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길…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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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식] 내가 사는 도시, 이곳 동회에서는 노인 일자리라는 직종을 만들어 일을 하고자하는 노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거리 청소이다. 처음에 난 노인 일자리라하기에 육체노동이 아닌 명소나 관광지를 안내하는 일,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병약한 독거노인을 방문하는 일등도 있다기에 신청을 했는데 그 직원이 내 말을 묵살했는지 내가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뜻밖에 거리 청소하는 일자리에 나를 배정해놓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 항의를 하니까, 그 일자리도 경쟁이 심해서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기에 경험삼아 해보기로 했다.
그 이튼 날 쓰레질(= 비로 쓸어서 깨끗이 청소하는 일) 에 필요한 집게와 빗자루 그리고 손수레를 챙겨가지고 지정된 장소인 대학공원에 나갔더니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구역에서 쓰레질할 노인들은 모두 8명, 남자와 여자 한 쌍식을 묶어서 4조로 편성하여 작업을 시켰다. 그들은 몇 년 전부터 모두 이곳에서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이고 2조의 남자 한 사람이 빠지게 되어 그 자리에 내가 오게 된 것이다. 일자리노인들이 하는 일은 주로 상가와 주택가의 도로변에 버려져있는 쓰레기나 오물을 집게로 줍고 빗자루로 쓸어서 포대에 담는 일과 여러 가지 쓰레기가 분별없이 담겨있는 포대는 다시 쏟아서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해서 다시 포대에 담아 청소차 인부들이 실로 오는 쓰레기집결지에 모아두는 일이다.
우리 노인들은 각조가 배당된 장소를 돌면서 쓰레질을 하다가 마감 시간이 되면 대학공원으로 돌아와 반장의 점검을 받고 3시간으로 정해진 하로 일과를 마치게 된다. 실제로 반장이나 어느 누구도 우리가 하는 일에 크게 간섭하거나 사후에 검사를 받는 일도 없다. 그래서 쓰레질을 알뜰하게 하는지 건성건성 하는 지는 우리들의 양식과 성의에 맡겨진 것처럼 보였다. 나와 같이 일을 하게 된 미스 최 ㅡ 사실은 그 여자의 2조에 내가 보충된 셈이지만ㅡ 얼 듯 보기에 60대 초반으로 두툼한 입술에 립스틱을 하고 제법 육감적으로 보이는 여자 이었다.
내 손을 보고 “쌍일은 해본 적 없지요? 척 보면 알아요. 늙으면 별수 없이 이런 일이라도 해야죠. 나도 왕년에는 한 가닥 했걸랑요. 우리 한번 잘해 봐요 오빠! 나를 모두 미스 최라고 불러요. 백세시대에 아직 할매라고 하기엔 좀 억굴 하거든요. 마치 각본을 읽듯이 혼자 신들린 듯 말을 하고나서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내민 손이나 웃을 때 얼굴은 세월만큼이나 주름살이 잡혀 있다. 너무 꼼꼼하게 하지 말고 눈에 뜨이는 쓰레기만 주워 담아 포대가 가득 차면 쓰레기 집결 장에 갖다 놓으면 된다기에 따라해 보니 별 힘 드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말대로 일을 건성건성 하고보니 거리가 말끔해 보이지도 않고 마치 통 누고 뒤를 딱지 않은 것 같이 찝찝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받으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며칠 격어 보니 차차 이 여자의 속셈이 들어나면서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자기는 허리를 삐어서 꾸부릴 수가 없으니까 빗자루로 쓸어서 포대에 담는 일을 나게만 시켜놓고 그녀는 박스나 빈병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때로는 간다온다 말도 없이 엉금 슬쩍 어디론가 살아졌다가 거의 마감시간이 다 돼 가면 유모차에 박스를 가득 싣고 너스레를 떨면서 나타나 아이스케이크로 나의 입을 막아버린다.
아무래도 이건 안이다 싶어 제일 고참인 1조의 박 노인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그는 한 수 더 떴다. “댁은 처음이라서 그런가본데, 받는 돈 만큼만 하면 돼요. 사실 나라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 아니요. 그래도 우리는 공짜로 먹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저 요령껏 적당히 해면돼요.“ 그저 적당히? 미스 최가 평소에 하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적당히 라는 한계를 가름할 수가 없다. 그래, 다 좋다. 미스 최나 박 노인이 박스나 빈병을 주워 모아서 고물상에 팔아 돈을 이중으로 버는 걸 내가 샘이 나서가 아니다. 노인들이 돈 받고 하는 거리청소를 아무리 요령껏 적당히 한다 해도 정해진 시간에는 쓰레질을 제대로 해 놓고 나서 딴 짓을 해야 될 것 아닌가. 비록 내가 쌍일은 별 안 해 봤어도 이건 아닌데 싶다. 요새 미스 최는 청소는 뒷전이고 박스나 빈병 챙기는데 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으니 신촐 내기인 나 혼자 일을 다 감당하기엔 벅차기도 하고 어찌해야 할지 심난했다.
지난해에 아동센터에서 학원에 못가는 가난한 초, 중학생들의 영어 가르치는 일을 맡았을 땐 내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처럼 모처럼 피가 끓고 가슴이 부듯했었다. 아직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인 아동들을 잘 구슬리서 공부에 열중하게 하려고 목이 쉬어가며 가르치려고 몇 달간 애써봤다. 그러나 내 가르치는 방식이 잘 못인지, 세태가 변한 탓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이 없게 되자 자괴감이 들었다. 아무 성과도 없이 돈을 받으려니 너무 낯 뜨거워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땀 흘려 부끄럽지 않게 돈 받고 싶어 동사무소에 부탁하여 이 일을 하게 된 것인데 격어 보니 이 일 또한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심란한 마음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하루하루를 어물쩍 넘기고 있다가 기어코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많이 쌓여있는 곳에 청소를 하도록 나에게 맡겨놓고 미스 최는 주택가 윗길로 올라가 박스와 빈병만 주워 담고 남은 쓰레기는 으레 내가 치우려니 믿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가 미처 그곳에 가기도전에 흉물스럽게 흐트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화가 잔뜩 난 주택가 여자들이 몰려와 나에게 “할배요! 당신네들, 박스나 빈병만 챙기고 쓰레기나 오물은 청소도 안 하는데 대체 왜 이따위로 일을 하는 거예요? 양심도 없어요. 이 지경을 해놓고 돈을 받아도 돼요!” 동 사무소에 신고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댔다.
