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사랑하고, 때로 미워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갑니다.
얼굴을 마주하고는 하지 못했던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가족의 뒷모습을 보고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매일 아침 톡톡 튀는 목소리로 아침을 열어온
FM대행진 모닝파트너 황정민 아나운서의 감성에세이 출간!
15년차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DJ로 활동 중인 황정민 씨가 KBS 라디오 〈FM대행진〉 방송 10주년을 맞아 동화를 소재로 한 따뜻한 감성에세이를 출간했다. 독서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동화적 감수성을 한껏 담아낸 『황정민의 P.S. 아이러브유』에서 작가는 결혼 후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 언제나 변함없이 뒤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그녀 특유의 선명한 언어로 조형해냈다. 자칭 동화 애서가라고 말하는 황정민은 유년시절 읽으며 꿈을 키웠던 소설, 서양에서는 프러포즈용으로 사랑받는다는 동화, 아가에게 읽어주며 엄마 아빠가 더 가슴에 새겨보아야 할 책들을 특유의 맛깔 나는 입담으로 풀어내 독자들의 닫힌 감성을 자극한다.
사실 독서일기라고 하면 지금껏 책벌레들이 써내려간 교양적 책읽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주눅 들지 않고 접할 수 있는 편안한 독서일기이자, 일상의 에피소드가 점점이 박힌 가벼운 미셀러니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평소 동화 읽기를 즐긴다는 저자는 어린이책을 나의 삶이라는 문맥 속에 넣고 거기서 어떤 사유와 감흥이 떠올랐는지를 쓰고 있다. 독서일기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책의 스토리를 들려주거나 내용을 분석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나를 주어로 하여 삶과 일, 가족에 대한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 각각의 에피소드가 어린이책과 연관성이 있어 동화 읽는 즐거움까지 동시적으로 선사한다.
삶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필치는 시종일관 간결하며, 삶의 단상들을 포획해내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화려한 치장을 삼가는 대신 담백한 어법으로 삶을 읊조리는 그녀의 글에는 다감한 매력과 농익은 감수성이 듬뿍 녹아 있다. 워킹맘으로 바쁜 일상과 고투를 벌이는 치열함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책은 결혼 후 달라진 삶과 엄마가 되고 느낀 어려움, 싱글이었던 시절의 추억을 잔잔하게 들려주며, 글보다 삶의 변화가 더 빨라 미처 못 담은 이야기는 원고 말미에 P.S. I LOVE YOU라는 추신을 달아 간략한 메모를 더했다.
연등처럼 환하고 아련한 삶의 속내를 짚어내는 따뜻한 이야기
엉뚱하고 발랄한 그녀의 행복한 동화 읽기
책을 읽다보면 불현듯 자신의 삶이 떠오를 때가 있다. 책과 나의 삶이 겹치면서 말할 수 없는 감상과 회상에 젖어 하던 일을 놓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이 온다. 때로 책이 가져다 준 회상은 반성을 낳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통해 투영해 본 삶은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곤 한다. 카타르시스 혹은 치유의 책읽기를 제대로 하자면 책을 읽은 전후의 사정과 책을 매개로 하여 독서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진솔하게 적어보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다시 말해 독서일기를 통해 가능하다. 특히 어린이의 성장을 다룬 동화책들은 꼼수 없는 직설적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어른들이 읽었을 때 더 짙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제의식과 작가의 의도 등 이런저런 맥락을 곱씹어봐야 하는 소설과 달리, 동화를 읽고 나면 즉자적으로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되거나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다시 말해 어린이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성장기를 되돌아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내면에 감춰져 있던 순수와 나약함과도 만날 수 있다. 작가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라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납득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맑은 문체, 일상을 감싸 안은 훈훈한 감성과 번뜩이는 기지가 조화롭게 교직된 『황정민의 P.S. 아이러브유』는 연등처럼 환하고 아련한 삶의 속내를 짚어내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어설픈 기교를 떨쳐버리고 한 편의 동화를 들려주듯 매우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문장은 아주 적은 단어만으로도 우리를 아프게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발랄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아나운서 황정민의 인간적이고 한층 더 깊어진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그녀의 글은 명쾌하고 쉬우며 섬세하고 무엇보다 참 재미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몇 미터 떨어진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여기 바로 옆에서 발맞춰 함께 걷는 친구처럼, 반짝반짝, 가만가만, 행복하게 마음을 흔들어놓는다”며 책에 대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의 데이트는 신랑이 평소 단골로 다니던 그만의 명소로 이어졌습니다. 개강하기에 앞서 서운한 마음을 달래던 학교 앞 만화방, 다른 프랜차이즈 통닭집을 모두 물리치고 살아남은 고대 앞 삼성통닭집, 원조라고 내세우는 수많은 아귀찜 중에서 단연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부산아구찜, 눈물을 쏙 뺄 정도로 매운 현대낙지. 이 집들을 어디서 알고들 찾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문밖까지 줄을 서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별미로 괜찮겠다 싶었지만 그곳들이 우리 먹거리의 주 무대가 될 줄이야! 만날 자기 좋아하는 것만 먹으러 다닌다고 불평을 하자 저보고 고르라고 하더군요. 몇 번 함께 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그가 어찌나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던지, 오히려 제가 미안해졌습니다. 아∼ 식성도 변하는 걸까요. 입덧할 때 몹시 먹고 싶었던 음식은 바로 아귀찜이었습니다. -p37
