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한 조각의 상상력 아침 미술관 1,2 /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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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8.30. 오후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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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미술관을 갖게 되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이 준비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기획전을 보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아침마다 '열려라, 미술관!'을 외치며 눈 뜨는 즐거움은 덤이다. 우리는 흔히 감사가 행복이면, 감동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한 편의 글이나 그림이나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야말로 진짜 행운이다. 책 속에 전시 중인 365점(1권 181점, 2권 184점)의 작품을 보고 나면, '사과의 화가(0911)'가 그린 사과 앞에서 행복을 느끼고, '고흐의 자화상을 조합해 해바라기 정물화를 그린 작가(0829)'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필숙 작. 대구미술관


원작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손바닥만 한 책 속을 들여다본다. 미술관이 머리맡에 있어서 좋다. 오늘 날짜를 찾아 펼친다. 아쉬우면 어제의 것도 보고 내일의 것도 본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하다. 아무나 알만한 것도 있고, 누구도 모를만한 것도 있다. 우리는 어릴 때 글보다 그림을 먼저 깨우쳤다. 끊임없이 만들고 그렸다. 그림을 보면 그냥 알았다. 그림의 첫인상에 대해 오래 간직하려는 본능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강렬하거나 벅차거나 담담하거나 참담한 그림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추스르는 그 즈음이 바로 감상자로서의 감정이입을 인정하는 순간이라는 걸 우리는 배우지 않고도 알았다.

그러나 척 보면 아는 것 말고 눈여겨보고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비스듬히 보고 멀리서 보고 뒤집어 보라는 말은 예술작품을 볼 때, 특히 미술품을 볼 때 하는 말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보라는 뜻이다. 한여름에 김성호 작가가 그린 <대설>을 보면서 '풍경화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겨울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말이다. 어쩌면 그림은 보는 걸 멈춰야 보인다. 창을 열다가 뒹굴다가 길을 걷다가 분명 눈은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그야말로 문득 창밖의 어느 한 풍경이나 천정의 모서리 또는 벽지의 무늬를 보고 노릇노릇 잘 핀 민들레를 본다. 눈이 보는 걸 마음도 보는 까닭이다.

이 책에는 페이지가 없다. 날짜가 있을 뿐이다. 0101부터 1231까지 매일 한 편의 그림과 곁들인 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그전에 차례를 빼놓지 말고 읽기를 권한다. 주제를 월별로 묶어놓았는데, 예를 들면 1권의 3월 그림 소제목은 '피어나는 봄에 색깔을 입히다'이다. 2권의 7월 그림은 '뜨거운 태양은 단맛으로 다시 태어난다'라고 소개한다. 차례만 보아도 문장의 내공이 느껴진다. 더구나 화가(미술가)가 붙인 제목이 아니라 감상자(저자)의 글 제목이 적혀있어, 원작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나아가 원작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도록과의 차별성도 갖는다. 물론 본문에는 작품명이 나와 있지만, 차례에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아침 미술관'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를 열어 보는 건 어떨까? 저자가 비즈니스맨을 위해 이 책을 기획한 것처럼,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작가 또는 작가의 다른 그림을 검색하고 다운로드해 핸드폰에 나만의 미술관을 세우는 건 어떨까?

"바람을 묘사할 때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바람이 지나간 길, 반대편 나무가 요동치는 것은 물론 혼탁해진 공기와 먼지까지도 그려야 한다(1207)."고 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감동과 통찰을 넘어 나의 삶을 마주하게 해 주는 작품들로 내 손안의 미술관을 채우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추필숙 학이사독서아카데미회원

문화부 jeb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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