그 야단을 맞고 멍청하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서있는 내 비참한 꼴을 본 3조의 이 할매가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쫓아와 너부러져있는 쓰레기를 말끔히 치워주고 내일부터는 절대 이런 일은 없게 하겠노라고 사정을 해서 겨우 모면하게 되었다. 창피하고 무안해서 어떤 변명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그저 서 있기만 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쓰레기포대를 싣고 집결 장으로 오면서 비로소 이 할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평상시 일을 마친 뒤에 대학공원에서 잠시 보게 되는 이 할매는 70대 초반의 여자로서는 곱상하나 인상이 좀 차게 보였다. 말수가 적고 남과 잘 어울리지도 안 해서 나하고도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사이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미스 최가 대학공원에서 양 노인과 박 노인에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택가 여자들로부터 당한 모욕으로 화가 나 있던 나는 너스레를 떨고 있는 미스 최를 보자 분통이 터졌다. “이 봐요, 할매! 박스나 병을 주워 챙기는 것은 내 알바 아니지만 남은 쓰레기는 어쩌려고 내게만 맡고 놓고 쏘대 다니는 거요. 할매가 할 일은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요.” 미스 최가 당황해하며 ”어머, 어머! 남이야 뭘 하던 댁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반장님도 아무 말 안하는데 감히 누구보고 소리를 질러요. 초자인 주제에.“ 같잖다 싶어서 나를 꼴시 보면서 덤벼들 기세다. ” 이봐요! 내 말은,,, 우리가 맡은 일부터 제대로 하야지. 제 할 일은 안하고 박스만 주워 챙기는 딴 짓을 하니까 사달이 난다. 이 말이요.“ 나도 흥분이 돼서 목소리가 커졌다. 반장이 끼어들며” 댁의 말이 좀 심 하구만, 없는 사람이 일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러는데 그 걸 가지고 뭘 그래요.“
미스 최 편을 들자 앞뒤 사정을 모르는 노인들도 모두가 반장 말에 동조하는 표정들이다. 특히 박 노인은 ” 박스 줍는 일을 탓해서는 안 되죠.” ”내가 박스 줍는 일을 뭐랍니까. 그 일에 정신이 팔려 쓰레질을 제대로 안하니까 그런 거죠. 지금 주민들이 동사무소에 신고를 하려고 야단이 났어요.“ 반장은 그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으로 ”누가 그 까짓것 가지고 신고를 해요?“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허, 허 참! “하는데 이 할매가 ” 아니요! 오늘 내가 이분이 주민들에게 당하고 있는 걸 목격했어요.“ 덩달아 나도 ” 이 여사가 와서 말끔히 청소를 하고 사과를 해서 겨우 진정 이 됐다오.“ 하자 그제야 반장의 얼굴이 바짝 긴장되면서 ” 다 들었지요! 앞으로 다들 좀 제대로 하세요. 주민들이 신고할 정도가 되면 곤란해요. 박스나 빈병은 일을 다 하고난 뒤에 챙기도록 하고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내가 이따위 일을 더 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돈 때문이라면 더욱 서글퍼졌다. 쓰레질을 한다는 것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원성을 사는 일이라면 단장 그만 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
젊은 아낙들이 “늙은 사람들이 돈만 받아먹고 이따위로 일을 하면 어떡해요!” 질책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내 뇌리에 메아리친다. 적당히 하면 된다는 미스 최의 말만 믿고 있다가 욕까지 듣게 된 나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나는 더 이상 일을 할 의욕마저 없어졌다. 당장 그만두려고 그 이튼 날 작업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데 반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어서 좀 나와 주시오! 그만 둘 때는 그만 두더라도 오늘 사람이 모자라서 일이 안 된다”고 반장의 다급한 목소리이었다. 나같이 일 못하는 사람도 쓰일 때가 있는가 보지. 그래, 반장 말대로 그만 두더라도 마무리는 제대로 해주어야지 하는 생각에 서둘러 나갔다. 작업장에 나타난 나를 본 반장은 정 싫어서 그만 두더라도 한 달은 채워야 돈을 받을 수 있다면서 나를 이 봉순 여사와 함께 일을 하라고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이 여사라는 할매와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의 잊지 못할 만남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할매가 맡은 구역은 음식점과 카페가 밀집되어있는 대학가 뒷골목으로 내가 전에 일하던 주택가와는 달리 쓰레기가 무덕이로 쌓이는 곳이었다. 주택가에 버려진 쓰레기는 기껏해야 일회용 컵이나 우유팩, 패드 병 그리고 먹다 버린 반찬찌꺼기나 휴지 등인데 여긴 소주, 맥주, 막걸리 병과 각종 음료수병을 위시해서 먹다버린 피자와 지킨 그리고 컵라면 게다가 토해낸 음식 찌꺼기 등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 반장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 할매와 같이 일하던 양 노인을 빼내고 대신 나를 집어넣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이런 곳을 어떻게 두 사람이 도맡아 하고 있었어요?” 하는 나의 물음에 “다 텃세 같은 거지요. 늦게 들어 온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요. 눈이 게으르지 막상해보면 별거 아니라오. 아저씨는 일이 서투를 터이니, 보고만 있다가 나를 좀 거들어주면 돼요.” 곱상한 얼굴의 작은 체구와는 달리 이 할매는 마치 쓰레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 흉물스러운 쓰레기를 눈살도 찌푸리지 않고 포대에 주워 담고 땅에 남은 먼지까지 깔끔하게 빗자루로 쓸어 넣는다. 참으로 쓰레질 베테랑 이 구나! 아마 그래서 이 할매를 이 여사라 부르는 거라고 생각되었다.
얼추 청소가 말끔하게 끝나자 쓰레기가 든 포대를 묶어서 그것을 나에게 청소차가 오는 쓰레기 집결 장에 갖다놓고 오라고만 한다. 그러니 나로서는 먼지가 펄펄 나는 쓰레기에 직접 손을 대지도 않고 운반하는데 땀만 좀 흘리면 되니까 편해서 좋았다. 원래 일도 서툰데다 그만둘 작정을 하고 나니까 더욱 일하기가 싫어서 우두커니 할매의 쓰레질을 구경만 하고 있기가 일쑤였다. 이 할매는 그 많은 쓰레기를 혼자 도맡아 치우면서 나를 탓하거나 닦달하지도 않으니 나로서는 하등 불평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너무 극성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괜스레 화가 날까?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 미스 최는 너무 일을 안 하고 뻔뻔스러워서 화가 났지만 이 할매는 너무 알뜰히 일을 해서 화가 난다면 나야말로 종잡을 수 없이 뭔가 잘 못된 것 아닌가.
