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금속 문화재 속, 중성자로 들여다본다

입력
수정2018.08.28. 오후 6:57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잊혔던 다빈치의 미완성 걸작, 앙기아리 전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Battle of Anghiari) 벽화. 1440년 여름, 이탈리아 앙기아리 평원에서 벌어졌던 피렌체 군의 대(對) 밀라노전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벽화입니다. 하지만 다빈치는 물감에 섞어 쓰던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벽화를 완성하지 못했고, 미완성이던 벽화는 이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다빈치의 벽화를 모사했다는 루벤스의 '앙기아리 전투'만이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1975년, 피렌체 출신의 미술사가 마우리치오 세라치니는 피렌체 베키오 궁전 대형 홀에 그려진 조르지오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마르치아노 전투'에서 'Chi cerca, trova(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잊혔던 다빈치의 미완성 벽화 '앙기아리 전투'의 흔적이었습니다.

프레스코화의 훼손 없이 다빈치의 벽화를 찾아내기 위해 기술의 발전을 기다렸던 세라치니는 30여 년만인 2012년, '중성자를 활용한 감마선 카메라'로 프레스코화의 3cm 뒤편 숨은 벽에서 다빈치가 자주 사용하던 물감 성분을 찾아냈습니다. 중성자를 물체에 쏘면 목표물에 맞은 뒤 감마선으로 반사되는데, 이를 분석해 화학 성분의 유무를 알아낸 겁니다.

루벤스 '앙기아리 전투', 루브르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 불상이 병원에 간 까닭은

문화재 발견과 보존에 과학 기술이 쓰인 사례는 국내에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사찰인 남원 실상사에 안치돼있던 조선 시대 건칠불좌상(나무, 종이 등으로 만들어 옻칠한 후 도금한 불상)의 머릿속에서 불경 한 첩이 발견됐습니다. 불경은 14세기 후반,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상 속 불경이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병원의 단층 촬영장비(CT) 안이었습니다. 불상을 X-선으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불경을 발견한 겁니다. 다만 X-선은 나무나 천을 투과할 수 있지만, 철 등 금속물질은 투과할 수가 없어 철로 만든 문화재 속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 '건칠불좌상'에서 발견된 '대반야바라밀다경'

베일에 싸인 금속 문화재 속, 이제 중성자로 들여다본다

금속물질 내부를 들여다보는 열쇠로 선택된 건 다름 아닌 '원자력 기술'. 앞서 '앙기아리 전투 벽화' 발견에 중성자 활용기술이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미국, 프랑스 등에서 원자력 기술은 이미 문화재 보존에 폭넓게 이용됐습니다. 투과력이 높은 '중성자'의 성질을 이용해 시료 내부를 들여다보는 '중성자 영상 기술', 시료에 중성자를 쏜 뒤 방출되는 감마선을 측정해 구성 성분을 알아내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 기술' 등이 꼽힙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가 손을 잡고, 국내 문화재 보존과 발견에도 '원자력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대전에 위치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핵분열을 통해 얻어진 '중성자'를 통해서입니다. '중성자'를 이용하면 금속물질로 만들어진 문화재의 내부를 손상 없이 관찰할 수 있고, 시료의 물질구성 분석을 통해 문화재의 만들어진 곳과 시기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문화재의 생물학적 손상을 일으키는 벌레와 곰팡이를 손쉽게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구리함 속의 유물을 들여다보는 중성자 영상 기술


아직까진 작은 크기만... 문화재 발견과 보존 활성화 계기 되기를

하지만 아직까진 국내의 '중성자 활용 기술'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 근접하게 설치된 비파괴검사장치 안의 가로 35cm x 세로 35cm x 높이 45cm 공간에서만 중성자 투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동이 가능한 작은 크기의 문화재를 분석하는 데만 활용할 수 있어, 큰 크기의 문화재에 적용하기 위해선 장비를 소형화해야 하는 등 과제도 있습니다.

문화재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잊혔던 문화재의 발견'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소식입니다. 미래를 꿈꾸는 최첨단 '원자력 기술'이 과거 선조들의 흔적을 되짚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뛰어난 원자력 기술을, 선조들의 훌륭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발견에 접목해 '잊혔던 선조의 숨결'을 다시금 되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대전 연구용원자로 '하나로'에 딸린 중성자 투과 비파괴검사장치


김범주기자 (category@kbs.co.kr)

[저작권자ⓒ KBS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 네이버 채널 KBS뉴스 구독! 시원하게 털어드립니다

▶ ‘TV보다 리얼’한 색다른 뉴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