다.

최종 예선 출전국은 한국과 북한, 일본 등 동아시아 3개국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등 서아시아 3개국 등 6개국이었다. 돌려 붙기를 해 상위 2개국이 본선 출전권을 쥐게 돼 있었다.

한국은 첫 상대인 이란을 3-0으로 가볍게 꺾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이라크와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 3차전을 잇따라 2-2, 1-1로 비긴 데 이어 일본과 치른 4차전에서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내준 한 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져 자력으로는 본선 출전이 불가능하게 됐다.

1승 2무 1패 승점 4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에 승점 1점이 뒤져 있어 한국으로서는 북한과 최종전을 무조건 이기고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가운데 어느 한 팀이 지거나 비겨 골 득실 차를 따지는 상황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 시간 28일 오후 10시 15분 카타르 도하 시내 3개 구장에서 남북 경기를 비롯해 일본-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전이 동시에 킥오프했다. 가장 먼저 경기가 끝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4-3으로 이겨 2장의 출전권 가운데 한 장을 거머쥔 상태였다.

나머지 한 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티켓의 향방은 일본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한국이 북한에 3-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일본 또한 이라크를 2-1로 리드하고 있었다. 일본의 축구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 성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기 종료 10초 전 이라크 공격수 움란 자파르의 헤딩슛 한 방이 두 나라의 희비를 갈랐다.

한국은 2승 2무 1패로 일본과 승점(8)은 같지만 골 득실 차에서 일본(+3)에 2점 앞서 극적으로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서게 됐다.

이라크의 도움으로 기적 같이 본선에 오른 한국은 1994년 6월 18일 막을 올린 미국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3경기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2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10월에는 히로시마에서 제12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다. 뉴델리 마닐라 도쿄 자카르타 방콕 테헤란 서울 베이징 등 수도가 아닌 도시에서 개최된 첫 번째 아시안게임이었다.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가 축구 한일전이었다.

한국은 일본과 벌인 축구 8강전에서 추가 시간에 얻은 페널티킥으로 결승 점을 뽑아 3-2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전반 31분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후반 7분 유상철이 동점 골을 터뜨린 뒤 32분 황선홍이 역전 골을 뽑아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경기 종료 4분을 남겨 놓고 이하라 마사미에게 중거리 슛을 허용해 2-2 동점이 됐다.

연장전을 떠올리는 순간 황선홍이 페널티 마크 부근에서 일본 수비수 반칙을 유도해 얻은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해 대접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우승으로 가는 최대 승부처를 통과한 한국에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분리 독립한 중앙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이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가운데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축구 종목에 참가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5개국이 겨룬 조별 예선 A조에서 강호 이란과 1-1로 비기는 등 1승 3무로 중국(3승 1무)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은 역시 5개국으로 짜인 A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4-1, 말레이시아를 5-0으로 꺾는 등 4전 전승으로 8강에 합류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준준결승에서 타지키스탄을 3-0으로 누르고 일본을 따돌린 한국과 만났다. 한국은 전·후반 내내 우즈베키스탄을 압도했으나 후반 10분 아자마트 압두라이모프의 중거리 슈팅 한 방에 경기를 내줬다. 이 슈팅은 30여m를 낮게 날아가 한국 골대 앞에서 원바운드 한 뒤 골키퍼 옆을 스치며 꽂혔다. 한국이 슈팅 수 25-1로 앞선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이 기록한 단 한 차례 슛이었다.

한국은 이 경기 패배 충격으로 3위 결정전에서 쿠웨이트에 1-2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 대회에는 수비수 홍명보 최영일 미드필더 하석주 이영진 조진호 최대식 공격수 황선홍 서정원 고정운 등 미국 월드컵 멤버 여럿이 출전했으나 우즈베키스탄에 일격을 당해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8년 만에, 통산 4번째 우승에 실패했다.

당시에는 아시안게임에도 A대표 팀이 출전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이 대회에서 진 게 두 나라 역대 전적(한국 10승 4무 1패)에서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대회에 두 장의 와일드카드를 썼고 수비수 루스탐 아슈마토프와 공격수 안드레이 시도로프 등 상당수 선수가 지난 1월 중국에서 열린 23세 이하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다.

우즈베키스탄은 이 대회 결승에서 베트남을 연장 접전 끝에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준결승에서 한국에 4-1로 이겼는데 연장전에서만 3골을 넣었다.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자비킬로 우린보예프와 자스브레크 야크시보예프, 아크람존 코밀리로프가 이번 대회에도 출전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대회 조별 예선 B조에서 방글라데시를 3-0, 카타르를 6-0, 태국을 1-0으로 물리치고 가볍게 16강전에 올랐다. A대표 팀 역대 전적과 23세 이하 대표 팀 역대 전적(7승1무1패)만 보고 쉽게 볼 상대는 아닌 듯하다.

24년 전 경기를 떠올리며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마음으로 우즈베키스탄전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빚을 갚아야겠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