나의 나태함에서 오는 자책 심을 그녀의 지나친 부지런한 탓으로 돌리려는 심산에서인지 모른다. 아무튼 이 할매의 쓰레질은 마치 나에게 시범을 보이려는 듯 방안청소 하듯 하니까 너무 지나치다 싶어 어쩌면 이 여자가 그 생김새처럼 티끌하나 없이 말끔하게 하려는 결벽증이 있거나 아니면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일 거라는 의아심이 났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미스 최와 박 노인께서 듣던 말이 튀어나왔다. “ 적당히 하세요!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할 필요야, 우리가 받는 돈 만큼 하면 되지. 안 그래요?” 그 말을 대뜸 받아 “돈이 문제요. 마음이 문제죠.” 질책하듯 하는 말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뭣이, 돈이 아니면 무슨 재미로 이 천한 일을 해? 설마 쓰레질이 재미가 있다거나 보람을 느낄 일도 아닐 터인데. 그녀의 마음이라는 말이 아리송해서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질 터인데 뭣 땜에 그리 깔끔하게 하느냐고요?“ 재차 타이르듯 하자 할매는 귀가 차는 듯 나를 쏘아보며 ”다시 더러워질 거니까 대충하라고요. 이왕 하는 김에 깔끔하게 해 놓으면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이 즐거울 거 아니요?“ 나는 쌍일을 하는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호되게 한방 얻어맞은 격이 되었다. 참, 함부로 대할 여자가 아니구나. 하지만 나도 명색이 교육자라고 자처하던 자부심에서 그냥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그러긴 하지만 댁은 거리를 안방 같이 너무 말끔히 쓰레질을 하니까 동료들이 해도 너무한다고 모두 꺼려하던데요.” 그녀는 내말에 좀 화가 난 듯 “ 댁은 교육자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사리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남이 하는 말에 좌지우지 하죠. 제가 왜 이렇게 깔끔하게 쓰레질을 하는지 그 연유를 말할게요.” 이 할매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켠 후에 말을 이었다. 제가 한때 교육청 내 청소부로 일을 할 때입니다. 중등과 과장이라는 분에께 크게 혼이 난 일이 있었어요. 화장실 청소를 잘 못했다고요. 저로선 한다고 했는데 왜 화를 내시는지 그 영문을 몰라서 눈만 멀뚱멀뚱하게 그냥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손가락 끝으로 바닥을 훑어 보이면서 먼지가 전혀 묻어나오지 않을 때까지 다시 깔끔하게 청소를 하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과장님이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우리같이 보잘것없는 청소부라고 깔보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입에 풀칠을 하고 살려니까 어쩔 수없이 그분이 시키는 대로 화장실 변기까지 걸레질을 해서 안방처럼 말끔하게 닦아놓고 검사를 맡았더니 그때야 그 과장님의 마음에 드는 듯 어떠세요? 아주머니도 이렇게 깔끔하니까 보기도 좋고 마음이 개운하지요. 하고 웃으면서 그 집을 알려면 우선 화장실부터 보면 안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하시는 말에 많은 것을 뉘우치게 되었답니다.
아 아! 내가 교육청 청소부로 들어 온 것이 큰 행운이었구나 하고요. 그 후에 그 과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아는 고아원에서도 그래요. 어릴 때부터 책임감을 갖게 제 이불과 제방은 꼭 스스로 청소하도록 시키고 있어요. 일반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 아낀다고 애들 방이불도 개주고 청소까지 다해주는데 그게 정녕 제 자식을 위하고 사랑해주는 일이 아니라오. 오히려 어릴 때부터 애들의 버릇만 나쁘게 들도록 하는 거라고요.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쓰는 책상과 그 주변 그리고 교실청소부터 깨끗하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생활방식이 몸에 배지 않으면 뒤에 성인이 되어도 청소 같은 것은 남이 하는 비천한 일로 생각하게 된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글을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여태까지의 내 고정관념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지금까지 나는 교육자는 노동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며 설사 누가 교육을 노동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적인 것이지 육체적인 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것. 그런 신념에서 아무리 은퇴한 교육자라도 거리청소를 하는 것은 창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결정타를 가하듯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말을 감히 한다는 것이 외람될지 모르지만 청소를 깔끔하게 한다는 것은 첫째 위생적인 문제이고 둘째는 미관상의 문제임으로 두 가지 다 우리 심신에 깊이 관계가 있는 겁니다. 모든 병균은 화장실이나 쓰레기덤이 같은 더럽고 험한 곳에서 발생을 함으로 이런 곳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야말로 병을 예방하는 길이 되고 또한 깨끗한 청소는 맑고 바른 마음을 갖게 하는 간접적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왕 청소를 할 바에야 청소라는 말 그대로 말끔하게 해야지 대충대충 하는 것은 하나마나죠. 사람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돈만보고 쓰레질을 하니까 박스 같은 딴전을 자꾸 보려는 것이지요. 나는 대꾸할 말을 잊은 채 자존심이 좀 상했으나 어쩐지 이 할매의 말에 내 심안(心眼)이 반짝 뜨이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고 있던 참다운 생활교육을 이런 쓰레기구덕이의 노동현장에서 이 봉순 여인으로부터 받게 될 줄이야.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감 시간이 다돼서 이 할매와 내가 쓰레기로 가득 찬 포대를 싣고 집결 장에 당도하니 대판 싸움이 붙어 떠들썩했다. 까닭을 알고 본즉 1조의 박 노인 구역에 있는 박스와 빈병을 2조의 미스 최가 와서 가져간 모양이다.
박 노인이 어째서 자기 관활 구역에 있는 것을 가져갔느냐고 미스 최를 몰아세우니까 미스 최도 지지 않고 그 집에서 가져 가라해서 가져왔는데 뭣이 잘못이냐고 해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박 노인과 미스 최가 각기 제주장만 옳다고 하니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다가 반장이 와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전에 이 할매와 같이 일하다가 지금은 미스 최와 같이 일하게 된 양 노인이 박 노인과 서 노인 등과 함께 무료급식소에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나에게 같이 안 가려냐고 해서 따라 나섰다. 가는 도중 양 노인이 박 노인에게 대거리를 했다. “ 박 씨가 좀 양보할 일이지 뭘 그런 것 같고 여자하고 싸워요?” 박 노인도 발끈해서 “ 양씨가 지금 미스 최 편을 드는 거요.”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미스 최도 알고 보니 불쌍한 여자더라고. 병원에 누워있는 친정엄마 병원비 대주랴, 며느리까지 집 나가고 손자 돌봐 주랴 이리저리 돈 들어가는 데가 하도 많아서 쩔쩔맨대요.
