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영화판 CGV가 잡고 있는 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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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8.28.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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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영화관 168개중 CGV 물량 61개
베트남 극장, 압도적 1위 차지하고 있어
인구 1억명, 30대 이하 절반 넘는 인구구조
영화산업 성장하기에 최적 구조로 꼽혀


[신짜오 베트남-2] 하노이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찌민에 출장차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정치수도, 호찌민은 경제수도라고 하죠. 실제 도시별로 비교한 1인당 국민소득 역시 호찌민이 하노이에 비해 우위에 있습니다. 베트남 전체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 정도인데 호찌민은 6000달러, 하노이는 4000달러 정도 된다고 해요. 단순 비교한 호찌민 생활수준이 하노이의 1.5배 정도 되는 셈이지요. 베트남에서 산 지 10년 넘었다는 한 금융사 법인장은 호찌민을 '좀 부족한 서울', 하노이를 '좀 넉넉한 평양'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사견이 반영된 비유이니 적당히 흘려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노이가 호찌민보다 훨씬 살기 좋다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호찌민 비보시티(VIVO CITY)에 있는 CGV 영화관 입구에 현지 저비용 항공사인 비엣젯 항공 광고가 걸려있다.


호찌민 출장 이유는 CGV 현지 법인 관련 이슈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1998년 강변 테크노마트에 CGV 멀티플렉스가 처음 생긴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그 당시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한국 영화시장을 단숨에 갈아엎을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이전까지 영화관은 '극장'이라고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다소 구시대 느낌이 나는 무엇이었습니다. 단성사, 피카디리, 허리우드, 중앙극장, 명보극장 등 작게는 단관, 많아야 3개관 안팎 극장을 운용하는 시스템이었지요. 하지만 CGV 강변은 강변테크노마트 10층에 스크린 11개를 동시에 내거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영화관을 단숨에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 있던 기존 영화관과 달리 앉으면 몸이 파묻히는 푹신푹신한 시트에 유니폼을 입은 젊은 직원들이 친절한 안내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층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CGV 강변은 '대학생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영화관' '소개팅 장소로 손꼽히는 명소'로 대접받았습니다. 예매창구 인근에서 누가 봐도 소개팅으로 추정되는 어색한 남녀가 만나 쭈뼛거리는 모습으로 표를 예매하는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CGV 강변이 대성공한 이후 2000년 초반 삼성동 코엑스몰에 16개관 메가박스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면서 한국 영화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길을 걷게 됩니다. 영화관이 영화만 보는 장소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노는 메카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로 한국 영화시장은 급속한 성장세로 접어들어 2013년 연간 관람객 2억명 시대를 엽니다. 글로벌 '톱5' 수준의 시장으로 올라섰습니다.

베트남 얘기를 하면서 20년 전 한국 얘기를 한참 한 것은 지금 베트남 영화시장이 당시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베트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장 사업자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1위가 CGV, 2위가 롯데시네마입니다. 인구 1억명에 육박하는 가능성 높은 베트남 영화시장 주도권을 두 한국 업체가 쥐고 있는셈이지요.

호찌민 비보 시티에 있는 CGV영화관 매점 전경


두 업체는 한국에서 성공한 멀티플레스 전략을 현지에 이식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8월 현재 베트남 전체에는 168개 영화관이 있는데, 그중 61개에 CGV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롯데 간판이 걸린 곳은 38개에 달합니다. 3위 업체가 현지 업체인 갤럭시(Galaxy)인데 고작 14개에 불과합니다.

