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의 휴먼 갤러리](3)진일보한 장치 ‘원근법’, 전근대적 추종으로 생동감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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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첼로, 원근법을 위한 전쟁, 원근법을 위한 모자

우첼로는 ‘산 로마노 전투에서의 용병장 니콜로 다 톨렌티노’(1438~1440)에서 원근법 역량을 맘껏 뽐낸다. 우첼로는 한 점 소실점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비례에 맞게 축소하면서 입체적인 공간감을 연출하는 ‘일점소실점 선원근법’을 이 그림에 적용했다.


■ 원근법을 위한 전쟁

‘우첼로’ 원근법 역량 뽐내고 싶어

창·투구 소실점 향해 정돈하는 등

종합적 회화 아닌 도식 나열

맹신적 태도가 정태적 그림 그려


피렌체의 화가 우첼로(Paolo Uccello·1397~1475)는 1440년 코지모 데 메디치에게서 주문받은 산 로마노 전투 기념화 중 첫 번째 그림을 완성했다. 1432년 전투에서 흰 말을 타고 진두지휘하는 영웅 톨렌티노가 이끄는 피렌체 군은 힘차게 진군하고 있고, 그 기세에 눌린 맞은편의 시에나 군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지고 있다. 승리의 돈줄은 코지모 데 메디치. 전쟁비용을 아끼지 않았지만 사적인 목적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으로, 그는 고향인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정치 복권과 함께 피렌체에 영광을 가져다 준 이 전쟁을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기념하고 싶었다. 3m가 넘는 대형 전쟁기념화 세 점을 주문받은 화가 우첼로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피렌체 최고의 작가임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을 통해 메디치가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과시하고 싶었던 만큼이나 화가 우첼로는 원근법적 역량을 과시하고 싶은 야망으로 불탔던 것이다.

메디치의 속마음을 잘 읽어낸 우첼로는 전쟁터를 피 흘리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이 아닌, 화려하고 기념비적인 승리의 현장으로 그려냈다. 그런데 승리한 편의 기세등등한 함성, 후퇴하는 적들의 혼란, 흥분을 주체 못하는 말들의 울음소리 등으로 아수라장이어야 할 이곳에 흐르는 이 기묘한 정적감은 무엇인가? 이 전쟁판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창이며 투구, 쓰러진 병사를 차분하게 정돈해 놓았다. 그것도 단 하나의 방향, 바로 소실점이라는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우첼로는 선배 화가 마사초(Masaccio, 1401~1428)가 그린 그림이 얼마나 피렌체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마사초는 27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두 명의 기증자와 사도 요한과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성 삼위일체’는 새로운 시대의 교과서 같은 그림이 되었다. 이 작품은 원근법, 정확하게는 일점소실점 선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그림이다. 이것은 한 점 소실점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비례에 맞게 축소되면서 입체적인 공간감을 연출하는 방법이다. 연이어 서 있는 기둥과 천장의 사각형 모양의 패턴이 있는 공간이라면,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

우첼로, 마자키오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 1430~1440.


그러나 세상만사 모든 일이 실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 게 문제다. 우첼로가 그려야 하는 그림처럼 전쟁터는 당연히 기둥도 천장도 없는 허허벌판일 뿐이다. 이곳에서 선원근법적인 공간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우첼로가 찾아낸 해법은 땅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소실점을 향해서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 소실점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쓰러진 병사의 몸에 적용된 과감한 단축법이 실험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인위적이고 정태적인 느낌을 면할 수가 없다. 그는 조금이나마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격렬한 말의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정 간절하게 원근법의 대가가 되고 싶었던 우첼로는 승장 니콜로 다 톨렌티노에게 희한한 모자를 씌웠다. 누가 봐도 전쟁용도 아니고, 당시의 남성 패션으로도 과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모자다. 이 모자는 그가 다양한 형태를 원근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실험했던 마자키오(Mazzacchio)라는 도넛 모양의 입체 도형을 적용한 것이다. 어떤 복잡한 형태도 우첼로는 일점소실점 선원근법으로 모두 포착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일까? 우첼로는 밤을 새워 원근법 연구에 몰입하느라 부부생활을 등한시한다고 항의하는 부인을 물리치면서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이 일화만으로도 우첼로가 원근법을 글로 배웠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우첼로의 이 그림은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감동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살아 있는 인간에 관한 탐구를 담은 것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대로의 도식이 나열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닥의 분홍색도, 원경과 근경의 관계가 마치 무대 장치처럼 덧대어져 있어 어색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화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기꺼이 “자연의 제자”가 되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연을 관찰해 나가면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다. 좀 더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우첼로도 골방에서의 연구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 자연을 관찰했어야 했다. 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자연 자체를 스승으로 삼지 않고 다른 화가들이 그렸던 그림만을 모방하는 순간 예술은 다시 쇠퇴하기 마련이다. 살아 있는 자연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선원근법 이외에도 공기원근법, 단축법, 명암법, 유화의 사용 등 다양한 요소들이 종합되어야만 우리가 아는 성숙한 르네상스 회화가 탄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태도를 본다. 원근법이라는 근대적인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했지만, 그 원근법을 받아들이는 우첼로의 태도는 매우 전근대적이었다는 셈이다. 그에게 원근법은 맹목적으로 추종한 절대 명제였다. 맹신과 교조는 중세의 유물이다. 결국 우첼로에게서는 원근법이라는 근대적인 장치도 그 본연의 생동감을 잃고 말았다.