들리는 소문에 주말에는 묻지마 관광버스 타는데 가서 노인들에게 몸까지 파는 모양이던데.” 4조의 서 노인이 “나도 얼핏 누구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사실인가“ 나는 귀가차서 ”미스 최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양 노인이 “ 아니요. 미스 최 말고도 관광버스 타는데 혼자 어슬렁거리는 여자는 돈 받고 그런 여자가 많대요.” 4조의 서 노인이 호기심이 발동하는지 1조의 박 노인에게 “우리도 묻지마 관광버스 타러 가서 여자 한번 낚아 봅시다.“하는데 박 노인이 ” 서 씨는 아직 고치가 서는 가 본대.“ 서 노인이 씩 웃으며 ”마누라하곤 잘 안되지만 남의 여자하고 해 보면 어떨까 해서.“ 모두가 깔깔대고 웃는다. 늙은 말이 콩 마다하지 않는다고 노인네들도 너나 나나 아직도 섹스에는 호기심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아직 점심시간 전인데도 벌써 무료급식소의 식당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노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양 노인이 박 노인 보고 “ 박 씨, 오해하지 말고 내말 들어봐! 박스 같은 건 미스 최에게 양보하고 잠자리를 한번 갖자고 해 봐. 미스 최가 젊을 때 호스티스를 했대. 그래서 지금도 밤 서비스 하나는 그만이라고 은근히 내게 그러지만 난 돈도 돈이지만 고치가 안 서서 안 돼.” 그 말에 박 노인이 호기심이 나는지 “그렇지만 요새는 반장하고 친하면서 용돈깨나 얻어 쓰는 눈치던데.” “참, 당신도 맹추야. 어디 미스 최가 요조숙녀인 줄 알아. 돈만 주면 아무하고도 하지.” 아아 그래서 나와 같이 일할 때 나중에 따로 만나서 술 한 잔 하자고 치근댔구나! 마침 차례가 돼서 우리 일행도 각기 식기를 들고 밥과 반찬을 받아서 식탁에 가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간밤에 근처 카페나 주점에서 단체모임이 있었던지 유별나게 많이 쌓인 쓰레기덤이 에서 썩는 냄새도 나고 구덕이 까지 들끓어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저걸 어떡해? 아무리 이 여사라도. 아예 나는 외면을 하고 멀찌감치 피해 앉아 있었다. 어느새 그녀 혼자 그 흉물스럽던 쓰레기를 거뜬히 다 치우고, 하물며 거리에 인접한 카페 앞까지 말끔히 청소를 해 놓고서 “자, 이제 보세요! 이렇게 하고나니 온 거리가 깨끗하지 않아요.”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야아. 그새 그 많은 오물을 다 치워버리다니! 이럴 수가. 좀 전에 보던 거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새삼 눈을 닦고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더럽고 흉물스러워 보이던 곳이 이렇게 깔끔해 질 수가,,,,햇빛 에 반사된 카페 앞은 제 모습을 되찾고, 건물과 집 그리고 담 벽락과 대문까지 제 무늬를 되찾아 광채가 나면서 거리와의 조화를 이뤘다.
태양도 깨끗한 바탕위에서 만이 제 빛과 색깔을 발산할 수 있는 것 같다. 집도 건물도 가로수까지도 제 나름의 구실을 하려면 우선 거리와 골목부터 깨끗해야겠다. 더럽고 부결한 곳에서는 어떤 예술이나 문화도 꽃 피울 수 가없겠구나. 깨끗한 청소가 이토록 환경을 미화시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려는 그 심성은 오로지 고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그동안 은근히 무시했던 할매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부끄러웠다. 내가 뭣이 잘났기에 미화원이나 할매 같은 사람들을 경멸하며 거만을 부렸는지,,,. 아직도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나 같은 졸부에게 무엇이 옳은 건지 제대로 보일 리가? 겉으로 번지레한 것이 옳고 좋은 줄만 알았지 당초에 쓰레기청소 같은 궂은일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천한 일로만 여겼던 오만한 내자만심이 내 눈을 가리고 있었구나. 먼지와 때 묻은 물체와 그 주변공간을 원래의 깨끗한 상태로 복원 했을 때의 깔끔하고 산뜻함. 그것은 쓰레질을 하는 청소부들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뭔가 보답을 받으려는 심리가 꼭 금전만이 아니리라, 자신이 한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됨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은 돈 못지않게 심리적 보상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어떤 일이든 중요치 않은 일이 없지만 그중에도 쓰레기 청소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 모른다. 거리청소는 우리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가 하면 또 한편 재활용이 가능한 일부 쓰레기는 자원을 절약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대는 못할지언정 천대 한다. 내 처지를 합리화 하려고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우리들의 잘 못된 고정관념 중에 하나는 사회적으로 잘 포장된 직종인 이른바 교사나 종교인들이 하는 일은 훌륭하고 좋은 일이며 노동자등이 하는 쓰레기 청소 같은 험한 일은 좋은 일이 아니며 천한 일이라는 통념을 갖는데 있다.
쓰레기 수거나 거리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을 우리가 조금도 고마워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할지모르지만 그들이 불특정다수를 위해 선행을 하고 있는 만큼은 부인 할 수가 없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인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할지모르지만 그 점은 교사나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교사나 종교인들도 다 돈을 받고 하는데 왜 그들이 하는 일은 선행이라 여기며 쓰레기 청소는 왜 선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한번 쯤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교직에 있었다는 자부심만으로 막연히 좋은 일을 했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지만 냉정히 말해서 나는 누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거나 특별히 선행을 한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지금 하는 쓰레기 청소가 어쩌면 남에게 직접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고집불통이라고 남이 꺼려하던 이 여자와 같이 일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인 것만 같다. 이왕 일을 할 바에야 성심껏 알뜰하게 하면 몸은 좀 고돼도 마음은 가볍다는 이 여인의 말이 내 의식을 일깨워 준 것 같다. 무식하다고 깔보았던 이 여자야말로 나의 스승이요, 쓰레기구덩이에서 핀 한 송이 꽃이다. 나이 값을 하노라 늘그막에 내가 철이 좀 들었는가 보다. 이제야 보잘 것 없는 주름투성이의 맨살 안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보게 될 줄이야. 사람이 많이 아는 것 보다 성심이 더 중요함을 땀 흘리는 노동현장에서 나는 체득했다.

