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공방서울 사무국 이재은씨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지하철을 탔는데 광고 하나가 눈에 띈다. 반려견과 놀아주는 자동공놀이기구다. 기계가 공을 쏘면 반려견이 물어다가 기계의 구멍에 다시 넣을 수 있는 제품이다. 간식이 나오게 설정할 수도 있다. 공놀이와 상관없이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 급식도 가능하다. 사람이 집을 비워도 반려동물은 이제 규칙적인 식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광고를 보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 이가 있다.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비전화공방서울(이하 비전화공방) 사업단 이재은(32)씨다.

그는 “반려란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하는 짝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자동공놀이 기계가 대신 놀아주는 관계라니 참 이상하더라고요. 기술의 발달은 누굴 위한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패시브솔라하우스공법으로 닭장을 만들고 있는 비전화제작자 2기 모습.(비전화공방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패시브솔라하우스공법으로 닭장을 만들고 있는 비전화제작자 2기 모습.(비전화공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자본주의 체계는 소비계층이 있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한다. ‘아이폰9’ 사용자를 ‘아이폰10’으로 바꾸게 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아이폰10’만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기술은 인간의 삶에 이바지하기보다 자본에 봉사하고 있는 듯하다. 

비전화(非電化)공방은 말 그대로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제품들을 만드는 공방이다. '철학하는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일본에 설립한 비전화공방은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지난 2017년 서울혁신파크에 착륙했다.

비전화공방 사업단은 현재 자유로운 영혼 ‘고나’, 서두르지 않고 한 발씩 내디디고 있는 ‘루다’,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그리고 있는 ‘혜경’,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믿는 ‘톰’, 시골에서 120명 정도 친구들과 마을을 만들고 싶은 ‘단디’, 머리만 믿고 살다 몸 쓰는 일을 하고 싶어 목수의 길을 걷게 된 ‘재윤’, 서른을 넘고 보니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즐기는 법을 배우는 중인 ‘재은’ 등 이렇게 일곱명의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다. 

모두의 시장에서 비전화제작자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모두의 시장에서 비전화제작자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왼쪽 유리병처럼 보이는 제품은 비전화 정수기, 오른쪽 사각판은 비전화 제습기다. 습기가 많으면 푸른빛 부분이 분홍빛으로 변한다.(비전화공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비전화공방 사업단은 1년에 한 번 12명의 비전화제작자를 모집해 일본 비전화공방에서 축적한 20년간의 비법을 바탕으로 누구나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자본에 봉사하는 기술이 아닌 비전화제작자들이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을 전수하는 것이다.

19~39세까지로 이뤄진 비전화제작자 2기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파크에서 '에너지 자립'이라는 대안적 삶을 1년간 살아간다. 

이씨는 “‘자립’하면 개인으로 소급되는 경향이 있다. 비전화공방에서 말하는 자립은 공동체를 가꾸는 힘과 의지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방안에만 쳐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현상이 가속화된 것처럼 기술은 점점 사람을 고립시켰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형태로 발달해왔다.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기술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비전화제작자가 1년동안 수행하는 과정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자립기술과 공생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이들은 스트로베일하우스 등 비전화 건축법을 배워 주거자립을, 비전화정수기·태양열식품건조기·비전화냉장고·비전화제습기 등의 제작 기술을 배워 에너지자립을, 고추·옥수수·브로콜리·배추 등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지어 먹거리자립을 꾀한다.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로는 가공식품을 만들어 플리마켓 같은 데 나가 팔기도 한다. 

'초보들의 농장'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비전화 공방 사람들.(비전화공방 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초보들의 농장'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비전화 공방 단장 톰과 재은, 통종벼를 재배하는 우보농장 이근이씨.(비전화공방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이씨는 “며칠 전 2기 비전화제작자들이 패시브솔라(자연태양열)하우스 공법으로 닭장을 만들었다. 특별히 날이 궂지 않으면 9월 4일 닭들이 입주하는데, 닭을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토론을 많이 했다. 닭의 입주가 결정된 가장 큰 이유는 순환에 있다. 닭은 편식을 안 해서 남은 음식을 모이로 줄 수 있고, 알은 먹거리 자립에, 똥은 농장의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전화제작자들은 주거자립을 위해 기존 건축물을 패시브하우스형 작업장으로 개조하는 건축 훈련을 한다.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태양의 일조량, 단열재와 축열재 활용, 자연공기순환 등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닭장을 만들어본 것이다. 

현재 볏짚과 흙, 왕겨를 단열재와 건축재료로 사용한 스트로베일공법 비전화카페도 짓고 있다. 비전화제작자 1기가 짓기 시작한 카페를 2기가 마무리하고 오는 11월 중순 완공 파티도 열 계획이다. 

이씨는 카페에 대해 “비전화 철학, 기술, 운영 원리를 담은 상징적 공간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벽은 볏짚을 넣어서, 지붕은 왕겨를 넣어서 짓고 있는 생태 건축물 '비전화 카페'. 11월 완공 기념파티가 열릴 계획이다.(비전화공방 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벽은 볏짚을 넣어서, 지붕은 왕겨를 넣어서 짓고 있는 생태 건축물 '비전화 카페'. 11월 완공 기념파티가 열릴 계획이다.(비전화공방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불볕더위 아래서 닭장을 만들고, 직접 농사를 지어 끼니를 채우는 비전화공방의 삶은 자본주의 관점에서 별로 효율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왜 이토록 불편한 공방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걸까.

이씨는 “편리할수록 잃는 것, 불편할수록 얻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인 것 같다. 저는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데 그것을 삶은 시간을 좋아한다. 그 냄새와 끓는 소리가 가득한 공간에서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버스 도착 알림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이제 버스가 언제 올까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림이 사라졌다는 건 삶의 여백이 사라졌다는 것 아닐까. 바쁜 일상에 지쳤던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잠시 잃어버렸던 여백을 만드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전화공방은 원하는 삶을 사는 힘을 기르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황지우 시인은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고 말한다. 

플러그를 뽑고 느슨한 시간을 꽂는 비전화공방, 그곳에는 삶의 가능성으로 쿵쿵거리는 '기다림의 여백'이 있다. 

비전화공방 제품들(비전화공방 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비전화공방 제품들.(비전화공방서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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