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촐페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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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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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기자


‘현대무용 혁명가’로 불리는 독일의 피나 바우쉬(1940~2009)는 새로운 무용 형식 ‘탄츠 테아테르’(Tanz Theater)로 무용에 대한 통념을 바꿨다. 무용수들은 춤을 추며 말을 하거나 소리를 질렀다. 고향인 부퍼탈을 중심으로 활동한 바우쉬의 대표작 중 하나는 ‘카페 뮐러’다. 바우쉬의 부모는 부퍼탈에서 광부들을 상대로 한 카페를 운영했다. 그 카페가 바우쉬에게 ‘카페 뮐러’의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 부퍼탈은 루르 공업지대 공업도시 중 하나다. 루르 공업지대는 독일 산업혁명의 엔진이었다. 19세기 중반 이곳에 방대한 탄광지대가 개발됐고, 독일 각지에서 온 이주민들로 넘쳐났다.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 탄광은 촐페라인이었다. 1851년 본격적으로 채탄에 들어간 후 130년 가량 석탄을 토해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일명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킬 때 촐페라인의 석탄이 디딤돌이 됐다.

▦ 독일인들은 촐페라인 등에서 나온 석탄을 '슈바르체스 골트(Schwarzes Goldㆍ검은 황금)'라고 불렀다.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를 일으켜줬기 때문이다. 검은 황금의 빛은 영원하지 않았다. 1986년 촐페라인 탄광은 폐쇄됐고, 지역 경제에 찬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쓸모 없는 탄광시설과 고철덩이 코크스 공장을 허물고 새로운 공장을 짓길 원했다. 촐페라인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촐페라인이 소중한 지역 유산이라 생각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2억 유로를 들여 촐페라인을 사들이고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 렘 콜하스에게 개조를 맡겼다.

▦ 촐페라인은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문화명소로 거듭났다. 독일 유명 예술학교 폴크방대학은 교육시설 일부를 촐페라인으로 옮겼다. 2010년 촐페라인을 방문했을 때 현지 관계자는 “촐페라인 건물들을 없애고 다른 공장을 세웠으면 더 큰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도시 보훔이 1980년대 탄광대신 전자제품과 자동차 공장을 유치했으나 20여 년 후 두 공장이 문을 닫아 다시 위기에 처한 사례를 들기도 했다. 독일 유명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바우쉬에 대한 다큐멘터리 ‘피나’(2012)를 촐페라인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문화재가 된 육중한 산업시설을 배경으로 한 춤사위가 유난히 아름답다. 정부가 강원 태백시를 ‘한국형 촐페라인’으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카지노 짓기보다 진일보한 인식전환이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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