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 속에 나오는 위인이나 성인들은 너무도 멀리 있다. 그들은 천상의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손 내밀어도 가 닿을 수 없다. 하지만 늘 이 땅에 발 딛고 계신 위인과 성인도 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들의 위인이고 성인이다. 자식들을 위해 몸과 마음 다 바친 위인,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성인. 그래서 이 책은 성인전이고 위인전이지만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신 성인과 위인들의 이야기다.”
책을 내면서 중에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게 하는 ‘어머니’라는 소설
어머니들은 말한다. ‘내가 세상 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은 너끈히 나올 것’이라고. 과연 그렇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다. 두툼하고 묵직한 소설! “나 세상 산 이야기를 어디다 하고 죽으까.” 하지만, 어머니들은 그 소설 같은 이야기를 더는 들려줄 데가 없었다. “쌔가 빠지도록”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을 향해 어미 품을 떠나 살고, 철들면 사람 노릇 할까 싶던 지아비도, 따뜻하고 널널한 의지처이던 지아비도 앞세웠기에 말이다.
‘보길도 시인’으로 불리던 강제윤은 고향 보길도의 찻집 ‘동천다려’를 접고, 2006년부터 나그네가 되어 섬을 떠돌고 있다. 섬 여행가 강제윤은 그동안 200곳도 더 되는 섬을 걷고 또 걷는 중에, 자연스레 이 땅에 펼쳐진 ‘어머니’라는 이름의 소설을 수도 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가 “길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은 세상 모든 자식의 어머니”였고, 그 어머니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느 한 자락 내 어머니 이야기 아닌 것이 없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한 편의 소설이면서 또한 세상 모든 자식들의 고향임을 그는 보고 듣고 깨우쳤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여섯 해 동안 이 나라의 섬과 항구 포구를 떠돌며 만난 그 어머니들을, 그 “오래된 삶의 이야기”를, 이 책 「어머니전_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에 담았다.
“성도 이름도 없이 평생 누구 어미라고만 불리며 살아온 어머니들”의 육성은 지난 세월의 고통과 설움이며 그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때로는 애틋한 그리움을 토해 내기도 하고, 때로는 구수한 입심과 흥으로 따끔한 경책 같은 삶의 지혜를 내비친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갯벌에서 장바닥에서 밭에서 삶의 자리를 평생 지켜오며 “해학과 가락이라는 무기”를 일구었으니, “삶의 부조리를 해학으로 버무릴 줄도 알고 바닥없는 슬픔을 가락에 실어 보낼 줄도” 아는, “삶의 고수들”인 것이다.
고통과 설움의 세월을 이겨낸 삶의 고수, 어머니!
“여자는 철들면 시집가는디, 사내놈은 철들면 죽어 뿌러!”
“사람은 재산은 없을망정 신용은 있어야 해. 손님한테 한 번 실수하면 손님 떨어져.”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욕심이 생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져유. 죽으란 법은 없어유.”
“첫 숟갈에 배부를까…그물코도 삼천 코면 걸릴 날 있다고 차분히 맘먹고 사시오.”
“아들놈들은 꼭 돈을 넘어다본단 말이야.”
그리스에 “집안에 노인이 없다면, 한 사람 빌려 와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사 수많은 곡절을 넘어온 노인은 삶의 고수임을 두고 한 말이다. 하물며 그 노인이 ‘어머니’라면, 자기 삶의 비급을 자식에게 꼭 전하고 싶지 않겠는가.
글쓴이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한수 배우고 또 다른 섬으로 포구로 삶의 고수들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글쓴이가 전하는 어머니들의 ‘한수’ 훈수는 딱히 거창하진 않다. “고통과 설움의 세월을 이겨 낸” 어머니들은 “비장의 무기”란, 우리가 늘 한쪽 귀로 한쪽 귀로 흘리던 그 평범한 충고들이었다.
어머니들은 “학교를 안 댕겨서 암것도 몰”르지만, 삶이란 나눌수록 풍요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 속은 기실, 스스로 경험한 뒤에 깨친 살아 있는 삶의 진리였다. 그렇다고 영 안심하고만 읽을 수도 없다. 진도 홍주 무형문화재 허화자 어머니는 말한다. “술로 아깐 세월 탕진하지 마시오. 청춘 금방 가버려. 애들도 늙구만.” 글쓴이의 말을 빌자면, “아프다. 칼끝이 심장을 파고들수록 간절함도 깊어진다.” 그야말로 뜨끔할 경책이 아닐 수 없다. 글쓴이는 그래서 말한다. “어머니들은 모두가 한가락 하는 삶의 고수들이었다.”
스스로 사약을 내리는 어머니, 왜?
사연도 갖가지다. 어떤 신랑은 “급하게 밤에 데려다 놓고 뒷날 군인 가버”렸다. “즈그 어멈 밥해 주라고.” 또 어떤 남편은 풍랑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간신히 헤엄쳐 왔으나, 뭍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오르지 못했다. 십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해 놓은 나무를 여전히 아껴 때며 사는 홀어멈이 있는가 하면, 해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어머니도 있다. 글쓴이가 목포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어머니는 스스로 사약을 준비한다. “풍 오고 치매 오고 그런 거 나도 모른 순간에 와 빌더라고. 그럴 때는 얼릉 이걸 먹고 죽어 버려야제. 그래야 자식 안 성가시제.” 해서, 나그네 시인은, “간난신고를 견디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이유도 자식을 위해서였는데,” 이제 오로지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려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라는 그 이름이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잔혹하다”고 말한다.
아픈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 동네 할아버지한테서 “팔십 넘어 그런 프로포즐 다 받”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 어머니, 구순 나이에 여전히 현역 해녀로 활동하는 어머니, “장동건이같이 잘생긴” 아들 가방에서 나온 콘돔 때문에 고민에 빠진 어머니, “날도 좋은데 하늘로 딱 올라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어머니, “장사 지내는 건 자식들이 와서 하고 우린 먹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어머니 등, 책이 펼쳐내는 ‘어머니 열전’은 눈물만큼 웃음도 감동도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