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기업 열전] 우리동네 생활쉼터 편의점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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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훼미리마트-GS25, 사이버머니 판매·DVD 대여까지 서비스 확장 엎치락 뒤치락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외로운 사람들이다. 직장인·자취생·유학생처럼 젊은 독신자들이 많다. 밥을 챙겨 먹기 싫은 ‘귀차니스트’일 수도 있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편의점은 도시의 아침을 깨운다. 출근길에 바나나우유 한 개와 삼각김밥 하나를 허겁지겁 먹고 회사로 뛰어나가는 사람, 지난밤 과음 탓에 퀭한 눈으로 숙취 음료를 들고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 얼큰한 컵라면 국물로 속을 푸는 사람….

야근이 잦은 사람, 밤늦게까지 공부(혹은 게임)하는 학생처럼 밤을 잊은 그들도 편의점을 들른다. 찜통에서 막 꺼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찐빵을 호호 불어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냉동만두를 즐기기도 한다. 겨울밤 추위를 확 풀어주는 뜨끈뜨끈한 우동 국물도 좋다.

편의점(CVS·Convenience Store)은 ‘소형 만물상’ ‘우리 동네 냉장고’ 등으로 불리며 반가운 거리의 주방이자 수다용 쉼터로 자리잡고 있다. 최초의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작은 제빙회사였던 사우스랜드사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얼음을 보관하느라 큰 냉장고를 갖고 있었다. 냉장고엔 우유·빵·달걀 등 식료품을 담아두었는데 동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저녁과 일요일에 판매한 것이 편의점의 시작이었다. 이 회사가 편의점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세븐일레븐’이라는 상호를 썼다.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 다른 가게와 달리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선 80년대 독신자와 고령자가 늘어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크게 붐을 이뤘다. 우리나라는 1989년 5월 올림픽선수촌에 문을 연 세븐일레븐이 처음이었다.

1990년 후반 나란히 1호점 선보여

보광훼미리마트는 일본의 대표적 편의점 브랜드인 훼미리마트와 손잡고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90년 10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문을 연 훼미리마트 1호점이 그 시작이다. 당시엔 동네 가게와 차별화해 고객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편의점으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했다. 밝은 조명, 세련된 인테리어를 가꾸어놓았다. 이광우 훼미리마트 팀장은 “24시간 내내 문을 여는 것도 젊은 층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젊은 층들은 당시 편의점을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유통 사업을 해오고 있던 LG그룹도 편의점 사업을 준비한다. LG는 사업 초기 일본의 편의점 업체와 기술 제휴를 모색했다. 하지만 이 업체가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해 기술 제휴 계획을 백지화하고 단독 개발로 방향을 튼다. 김일용 GS25 팀장은 “90년 12월 ‘LG25’ 1호점 경희점이 문을 열었다. 24시간에 1시간을 더한다는 서비스 정신과 행운의 숫자 7을 구성하는 뜻을 담은 브랜드였다”고 설명했다. 2004년 GS그룹과 LG그룹이 분리되면서 LG25는 GS25로 새롭게 태어난다.

편의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건 담배다. 그 뒤를 잇는 게 바로 바나나맛 우유와 캔커피, 삼각김밥이다. 삼각김밥과 곁들여 먹기 좋은 음료들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완재인 셈이다. 90년대만 해도 편의점에선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후르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각김밥을 찾게 된 건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2001년 삼각김밥 가격이 900원에서 700원으로 내리면서 가격 경쟁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덕도 봤다. 삼각김밥은 거리 응원을 하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였다.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 인근 편의점에선 삼각김밥 4천~5천 개가 팔려나갔다. 여기에 삼각김밥 업계의 다양한 메뉴 개발도 고객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쌀밥에 채소볶음과 고추장을 버무리고 불고기볶음을 섞어 비빔밥 고유의 맛을 낸 전주비빔 삼각김밥이 단연 인기다. 삼각김밥은 화끈불낙지·매콤갈비찜·동그랑땡·순살돈가스·누드·사천탕수육·중화볶음밥 등으로 변화·발전 중이다.

두 회사는 얼마 가지 않아 위기를 맞는다. 90년대 초 편의점 업계엔 점포 수 경쟁이 불붙는다. 그 결과 부실 점포 양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GS25도 사업 초기 치열한 경쟁에 휩싸이면서 적자를 감수했다. 93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잇단 가맹 경영주의 항의를 받았다. 급기야 사업에 대한 포기 논의까지 나올 정도였다. “3년 내 흑자 전환이 안 되면 편의점 사업, 포기하시오.” 구자경 LG그룹 회장이 내린 결론이었다.

