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과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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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과 범죄

  • 저자
    아돌프 로스
  • 번역
    현미정
  • 출판
    미디어버스
  • 발행
    2018.08.05.
책 소개
전시대의 봉건성을 탈피하고 시민계급의 문화를 추구했던 건축가 로스의 대표 저작 우리에게 「장식과 범죄」라는 글로 잘 알려져 있는 아돌프 로스는,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고 말한 르 코르뷔지에의 표현대로 아르누보 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시대를 알리는 건축을 정의하고 실현한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건축가로서의 명성 외에도 그를 자주 언급하고 인용하는 이유는 그의 저작과 관련해서이다. 1921년 발간된 『허공에 외쳤다』와 1931년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896년 로스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언론매체에 쓰기 시작한 사설과 논평, 강연들을 묶은 책으로 건축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서다. 이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판, 재편집, 각국의 번역본 등으로 출판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1년 인스부루크의 브렌너 출판사가 문장을 소소하게 수정, 삭제하여 펴낸 판본이 재편집되어 발간되거나 번역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돌프 로스가 생전에 직접 선별하고 편집한 판본이므로 로스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따라서 여타의 번역본들과 같은 재편집이나 도판을 첨부하지 않고 이 판본을 번역, 편집하였다. 단지 이 두 권의 책을 합본하고 로스의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비평인 「장식과 범죄」를 제목으로 삼아 출간하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아돌프 로스는 1870년 지금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로스는 어린 시절 공예공방 동네를 놀이터로 삼아 성장했고 그 후 보헤미아에 있는 공예학교와 빈의 미술대학을 거쳐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93년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 박람회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삼 년간 체류한다. 그곳에서 그는 공사판과 접시닦이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빈곤 속에 살았지만 루이 헨리 설리반과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인물들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적 건축이 꽃피던 시기를 체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유형(고층건물, 사무실건물과 백화점 등)과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정신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세기의 전환기에 실용과 합리를 추구했던 미국이 지향한 고전주의 건축에서 로스는 고대의 형태적 자산과 그리스적 가치관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그의 건축관에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 26세의 나이로 빈에 귀향한 로스는 영미의 근대성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퇴행성을 보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열었지만 일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평론가로서의 활동은 허락되어, 그의 전방위적인 문화비평의 시기를 연다. 처음에는 주간지와 일간지에, 1903년 이후로는 문인이자 그의 지우인 페터 알텐베르크와 함께 주간한 자신의 잡지에 글을 발표하며 특히 당시의 주류세력이었던 제체시온(빈 아르누보)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카를 크라우스라는 인물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논쟁과 풍자의 대가였던 크라우스는 『횃불』이라는 자신의 잡지를 도구로 ‘예술의 도시’ 빈에 숨겨져 있던 위선과 부패를 들춰내고 비판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빈은 왜 이러한 인물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책 정보