가로수 잎이 붉게 물드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눈에 보이게 수척해진 이 할매의 건강상태가 걱정되었다. 어디 아픈 데가 없느냐고 물어봐도 피곤해서 그러니 좀 쉬면 곧 회복된다고만 하니 이젠 내가 일을 더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달만 채우고 그만 둘 작정을 했던 내가 벌써 반년이 넘었고 일도 제법 몸에 배여 남 못지않게 잘 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이 여인에게 정이 든 것 같다.
그녀가 너무 일에 열중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 좀, 쉬엄쉬엄 하세요!” 하면서 그녀의 빗자루를 뺏어들 때가 있다. “일로 주세요! 자기는 선빈데 이런 일에는 아울리지 않아요.”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일하기를 싫어만하던 내가 이제는 기꺼이 일을 하려고하는 변화된 내 마음을 그녀도 읽었을 것이고 그 원인이 누구 때문인가를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미스 최와 같이 일할 때와는 달리 이 할매와 나는 서로를 아끼며 일하는 손발이 맞는 완벽한 한 쌍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것을 전시효과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지만 1조와 2조 4조의 노인들도 우리가 하는 쓰레질을 보고 느낀바 있었던지 대체로 이전 보다는 훨씬 말끔하게 청소를 하는 것 같다.
대학가 뒷길에 인접한 밭둑 밑에는 몰래버린 쓰레기가 흉물스럽게 산더미처럼 벌어져있다. 행인들의 눈에 잘 안 뜨이는 곳이라 아무도 치울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런 시궁창 같은 곳에 누가 씨를 뿌렸는지 혹은 씨가 날아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코스모스 꽃송이들이 빼 꼼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본 이 할매가 우리가 힘이 좀 들겠지만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나도 흔쾌히 동감하고 손발을 걷어 붙었다. 우리의 정해진 일과를 끝낸 뒤 짬짬이 우리가 땀흘려일하는걸 본 1조의 박 노인네와 2조의 양 노인 그리고 4조의 서 노인네들도 거들어 준 덕택에 며칠 만에 그 많은 쓰레기덤들을 다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미화원들에게 싣고 가게 했다.
깨끗해진 대학가 뒤 들길에 할 짝 피어난 코스모스 행렬. 그 아름다운 광경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자 우리의 땀 흘린 대가이러니 해서 부듯했다. 이 할매의 기쁨은 나보다 더한 듯 했다. 이곳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꽃길이라고 표지판을 세우면 어떻겠냐 해서 내가 고물상에서 널빤지를 구해와 붓으로 꽃길이라고 써서 그 팻말을 세워 놓았다. 제법 근사했다. 이 할매는 코스모스가 지고나면 내년 봄에 피어 날 꽃을 구해서 꼭 심었으면 좋겠다! 고했다. 선견지명이 있는 아이디어였다. 쓰레기구역이가 꽃길로 변하면 차마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느 결에 그 길은 대학생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었고 우리도 일하다 잠간 틈이 날 때 와서 쉬는 곳이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이 끝나갈 무렵 쓰레기포대를 싣고 집결 장에 갔다가 미스 최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주택가 네거리, 미스 최가 끌고 오던 리어카에서 박스가 떨어져 그것을 주워 담는 순간 달려 온 오토바이에 받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모두가 침울해 있었다. 1조의 김 할매와 4조의 허 할매는 훌쩍거리면서 소매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심약한 양 노인이 연신 담배를 빨면서 “알고 보면 미스 최도 불쌍한 여자야! 살겠다고 온갖 짓을 다 하더니만.” 동정조로 말을 뱉자 얼굴이 창백해진 이 할매가 “저걸 어떡하면 좋아요?” 안타까워하며 나와 박 노인을 번갈아본다. ”아무튼 반장이 같이 갔으니 두고 봅시다. 참, 산다는 게 뭔지?“ 박 노인의 서글퍼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난 날 미스 최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미스 최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이 할매의 얼굴이 더 창백하고 근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보다 못해 “나와 가서 점심 먹고 병원에 같이 가보래요.” 하자 “염려마세요. 며느리가 곧 데리러 올 거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할매 며느리가 차를 가지고 실로 왔다. 다른 할매들도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4조의 서 노인이 “이 여사가 하는 저 할매는 너무 청승맞게 굴더니 기어코 병이 난 거 같고 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영감탱이야, 걱정은 못해 줄지언정.” 양 노인이 서 노인을 톡 쏘아 붙인다. 서 노인도 지지 않고 “왜 내 말이 틀렸어? 이 여사 편을 들게.“ ”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이 여사가 우리하고 같은 줄 알아. 선생은 이 여사와 같이 일을 하니까 잘 알겠지만 예사로 볼 여자가 아니야! 정말 똑 소리 나는 여자란 말이야.” 양 노인은 이 할매의 사람됨을 잘 아는지라 반장처럼 이할매를 꼭 이 여사라고 호칭하며 입이 마르게 늘 이 할매 칭찬을 한다. 좀 멀쑥해진 서 노인이 “그래도 그렇지. 제 몸에 병나는 줄도 모르고 할 것 까진 없잖아. 어떻게 같이 일하는 선생께서 좀 어지간히 하라고 타 이르시지 않고.” “글쎄요. 원체 깔끔하고 원칙대로 하는 사람이 라서 대충해서는 성이 안 차는 것 같아요. 저 대학가 뒤 코스모스 화단 일궈 놓은 것 보세요. 그 덕으로 학생들이 예쁜 코스모스 꽃을 눈요기하는 거 아니요.” 박 노인이 끼어들면서 “요새는 선생께서도 이 여사와 손발이 맞아 꽤나 일을 잘 하시던데 뭐.” “ 핫하! 나야 뭐 이 여사 시다바리죠. 그런데 여기에서 배운 게 많아요.” 그 말에 양 노인이“설마하니 선생 같은 분이 이런데서 뭣이 배울게 있겠소.”“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이 청소가 남의 기분을 좋게 한다면 참 보람이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새 서 노인이 근처 슈퍼에서 소주병을 들고 와서 깡 소주를 한잔하자고 종이컵에 술을 따르려 한다. “이럴게 아니라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횟집으로 갑시다.”하고 앞장섰다.