스크린 숫자로 보면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집니다. 전체 864개 스크린 중 CGV 보유 물량이 365개, 롯데 물량은 171개에 달합니다. 수도 하노이에 있는 182개 스크린 중 CGV 보유분이 무려 100개입니다. 호찌민 307개 스크린 중 137개를 CGV가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베트남 영화시장에서 CGV는 절대적인 큰손입니다. CGV는 꼭 20년 전 CGV 강변을 개관하며 구축했던 멀티플렉스 역량을 베트남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이 저절로 따라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한국 영화시장도 그랬습니다. 각종 멀티플렉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영화판에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볼 곳이 많아지니 영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영화를 만들어 한번에 걸 수 있는 상영관이 비약적으로 늘어 홍보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길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20년 전 CGV 강변의 성공스토리 이후 한국에 멀티플렉스화가 급속히 진행되지 않았다면 '1000만 영화' 탄생 시기도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베트남은 한국이 20년간 걸어왔던 길을 압축해 걷고 있습니다. 2010년 베트남 전체 영화관은 고작 25곳에 불과했습니다. 고작 8년 전 일입니다. 상영관 숫자는 117개였습니다. 2011년 28개이던 영화관이 2012년 37개로 늘어나더니 2014년 72개, 2015년 92개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입니다. 2017년에는 147개까지 늘어납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2020년에는 영화관 숫자가 242개가 될 거란 예상입니다. 10년 만에 영화관 숫자가 꼭 10배로 늘어나는 셈이지요. 2010년 117개였던 스크린 숫자는 지난해 757개로 증가했고, 2020년에는 1262개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10년 만에 영화에 쏠리는 순수 관심이 10배나 고스란히 늘어난 것일까요. 꼭 그렇게 볼 수는 없겠습니다. 다분히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급증한 영화관 공급이 밀어올린 베트남 영화관람객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요. 2011년 베트남 전체 영화관람객은 1000만명 수준이었습니다. 3년 만인 2014년 관람객이 2배인 2100만명으로 늘더니, 또 3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2배 넘게 증가한 4500만명이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7400만명까지 늘어날 거란 예상입니다. 여기서 베트남 인구구조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 인구는 9649만명 정도로 1억명 고지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2배가량 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 중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입니다. 즉 영화관에 들를 가능성이 높은 젊은 인구가 엄청나게 많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베트남은 매년 6% 넘게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중산층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여가 활동에도 많은 소비를 하게 되겠지요. 지금까지 하노이, 호찌민을 비롯한 대도시 위주로 영화시장이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2선, 3선 도시까지 파급효과가 밀어닥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국민 1인당 얼마나 많이 영화를 보느냐에 관한 숫자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영화를 아주 많이 보는 나라에 속합니다. 1년에 평균 4.3회나 영화를 봅니다. 싱가포르가 3.4회, 말레이시아는 2.2회 정도입니다. 태국이 0.7회 정도 되고 베트남은 아직 0.5회에 불과합니다.

자, 그렇다면 한 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일단 베트남 영화시장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에 도가 튼 멀티플렉스 극장이 가열차게 상영관 숫자를 늘리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성공스토리를 썼던 CGV와 롯데시네마가 그들의 성공모델을 베트남에 원활하게 이식할 확률이 높습니다.

호찌민 비보시티에 있는 CGV 영화관 매표소


그런데 베트남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아직 0.5회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게 두 배인 1회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무난히 연간 관람객 수가 1억명 고지를 찍게 됩니다. 옆나라 말레이시아 수준인 연 2회로 늘어나면 연 관람객 수는 2억명으로 늘어납니다. 베트남이 한국만큼 시장 규모를 갖추게 되는 셈이지요.

한국 영화시장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에 '대기업 위주 멀티플렉스가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견해를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규모를 갖춘 멀티플렉스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특정 영화를 상영관에 몰아주기하는 식으로 영화 흥행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베트남 시장에서 CGV 파워는 앞으로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이 같은 파워를 토대로 CGV 베트남은 현지 배급시장의 69%, 광고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CGV 베트남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 정도면 현지 영화판의 '절대 갑'이라 볼 수 있습니다. 광고시장의 90% 물량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영화를 통한 제품 홍보를 시도하는 광고주들이 다른 곳을 제쳐두고 전부 CGV에만 몰려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기 때문이죠. CGV베트남은 베트남 영화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를 타고 이 같은 독점구조를 더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CGV베트남은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연내 코스피 기업공개(IPO)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CGV베트남은 기업 가치가 얼마나 나올지를 놓고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논의되는 기업 가치는 약 4000억원 수준입니다. 사실 이 가격이 비싼지 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PER, EV/EBITDA, PSR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때로는 기업 가치가 잘 나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지표를 들고 와 기업 가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지요. 그럴듯한 데이터로 무장해 기업 가치를 포장하는 전문가의 의견도 다 숫자놀음일 때가 많습니다. 가격은 시장에서 후행적으로 결정되는 결과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베트남 영화시장은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고, 현지 확고한 1위 사업자는 CGV베트남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한국판 멀티플렉스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간 효율적으로 베트남 시장에 침투해왔다는 것입니다.

CGV베트남 상장은 오는 10~11월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과연 시장에서는 CGV베트남 기업 가치를 어느정도로 쳐줄까요. 공모가가 어느 선에서 정해질지,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은 어떻게 될지를 놓고 영화밥을 먹는 많은 사람들이 CGV베트남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하노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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