책 정보

  • 카테고리
    도시/토목/건설
  • 쪽수/무게/크기
    352
  • ISBN
    9788994027913

책 소개

전시대의 봉건성을 탈피하고 시민계급의 문화를 추구했던 건축가 로스의 대표 저작

우리에게 「장식과 범죄」라는 글로 잘 알려져 있는 아돌프 로스는,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고 말한 르 코르뷔지에의 표현대로 아르누보 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시대를 알리는 건축을 정의하고 실현한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건축가로서의 명성 외에도 그를 자주 언급하고 인용하는 이유는 그의 저작과 관련해서이다. 1921년 발간된 『허공에 외쳤다』와 1931년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896년 로스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언론매체에 쓰기 시작한 사설과 논평, 강연들을 묶은 책으로 건축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서다. 이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판, 재편집, 각국의 번역본 등으로 출판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1년 인스부루크의 브렌너 출판사가 문장을 소소하게 수정, 삭제하여 펴낸 판본이 재편집되어 발간되거나 번역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돌프 로스가 생전에 직접 선별하고 편집한 판본이므로 로스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따라서 여타의 번역본들과 같은 재편집이나 도판을 첨부하지 않고 이 판본을 번역, 편집하였다. 단지 이 두 권의 책을 합본하고 로스의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비평인 「장식과 범죄」를 제목으로 삼아 출간하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아돌프 로스는 1870년 지금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로스는 어린 시절 공예공방 동네를 놀이터로 삼아 성장했고 그 후 보헤미아에 있는 공예학교와 빈의 미술대학을 거쳐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93년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 박람회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삼 년간 체류한다. 그곳에서 그는 공사판과 접시닦이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빈곤 속에 살았지만 루이 헨리 설리반과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인물들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적 건축이 꽃피던 시기를 체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유형(고층건물, 사무실건물과 백화점 등)과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정신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세기의 전환기에 실용과 합리를 추구했던 미국이 지향한 고전주의 건축에서 로스는 고대의 형태적 자산과 그리스적 가치관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그의 건축관에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
26세의 나이로 빈에 귀향한 로스는 영미의 근대성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퇴행성을 보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열었지만 일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평론가로서의 활동은 허락되어, 그의 전방위적인 문화비평의 시기를 연다. 처음에는 주간지와 일간지에, 1903년 이후로는 문인이자 그의 지우인 페터 알텐베르크와 함께 주간한 자신의 잡지에 글을 발표하며 특히 당시의 주류세력이었던 제체시온(빈 아르누보)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카를 크라우스라는 인물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논쟁과 풍자의 대가였던 크라우스는 『횃불』이라는 자신의 잡지를 도구로 ‘예술의 도시’ 빈에 숨겨져 있던 위선과 부패를 들춰내고 비판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빈은 왜 이러한 인물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책소개 추가]
당시 빈은 벨 에포크(Belle ?poque)로 불리는 시대를 입증하고도 남을 만큼 문학, 음악, 미술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에 대한 몰입은 시대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19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또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사회적 구조를 외면하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래서 로스를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했던 소수의 인물들에게 이 탐미주의는 근대를 맞이하는 진정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나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른(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자들의 구태와 봉건성이 넘쳐났고, 또한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과장과 과잉을 일삼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로스의 분노는 그래서 그들의 양식이나 취향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허세와 위장을 향한 것이며, 나아가 그의 치열한 투쟁은 그 가면을 벗기고 ‘오늘’에 뿌리박은 시대의 진정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찾은 건축의 진정성은 고트프리드 젬퍼가 주장한 목적, 재료, 기술에 있었다. 즉 건물의 실제 목적에 부합하는 건축, 재료를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축, 그리고 그 시대가 보유하고 있는 진보한 기술로 지어진 건축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며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그 시대의 양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는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될 수 없다. 도시의 건축은 그 집단의 정체성의 표현이며 모든 주거인에게 공평한 보편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래서 로스는 그 시대의 정신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건축을 천재 개인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전통’을 언급한다. 그런데 바로크의 도시 빈에서 그가 건져 올린 전통은 고대의 정신이었다.
전시대의 봉건성을 탈피하고 근대정신에 뿌리박은 시민계급의 문화를 추구했던 로스에게 합목적성을 바탕으로 한 고전주의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건물은 특히 외관에서 고전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는데 반해, 내부공간은 상당히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로스의 논리에 따르면 공간의 합목적성과 공간계획(Raumplan)의 실현이지만, 그 결과 그의 내부공간은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엄격하고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인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을 생산한다. 이 점이 로스의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형태는 보편을 지향하지만 공간은 개별성을 지향한다는 점,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함은 분명 인간 정신의 성숙일 것이다.
물론 당시에 로스만 이러한 인식을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근대 건축 운동은 말기에 형식적인 공간분할로 건축의 고유성을 상실했으며, 이후에 나타난 형태의 모호성으로 건축의 보편을 잃어버렸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리고 지금도 상당부분 이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대 건축을 볼 때, 현대의 건축가들이 로스를 다시 찾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듯 이 책이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문필가로서의 재능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새로운 건축에 관한 논리와 제시, 사회 전반에 걸친 그의 굽히지 않는 저항과 비평이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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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허공에 말했다
초판을 내면서
공예학교의 학생전시회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성탄절 전시회
공예전망 1
공예전망 2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영국학파
은세공 공방과 그 이웃
신사복
새로운 양식과 청동 산업
인테리어
로툰데의 인테리어
앉는 가구
유리와 점토
호화 운송수단
배관공
신사 모자
족복(足服)
제화공
숙녀복
건설 자재
피복의 원리
속옷
가구
1898년의 가구들
인쇄공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겨울 전시회
오스트리아 박물관 둘러보기
빈의 스칼라 극장
멜바와 함께한 나의 등단
어느 가난한 부자의 이야기
저자 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판을 내면서
두 권의 『다른 것』에서 발췌한 글들
나의 생애에서
도자기
최고로 아름다운 내부 공간, 최고로 아름다운 궁전,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물, 최고로 아름다운 새 건물, 최고로 아름다운 빈의 산책로
나의 건설학교
문화
과잉의 것들
문화의 변질
장식과 범죄
울크에게
건축
소간주곡
빈 사람들에게 고함
미하엘러플라츠의 집에 대한 두 논평과 편지 하나
음향의 불가사의
베토벤의 병든 귀
카를 크라우스
산에 집을 짓는 자들을 위한 규칙들
향토 예술
손 떼!
페터 알텐베르크와의 이별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들
단지 주민의 날
주거를 배우자!
가구의 추방
장식과 교육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그의 동시대인들
현대의 주거단지
짧은 머리
가구와 인간
요제프 파일리히

옮긴이의 글
개정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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