시장 통 횟집에는 요즘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한산했다. 회 두 접시와 소주 두 병에 매운탕까지 주문하니까 노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실 그럴 것이, 그 돈이 우리가 한 달 받는 월급에 맞먹는 돈이니까. 거리 청소하는 노인들은 거의가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는 퇴직금이라도 좀 타니까 이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이들 노인들은 복지 회관에 나가는 노인들은 말년에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부러워한다. 더더욱 병이 들어도 양노원에 있는 노인들은 선택된 사람들 측에 속한다고 한다. 평소에 이들과 살갑게 지낸 적이 없는 내가 자진해서 한턱내는 분위기가 되니까 노인들은 곧장 마음을 터놓고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모두가 70대인데 그중에도 제일 나이 많은 양노인 이“ 선생은 아직 우리보다 젊어 보이는데 금년에 연수가 어떻게 됩니까? ”아마 여기서 내가 제일 연상일 겁니다. 팔십이 넘었으니까요.“ 노인들은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예? 서로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박 노인이” 설마 농담은 아니지요? 제가 왜 나이 갖고 농담을 합니까.“ 서 노인이 ” 우리네들 보다 나이 한참 우인데 우째서 그리 곱는기요.“ 그 말을 받아 양 노인이 ”이 사람아, 노동만 하고 살아온 우리네들과 선생 같이 좋은 자리에 있던 분과 어떻게 비교를 해! 안 그래?“ 재차 다그치듯 말하자 ” 그렇긴 하지만,,,“ 노인들의 자조적인 말에 겸연쩍음을 느낀 나는 ”노동으로 사는 걸 절대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시오. 차라리 넥타이 매고 사라온 내가 부끄럽습니다.
진실로 땀 흘러 노동한 여러분들 덕택으로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거니까요.” 세 노인들은 이외라는 듯 “ 선생 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신사복깨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 우리 같은 노동자를 사람대접이나 하나요.” 박 노인이 냉소적으로 말하자 양 노인이 ”군말 말고 술이나 듭시다! 자. 건배!“ 해서 모두 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신다. 사실 거리 청소하는 노인들은 거의가 노년이 준비 안 된 사람들로 가나하게 살고 있다. 1조의 박 노인은 제집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2조의 양노인과 4조의 서 노인은 임대주택에 사는 모양이다. 술이 몇 순배 돌고 거나해지니까 이들 입에서 넋두리가 쏟아져 나온다. 서 노인은 마누라와 자식들이 남 보듯이 대한다고 한다. 마누라가 밥도 차려줄 생각은 아예 안하니 손수 냉장고에 있는 반창과 밥통에 있는 밥을 퍼다 먹고 어떤 때는 밥이 없어서 자신이 직접 밥을 지어 먹는 다고 한다.
박 노인은 한수 더 떠, 마누라가 있으나마나라고 한다. 노상 아들과 딸네 집에 손자 봐 준다고 가서 안 오니 밥솥에 밥이 없으면 라면으로 때우게 되니 독거노인이나 다름없다고 불평이다. 듣고 있던 양 노인이 중간에 말을 자르고 든다. 행복에 겨운 소리 그만들 해! 아무리 악처라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 줄 알아. 나 같이 진짜 독거노인이 돼봐. 낮이나 밥이나 누구 붙들고 시비할 사람도 없어. 하로 종일 멍청하게 텅 빈 곳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심정을 알기나 해! 어떤 때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사람냄새는 없고 먼지 냄새나 세멘 냄새 같은 이상야릇한 찬 기운이 싸하게 코끝을 스칠 때는 몸이 오싹해 지면서 무서운 기분이 들어. 그래서 앉지도 못하고 한참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게다가 귀청으로 윙하게 들리는 환청 같은 소리에 몸서리를 친다네. 그건 외로움과는 또 달라 적막감이라 할까 뭐 그런 거. 그걸 떨쳐 버리려고 얼른 TV.를 켜고 거기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면 TV.만 혼자 떠들고 있는 거야. 이러다가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허무하고 무섭다는 양 노인의 말에 동감을 느꼈다.
나도 마누라와 헤어지고난 뒤에 혼자 살면서 느닷없이 외로움을 느낄 때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억제로 시간을 때우려 해도 겉잡을 수없이 밀려드는 마음의 공허감에서 안절부절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사람이 늙으면 외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참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평소에 나는 여자란 약한 존재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 보다 더 굿굿하게 외로움과 절망을 이겨낸 여자에게 새삼 감동한바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작업 파트너인 이 할매 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상이 차갑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눈매나 꼭 다문 입모습에서 풍기는 인상이 좀 그렇다고 했더니 그녀는 사랑하던 사람을 두 사람이나 잃어버렸다고. 그 죄책감으로 해서 다른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살아 온 내력을 소상하게 털어 놓았다.
그녀도 한 때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태어나서 모처럼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것도 잠시 남편은 병으로 일찍 돌아가 버리고, 아들이 성년이 되자 대를 잇고자 결혼을 시켜 며느리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며느리가 채 아이를 잉태도하기도 전에 아들이 군에 입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전사를 하게되어버렸다고.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의 마지막 소망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리자 절망의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죽으러했지만 눈을 떠보면 제발! 어머니,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말라며 애타게 울부짖는 며느리가 가여워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끊임없이 그녀를 엄습하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과 절망감을 극복하려고 그리고 남편과 자식을 앞세운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고아원이나 요양원에 가서 자신의 몸을 학대하듯 열심히 일을 했다고.
그 후 먹고 살기위해 어떤 굳은 일이든 마다 않고 성심껏 하고나면 첫째 마음이 떳떳하고 몸은 좀 고돼도 기분이 가뿐해지더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중에 나는 그처럼 고된 삶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그녀의 강한 의지에 감탄했다. 또한 그녀처럼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노년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방법임을 공감하게 되었다.

