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0년 임하룡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내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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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8.24. 오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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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데뷔 40주년 맞아 후배들과 디너쇼

‘귀곡산장’ 등 선보이며 추억여행

“개그맨들 설 무대 줄어 안타까워”

한 시대 풍미한 코미디계 ‘거장’

2000년 ‘개콘’이후 찾는데 없자

신인 마음으로 영화·드라마 도전

작은 역서 시작해 연기력으로 인정

“공백 못견뎌” ‘복면가왕’ 등 출연

음원 발표 ‘젊은 오빠’ 도전은 계속



빨간 양말을 신고 ‘젊은 오빠’로 인기를 얻었던 임하룡이 데뷔 40년을 맞아 25일 부산에서 디너쇼를 연다. 20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빨간 커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가수는 노랫말대로 산다는데, 코미디언의 삶은 유행어 따라 흐르는 걸까. 1980년대 코미디 ‘청춘을 돌려다오’에서 ‘젊은 오빠’라는 말을 유행시킨 임하룡은 데뷔 40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젊은 오빠’였다. 20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66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바지에 티셔츠가 잘 어울렸다. “내가 만든 말이니 끝까지 우기고 있다(웃음)”는데,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신기하게도 그의 머리카락은 하나도 새지 않고, 숱도 많다. “못생긴 것도 유전이지만, 흰머리 안 나는 것도 유전이거든요. 하하.” 중년에서 다시 청년으로 가고 있는 ‘젊은 오빠’는 어쨌든 올해로 데뷔 40돌이고, 그래서 25일 부산에서 디너쇼를 연다.

■ 40년? 쑥스럽구만~ “여고생? 아, 고생을 많이 해서 여고생이구나.” “거장? 난 거추장이야!” 그의 죽지 않는 입담에 연습실에 웃음꽃이 핀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오나미와 과거 ‘달빛 소나타’ 등에 나온 이경래 등 디너쇼에 함께 나오는 선후배와의 연습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임하룡이다. 40돌이라 의욕이 넘치나 했더니 “디너쇼가 실은 쑥스럽다”고 한다. “쑥스럽지. 근데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과거 이주일 선배님도 하고 다들 해서 그런가, 그냥 해보고 싶더라고.” 디너쇼에는 이홍렬과 ‘귀곡산장’, 후배들과 ‘추억의 책가방’ 등 과거 인기 코미디를 선보인다. ‘낭만에 대하여’처럼 그가 좋아하는 노래와 40돌 맞아 올해초 발표한 ‘나는야 젊은 오빠’도 부른다. “한번 들어 볼래요?” 즉석에서 휴대폰으로 들려주는데 가사가 이렇다. “아직은 이팔청춘이야~” “나는야 젊은 오빠 하룡이 오빠야~” 노래를 끄고 눈앞의 ‘하룡이 오빠’가 웃었다. “아 쑥스럽구먼~.”

개그 본능이 아니라 “정말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는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대중 앞에 선 걸까. “그게 또 이상한 게 시키면 다 한다니까.” 연예인 디엔에이(DNA)는 타고 났다. 무대 구분 없이 연기자를 꿈꾸던 그는 연극에서 출발해 1978년 라디오, 1981년 티브이에 데뷔했다. 연극을 하다가 집안이 어려워져 야간업소에서 일했는데 그게 전화위복이 됐다. “같이 일하던 전유성 선배와 김학래의 추천으로”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연예계와 인연이 닿았고, 3년 뒤 방송사가 통폐합되면서 <한국방송>(KBS) 개그프로그램에 특채로 출연하게 됐다. “시험을 봤으면 난 떨어졌을 거야. 하하.”

그는 “운이 좋았다”고 주장하지만, 친근하면서도 극의 중심을 잡는 믿음직한 캐릭터는 단번에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는 바보 흉내 등 캐릭터가 강한 코미디언들이 인기를 얻을 때였는데, 그는 ‘도시의 천사들’과 ‘변방의 북소리’ 같은 꼭지에서 진두지휘하는 리더 역할로 주로 나왔다. 1986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예능상’부터 1989년, 1991년 <한국방송 코미디대상> ‘대상’ 등을 줄줄이 받으며 단숨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거장 아니라니까. 거추장이라니까 그러네.(웃음).” 그는 지금의 자신을 각인시킨 작품으로는 ‘하룡 서당’을 꼽았다.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개그 코너 ‘청춘을 돌려다오’(왼쪽부터), ‘귀곡산장’ 중 한 장면. 임하룡에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웰컴투동막골’.
■ 이 나이에 내가 하리? 40년. 그 오랜 시간이 그저 꽃길일 리 있을까. 그도 시련을 겪었다. 나이 들면 자연스레 ‘변방’으로 넘어가는 선배들의 길을 그도 걸었다. 2000년 <개그콘서트> 이후 개그프로그램에 한동안 출연하지 못했다. ‘봉숭아 학당’에서 선생님으로 나오던 중 제작진이 젊은 친구들과 해보고 싶다는 말에 주저 없이 관뒀다. “만감은 교차했죠.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그런데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코미디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당시 개그 프로그램이 한 개 뿐이어서 출연할 곳이 없었다”며 “코미디를 관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영화에서 연기를 이어갔다.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는 부분도 바로 좌절하지 않고 신인 같은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다. 그는 2004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범죄의 재구성> 등의 영화에서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지금껏 영화 25편, 드라마 18편에 출연하며 배우로 자신의 길을 닦았다. “아무도 안 써주는데 당연히 신인 같은 자세로 일해야죠.(웃음)” 하지만, 한 곳에서 톱이었던 사람이 다른 곳에서 바닥부터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남모를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코미디는 상대방이 대사를 칠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웃길까를 생각하는데, 영화는 상대 얘기를 귀 기울여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 등, 기술적인 게 너무 달라 초반에 고충은 있었어요.” 2005년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하사역으로 출연해 그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상실의 시대를 보상받았다.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그는 “연예인은 일이 끊기면 허무한데, 그런 것들에서 빨리 깨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어디선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후배들에게도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40년 연예계 인생에서 동료선후배들에게 인정받은 것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디너쇼에 함께 출연하는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1주일만 젊었어도! 그는 데뷔 이후 2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최근에는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등 예능에도 출연했는데 그 이유도 “영화와 드라마는 기다려야 하는데, 그 공백이 못견디게 지루해서”란다. “송해 선생님도 일을 계속하니까 건강하거든요. 일을 해야 건강해요.” 넘치는 에너지를 보니 ‘1주일만 젊었어도’라는 유행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넘친다. 11월 시작하는 드라마 <계룡선녀전>에서도 우두머리 신령으로 나오고, 코미디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서고 싶다. “개그프로그램이 없어진 것도 아쉬워요. 최소한 한 방송국에 하나씩은 있었으면 하죠. 개그맨들이 성장하고 뻗어 나갈 수 있는 모체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죠.” 하고 싶은 역할도 많다. “영화 <가족>에서 주현이 맡은 역이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컬슨 역을 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성격의 아버지 역할은 다 맡아보고 싶고요.” 왜 하필 ‘아버지’냐고 했더니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내가 이 나이에 아들 할 순 없잖아?(웃음) 아 1주일만 젊었어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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