■ 원근법적 진실과 원근법적 착각

원근법은 현실을 더욱 생동감 있게 그리려는 의도에서 고안된 하나의 가능한 방법이었을 뿐,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원근법 없이도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원근법은 세잔과 피카소가 등장할 때까지 서구 미술과 철학의 500년을 지배한 시각적 원칙으로 군림한다. 원근법은 중세적 관점보다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 커 보이고 멀리 있으면 작아 보이는 것은 원근법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이치로 여겨진다. 그런데 크기는 의미와 관련이 있어서 우리는 흔히 ‘의미가 크다’라고 표현한다. 커 보이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장에 나타나 기어코 악수를 하는 정치인들은 이 원근법적 착각의 원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가까이서 접하면 의미가 큰 존재처럼 여겨져 진정한 의미인 정책 비교를 간과하고 표를 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중세 시대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가 중요해서 거리와 상관없이 중요한 사람은 크게, 덜 중요한 사람은 작게 그렸다. 물론 가장 크게 그려지는 것은 신과 성인들이요, 그 다음엔 왕들이었다. 원근법의 등장으로 신 앞에 무릎을 꿇은 인간들이 단지 앞쪽에 있다는 이유로 이전보다 크게 묘사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를 신 중심의 문화라고 설명하는 것도 사실은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은 질서를 사랑하셨는데, 그 질서란 다름 아닌 신분제 사회의 질서였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를 사랑한 것은 신이 아니라 지배계급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신은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하신다. 어쨌든 원근법은 이런 중세의 신분제적인 질서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 한 개인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방법이긴 했다. 그러나 원근법이 전제하고 있는 중요한 한계를 간과하고 절대시 할 경우 앞서 지적한 것을 포함해 다양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원근법은 ‘지금, 여기’에 소실점에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어느 누구도 ‘지금, 여기’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다만 시간 속에서 흘러갈 뿐이고,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의 소실점도 달라진다. 같은 풍경도 다른 위치에 서면 다르게 보이는 게 맞다. 진실은 서로 다른 관점의 가능한 것들의 총합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한 사람의 관점에서만 유일하게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학문은 진실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와 방법론을 찾기 위한 인간의 분투이다. 학문의 지형도 역시 새로운 분과의 출현과 통합 등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뒤러’ 판화로 본 원근법적 구도는

주체·객체로 세상 이분화하는 것

주체 시각으로 능동성 잃은 객체

재구성해야 한다는 세계관 낳아


알브레히트 뒤러, ‘인체비례론’의 삽화, 1525.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원근법은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여겨져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100여년 뒤 독일 화가 뒤러는 원근법 연구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책에 삽입하기 위해 제작한 원근법 관련 판화는 원근법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구의 원근법은 ‘지금, 여기’에서 세상을 자신과 분리해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연구하는 자의 등장을 의미했다. 이것은 서구의 근대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원근법적 구도는 보는 사람(주체)과 보여지는 대상(객체)으로 세상을 이분화시킨다. 여기서는 보는 사람이 만물의 척도가 된다. 뒤러의 그림에서처럼 보는 사람은 서양 백인 남성이다. 객체 쪽에 있는 관찰의 대상들은 소위 ‘타자화’되고 능동성을 잃는다. 타자화된 대상은 자신의 언어를 잃고, 주체의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서만 표현된다. 이런 시선은 문화사에서 정신 대 물질, 이성 대 감성, 문명 대 자연, 남성 대 여성, 서양 대 동양 등 파생적인 대립쌍을 만들어내며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고착화한다.

19세기 말 프랑스 회화에는 난데없이 농촌 여인을 그린 그림들이 쏟아진다.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나온 현실 왜곡의 결과물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농촌 여인들은 찌든 도시문명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당시 농업생산력 수준에서는 당연히 남성 노동자의 비중이 훨씬 높았지만, 그림 속 그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밀레가 그린 ‘농기구를 든 남자 농부’는 폭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기피되었고, 철저히 도시인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때 묻지 않은 농촌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비폭력적인 시골 처녀들을 그린 쥘 브레통(Jules Breton, 1827~1906) 류의 그림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그림의 허구성은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소설 <테스>의 시골처녀 여주인공 테스의 비극적인 운명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도 이런 류의 그림이 마치 도시인이 잠시 농민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것 같은, 진정성이 없는 그림이라고 비판했다.

서구 ‘원근법적 착각’ 500년 지속

시민 혁명과 인권을 외치면서도

발전 더딘 동양을 계몽시킨다는

잔혹한 제국주의 오류 범해


대내적으로는 시민 혁명과 인권을 외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잔혹한 제국주의자가 되었던 서구의 오류는 이런 원근법 문화의 일방적 발전의 귀결이다. 동양은 미발전된 자연 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니,합리적인 서구가 문명을 가르치고 계몽시켜야 한다는 제국주의 논리가 만들어졌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서 NBC 해설자의 충격적인 일제 식민지 옹호 발언은 한 개인의 무지가 아니라 500여년 이상 지속된 원근법적 착각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 세 점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분산, 소장돼 있다. 본문에서 다룬 그림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소장이다.

■ 필자 이진숙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 저서가 있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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