불행은 연이어 생긴다더니 이곳 일터 분위기가 며칠사이에 완전히 바꿨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삼일 째 연휴로 쉰 뒤 노인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장의 입에서 미스 최는 고간 절이 박살이 났다는 나쁜 소식과 함께 이 여사도 앞으로 못 나올 것 같다면서 새로 데리고 온 두 할매를 양 노인과 나에게 한사람씩 붙어 주었다. 미스 최의 불행도 안 됐지만. 며느리가 와서 병원으로 데려간 이 할매의 안부가 더 궁금했다. 며칠째 그녀의 폰이 정지되어있으니 달리 연락해 볼 길이 없다. 일이 끝나면 오늘은 꼭 주소를 물어서 찾아가볼 셈이었다. 마음은 조급해도 지금은 일과 중이고 이곳에도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새로 온 민시 할매에게 카페 앞에 너부러져 있는 쓰레기를 청소하라고 시켜놓고 나는 빌라 동에 쓰레질을 하러갔다.
빌라 A동 새댁은 자기 어린 아기에게 봉사정신을 길러줘야 한다면서 내가 쓰레기를 치우러 가기만 하면 으레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나와서 한사코 내 일을 거들어주다가 일이 다 끝나면 “할아버지, 고맙습니다!”하고 공손히 인사를 해서 나를 기쁘게 한다. 지난 날 아동센터에서 지독히도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을 훈계를 해가면서 억제로 가르친 뒤에 실망하고 자책하던 그 일에 비하면 비록 보기에 역겹고 궁상맞게 보이지만 청소를 다 마무리한 후에 느끼는 이 만족감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리라. 때로는 지내 가던 사람들도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정중히 수고 하십니다. 라고 할 땐 나는 뒤늦게 배운 일로 보람과 긍지를 느껴온 터이다.

그 날 오후 수소문 끝에 이 할매의 집을 찾았으나 문이 닫쳐있었다. 헛걸음을 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간신히 폰이 터져서 이 할매의 며느리가 가리켜준 병원을 찾아 갔다. 예고 없이 병실에 나타난 나를 보고 이 할매는 적잖이 놀라 침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만 누워 있으라고 내가 저지하자 내가 들고 간 꽃을 받아든 며느리가 침상을 끌어 올려 할매의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내가 미안해하면서“ 농땡이 같은 나 때문에 혼자 일을 한다고 병이 났지요?” “아니에요! 오히려 선생님 과 함께 해서 얼마나 든든하고 즐거웠는데요.“ 혼자 일하기에 힘이 들겠다며 되레 나를 걱정한다. 나는 핼쑥해진 이 할매의 얼굴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움켜지듯 잡았다. 그녀는 약간 수즙어하면서도 나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하지 안 했다. ”의사가 무슨 병이라 하던 가요?“ 걱정스럽게 물어보자 ”기간지가 좀 안 좋아서 그렇대요.“ 그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나와 바깥바람을 좀 쏘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며느리가 끌고 온 휠체어에 태워서 병원 뒤뜰로 나갔다.
뒤뜰에 있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고운 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발밑에 떨어진 은행잎을 애석하게 바라본 이 할매가 ”은행잎은 시들기도 전에 저렇게 고운 모습으로 떨어져 버리는데, 사람도 은행잎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하는 내 말을 받아 ” 죽는 건 겁나지 않지만 빼빼 말라 쓰레기처럼 흉물스럽게 되는 건 정말 싫어요.“ 그녀가 말하는 의도를 간파한 내가 ” 죽는 사람의 몸꼴이 은행잎이 보다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리 영혼은 남아있지 않아요.“ ”그 영혼이 어딜 가는데요?“ ”원래 온데를 찾아 가겠지요.“ 영혼이 제 고향으로 찾아 간다고요.” 그렇게 봐야죠.“ ”그럼, 우리도 거기서 또 만날 수가 있겠네요.“ ”그럼요!“ 하는 내 근거 없는 말에 별안간 할매의 눈이 번쩍 빛나며 나를 보고 수즙케 웃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나는 그것이 제 세상에서 그녀가 나와 연인으로서 만남을 뜻하는 표현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연이어 이 할매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나를 보며” 혹시 제가 못 일어나더라도 선생께서 꼭 꽃길에 봄에 피는 꽃씨를 심어주실 거죠.“ 애소하듯 했다. “ 그럼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이 여사는 반듯이 일어날 거요. 그때 나와 꼭 함께 심도록 해요.” 위로하듯 나는 할매의 손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 그녀의 차디찬 손이 내 따뜻한 손의 체온으로 이내 따뜻해졌다. 내 건강한 기를 받아 그녀의 몸이 회복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참 그대로 서 있었다. 오랜 시간 찬바람을 쏘인 탓인지 그녀가 심하게 기침을 해서 “안 되겠어요! 어서 병실로 들어갑시다.“ 하고 나는 되도록 빨리 휠체어를 굴렸다. 병실로 들어온 뒤에도 계속 기침을 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이 할매. 당황해하는 나를 두고 며느리가 재빨리 가서 의사와 간호사를 데리고 왔다.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이 할매에게 부착시킨 뒤 열을 재보고 나서 주사를 놓자 좀 진정이 되었다. 그때 어떤 여인이 애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아원 애들인 것 같았다. 6인실 병실인데다 애들까지 몰려들어 너무 비좁아 오히려 폐가 될까봐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이 할매와 며느리에게 말하고 병실을 나오다가 복도에서 양 노인을 만났다. 이할매를 문병하러 온 줄로 알고 짐짓 웬일이냐고 물으니 뜻밖에 중환자실에 있는 미스 최 문병을 왔노라하면서 박 노인과 반장이 저 안에 있다고 병실을 가리켰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순간 가련한 생각에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링거 병이 꽃 혀 있는 침상에 누워있는 미스 최 곁에 반장이 앉아있고 박 노인은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박 노인도 미스 최가 사고를 당하고 나니 더 안됐나 보다. 하기야 불행 앞에 원수가 있을 수야. 미스 최는 눈만 내놓고 왼 통 붕대를 감고 있었다. 오른 쪽 팔과 다리는 깁스까지 하고. 내가 미스 최의 병상 쪽으로 다가가자 반장이 일어서면서 나와 눈인사를 교환 했다. 아직 정신은 멀쩡한지 미스 최가 의외라는 듯 나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할매, 많이 다처셨구려! 많이 아프지요? 걱정스럽게 말하자 미스 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박 노인도 나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치료비와 입원비는 다 보험처리가 되지요?”하고 내가 반장에게 묻자 “오토바이 주인이 보험에 안 들어서 안 된 답니다.”한다. “그럼 동사무소에서 상해보상비로 처리 하도록 해야죠.“ 하자 ”동에 물어보니 일용노동자라 그게 안 된 답니다.“ ”왜 뭐라고 했는데요?“ ”사거리에서 박스상자를 주어 올리다 사고가 났다고 했지요.“ ” 저런,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하지요. 미스 최가 쓰레기를 쓸어 담고 있는데 오토바이가 덮쳤다고 그래야죠.“ 반장은 그 까닭을 몰라서 눈이 둥글해지고 박 노인과 미스 최는 내 입만 주시한다. ”사거리에서 박스 줍는 일은 우리 일이 아니잖아요, 쓰레질이 우리 일이지. 그러니 박스 줍다가 치었다고 하면 산재처리를 해 주겠어요? “ 반장이 ” 아, 그렇게 되나.“ 낭패스러워 하고 박 노인이 ”그럼, 어떡하면 되겠어요.“ 하고 미스 최는 반장을 원망스럽게 노려본다. ”사고가 난 시각이 우리 일이 끝날 시간 전이지요?“ 반장과 박 노인이 함께 ”그럴 겁니다.“ ”혹시 미스 최는 기초생활 수급자지요?“ 나의 물음에 미스 최가 ”예, 그래요.” “그럼 됐어요! 두 분이 나와함께 동사무소에 다시 가 봅시다. 만약 여차하면 변호사에게 의뢰해서라도 꼭 받아 내도록 해야죠.