GS25는 원인을 찾아나선다. 무리한 출점 경쟁으로 부실 점포가 양산됐다고 봤다. 점포 운영의 문제도 있었다. 외국의 경영 기법을 여과 없이 그대로 적용하면서 시행착오가 나타났다. 여기에 값이 비싸다는 인식을 편의점의 장점인 편의성으로 극복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가맹점과 임직원 아이디어로 위기 돌파

GS25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가맹 경영주와 본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정춘호 GS25 개발부문장은 “우선 가맹 경영주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역삼동 반도유스호스텔(현 GS강남타워)에서 전국 100여 명의 가맹 경영주와 본부 임직원들이 만나 대화를 시작한 데 이어, 가맹 경영주 대표들과 밤을 새우는 철야 토론을 거쳐 본부와 점포의 갈등을 줄여나갔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 점포를 찾아가며 고객과 가맹 경영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현장 방문을 통해 수집된 의견은 점포 경영에 바로 반영됐다. GS25는 이같은 노력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훼미리마트는 97년 외환위기에 따른 고금리와 금융시장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훼미리마트는 비교적 쉽게 위기를 극복한다. 훼미리마트는 96년부터 임직원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릴레이 회의를 열었다. 이건준 훼미리마트 이사는 “IMF의 혹독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임직원 회의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내부적으로 변화를 위한 혁신운동이 일어났다. 훼미리마트는 남들이 ‘위기’라 하여 움츠리고 있을 때, 임직원들이 더 발로 뛰고 과감히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회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훼미리마트는 북한 사업을 발 빠르게 치고 나간다. 지난 2002년 금강산지구에 직영 편의점 2곳을 열었다. 2004년에는 개성공단에도 문을 열었다. 개성공단 편의점에서 개점 6개월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팩소주’였다. 개성공단에는 주점이 없기 때문에 남쪽에서 파견된 관리자들이 북한 직원들과의 회식을 위해 팩소주를 많이 사갔다고 한다.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의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를 가장 즐겨 먹었다. 남쪽 관리자들이 이들을 위해 회식용으로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GS25는 생활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보인다. 96년엔 전기료 수납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공공요금 수납기관이 공기업이어서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시도였다. 공공요금을 편의점에서 낸다는 발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공기업을 설득해야 했다. 전산시스템 개발도 GS25의 몫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이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이듬해 전기요금 수납 서비스를 국내 유통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선보이는 성과로 나타났다.

북한에 진출하고 공공요금 수납도

편의점은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소매점을 뛰어넘어 고객이 원하는 ‘편의’를 함께 제공하는 생활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공요금 수납이나 택배 서비스를 시작으로 디지털 사진 인화 서비스, 우체국 대행 서비스는 물론 보험과 영화 티켓·사이버머니 판매, DVD 대여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훼미리마트는 ‘생활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리빙스테이션’을 내세운다. GS25는 ‘쉽고 편한 생활공간’(eZ Life Zone)을 표방한다.

누가 앞서나갈까? 훼미리마트는 4천100여 개 점포를 갖고 있다. GS25는 3400여 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매장 수에선 훼미리마트가 앞선다. 반면 GS25는 점당 매출이 높다고 얘기한다.



불황속 희비 갈린 상품

전주비빔밥 뜨고 신라면은 추락


편의점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경기 불황은 편의점 먹을거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빠듯해지면서 값싼 삼각김밥과 소주가 편의점 인기 품목으로 떠올랐다. 올해 GS25에선 ‘뉴전주비빔밥’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많이 팔려 판매 증가율에서 1위였다. 참치김밥의 판매 증가율은 5위를 기록했다. 훼미리마트에선 ‘참치김치천냥김밥’이 판매 증가율 58.4%를 보이며 2위를 차지했고 ‘전주비빔’이 3위에 올랐다. 삼각김밥이 뜬 것은 물가 상승으로 분식점 김밥 값이 오르면서 지갑이 얇아진 사람들이 예전 가격 그대로인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바나나맛 우유’와 캔커피 ‘레쓰비’, 소주 ‘참이슬’ 등 값이 비교적 싼 먹을거리도 판매량이 늘었다. 반면 가격이 오른 상품은 판매 순위가 뒤로 밀려났다. 올 초 가격을 100원 올린 농심 ‘신라면’은 지난해 6위에서 다섯 계단이나 하락하며 11위에 그쳤다.

콘돔 판매도 쑥 늘었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GS25에서 팔린 콘돔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2% 증가했으나,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한 8월부터 판매량이 급증해 11월까지 평균 19.3% 늘었다. 월별로 보면 8월 19.3%, 9월 17.5%, 10월 16.9%, 11월 23.7%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에서도 지난 1~7월까지 콘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증가했으나, 8~11월 콘돔 매출은 17.5%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콘돔 판매가 늘어난 것은 불황 탓에 부부들이 출산계획을 늦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황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겨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쾌락을 좇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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