이 일은 비단 미스 최 일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모두에게 관련이 있는 일이요." 그러자 반장과 박 노인 그리고 병상에 미스 최까지 눈에 생기가 돌았다. 박 노인이 ”선생, 제발 그렇게 좀 해주소.“ 매달리듯 하는 말에 뒤이어 미스 최가 후회하듯 ” 진작, 저 오빠 말을 들을 건데 내가 미쳤지! 백번 후회가 된다니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이제 미스 최가 나을 때까지 입원하고 있어도 되도록 해볼 터이니 하로 빨리 건강이나 회복하도록 하소.” 말을 마치자 “오빠, 정말 고마워요! 잘되면 내 평생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게요.” 하면서 주제할 수없이 눈물을 흘린다. “나에게 특별히 고마워 할 것 없어요. 우리가 모두 힘을 합하면 될 수 있을 거야. 자! 반장님과 박 노인은 나하고 오토바이 주인도 만나보고 나서 동사무소로 갑시다.” 오빠,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는 미스 최의 말을 등 뒤로 들으면서 그 병실에서 나왔다. 밖에 있던 양 노인과 반장 그리고 박 노인이 이 여사를 문병하러가겠다기에 같이 그 병실로 갔으나 이 할매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다음날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 가 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할매는 이미 퇴원을 하고 없었다. 자초지종을 병원담당의사와 간호원 에게 물 본즉 병이 나아서 퇴원한 것은 아닌데 그냥 집으로 간줄 안다고 애매한 대답만 했다. 집으로 달려가 보았으나 문이 닫힌 채 아무도 없었다. 궁금하고 불안함을 견디지 못해 일을 끝나면 매일 같이 집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낮은 담장 너머 화단에 만발한 국화꽃만이 주인 없는 집에 더욱 쓸쓸함을 더하게 했다.
이틀간 휴일 후,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현장에서 만난 반장이 미스 최에 대한 산재처리가 잘 될 것 같다고 해서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이 활매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해서 내 애간장을 태웠다. 전화도 받지 않고 병원에도 없고 집으로 찾아가 봐도 행방이 묘연한 것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그날 병원 뒤뜰에서 ‘사람도 은행잎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졌으면 좋겠다.’고한 이 할매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폰까지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죽었을까 아니면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더 보여주기 싫어서 일까. 참, 반듯하고 독한 여인! 어찌 남의 속 타는 줄은 모르는지 원망스러웠다.
소식이 끊긴지 벌써 일주일이나 흘렸다. 마음이 불안하고 허전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녀와 자주 가던 꽃길에나 가볼까. 이미 코스모스는 다 지고 앙상한 꽃대만 남았을 거지만. 발길을 옮기려는 바로 그때 내 폰에 이 할매 며느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화가 나서 그동안 왜 전혀 연락을 안했느냐고 나무라자 내 호통에 멀쑥해 있던 며느리는 간신히 사실 어머님이 폐암말기로 판정이 나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있었다고, 어머님은 임종 전에 저세상 꽃길에서 선생님을 꼭 다시 만나 뵙고 싶다고’ 장례식이 끝난 뒤에 알려드리라고 울먹이는 며느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 듯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 참후에 아직도 내 귀청에서 메아리치는 며느리의 말, 아니 제 세상 꽃길에서 만나자 는 할매의 유언을 되뇌어 본다. ‘뭐, 저 세상의 꽃길이라고. 그렇다면 한 쌍의 청소부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만나자는 뜻이 아닌가. 왜 이 세상에선 우린 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병원 뒤뜰에서 별안간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수즙케 웃던 그 표정. 지금 생각하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바보같이. 왜 멍청하게 내가 그녀의 그 마음을, 그 아픔과 외로움을 그렇게도 몰랐을까.
설사 사전에 알아서 어째볼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외로움만 이라도 함께 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죽음이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갈라놓고 말지라도 예고 없는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을 이렇게 무력하고 허망하게 만들게. 이제 그녀는 저 코스모스 꽃잎처럼 홀연히 내 곁을 떠나버렸구나! 채 일 년도 안 된 짧은 세월에 그녀와의 만남이 평생 잊지 못할 아쉬움과 아픔만을 남겨놓고. 진솔한 삶을 살도록 내 눈을 뜨게 해주고 떠난 고마운 여인. 그녀와 이렇게 허망하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죽기 전에 꼭 해 주고 싶은 무슨 말이 있었는데 바보같이 망설이기만 하다가 ‘굿 바이’ 라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못내 가슴에 맺힌다. 이 할매가 못다 하고 간 대학로 뒤 꽃길에 봄꽃은 내 꼭 심으리라. 그것이라도 그녀의 영혼에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뻥 뚫린 내 공허한 가슴은 그녀가 가르쳐준 보람 있는 이 일로 채워 가면서 살아가리라.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가로수의 마지막 잎사귀마저 다 떨어져 거리에 굴러가고 있다. 문득 알뜰한 이 할매의 쓰레질하는 모습이 내 눈에 선연하다.

오늘 일을 다 마치고 대학공원 집결 장으로 가는 양 노인, 박 노인과 서 노인 그리고 새로 온 할매들의 모습이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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