초등학교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운동회를 앞두고 방과 후에 매스게임 연습을 하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 아빠가 짠하고 우산을 가져다 주셨죠. 그런데 같은 반 친구가 우리 아빠를 보고 “너네 할아버지니?”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그 친구하고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가 최고야』는 제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엄마는 상대적으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잔소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큰소리도 나고, “엄마 미워” 소리도 절로 나오지요. 하지만 아빠는 조금 다릅니다. 아빠는 엄마처럼 아이들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 있지요. 그런 만큼 아빠는 언제나 제 편이었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들어주셨습니다. -p45-47
아침부터 제가 너무 서럽게 울자, 엄마는 “뭐가 제일 힘드니? 엄마한테 얘기해 봐라” 하셨습니다. “엄마 아빠가 나만 두고 죽을까봐 너무너무 무서워.” “그건 네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니. 사람에게는 하늘이 정해주신 천명이 있으니 걱정 마라. 우리가 발버둥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담담하게 받아들여라. 엄마도 아빠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는 아기 생각만 하렴. 정민아. 엄마랑 아빠가 우리 막내를 너무 늦게 낳아서 네가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세상에, 부모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다 커버린 딸에게 엄마가 미안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요. 엄마는 그저 제게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늙어버린 어머니가 다 커버린 아들을 찾아가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이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러준 것처럼, “엄마,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제 옆에 있어주세요.” -p58-59
앤은 즐겨 다니는 길이나 집이나 사물에 이름을 붙여 특별한 무엇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앤은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죠. 예를 들어 집으로 오는 가로수 길을 ‘새하얀 환희의 길’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이렇게 멋진 장소를 그저 가로수 길이라고만 불러서는 안 된다고 심각하게 말하면서 말이죠. 배리 연못은 ‘반짝이는 호수’라고 부릅니다. 그러고는 앤 자신의 가슴이 떨려오는 걸 보면 딱 맞는 이름이라고 매튜 아저씨에게 수다를 떨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앤이라는 이름은 보통 Ann이라고 표기하지만, 우리의 빨간 머리 앤은 Anne를 고집합니다. 멋없는 Ann이란 이름에 e 하나를 더 붙여서 자기 자신을 좀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하죠. -p88
임신 말기에는 몸이 무거워서 대부분의 임신부들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런데 시험 기간 중에는 제가 임신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달디단 잠을 잤습니다(막상 시험이 끝났을 때는 맘 놓고 잘 수 있는데도 잠이 안 오더군요). 시험 기간에는 하고 싶은 일도 얼마나 많은지요. 읽고 싶은 책이며 보고 싶은 영화, 먹고 싶은 음식까지. 하기 싫은 청소와 옷장 정리까지 시험 기간에는 하고 싶어집니다. 시험 끝나고 하면 될 아기 옷 준비도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잖아’ 하며 조금씩 조금씩 모두 삶아놓았습니다. 시험이라는 괴물이 마치 흘러가는 제 인생을 한 자리에 잡아둔 것처럼 삶을 천 퍼센트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싫어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정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일들을 조금만 느긋하게 생각하며 봐주자고요. 아무리 어렵고 싫어하는 일이라도 인생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모두 지나간답니다. -p102
임신을 하자 모든 분들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브라보” 하며 환호작약하게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신랑이 협조를 안 해줄 때도 그랬고, 임부복에는 별과 달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도, 배가 불러오면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아니, 배가 불러올수록 왜 그렇게 예쁜 옷을 사고 싶은 욕망은 더해지던지요. 왜 이럴까 싶어 아기를 낳은 선배 엄마들에게 밥을 사가며 노하우를 물어보았습니다. 선배 엄마들이 제 종알거림을 들으며 여유롭게 해준 말은 “정민아, 지금이 제일 예쁘다"였습니다. -p109
뒤돌아보면, 아 그때 내가 참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마음이 모자랐던 것이겠지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나무 기르듯 물 주고 벌레 잡아줘가며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인데 품 들이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친구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시기에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모른다는 얘기는 어쩌자고 세월이 가도 그토록 끈덕지게 ‘진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민이를 되찾으러 가기에는 길이 너무 멀고, 정민이가 남긴 가르침만 마음에 진하게 남았습니다. ‘웬만하면, 정말 웬만하면 귀를 열어놓고 살아야지. 있을 때 잘해야지.’ 그리고 염치없는 기대 하나를 덧붙입니다.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해 주는 이가 있었으면. 부디 그도 나에게 인색하지 않았으면.’ -p199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의 이름도 대단하고, 작품 속에 담긴 통찰력도 놀랍다는 얘기에 책을 꺼내 들지만 실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도 모르는 채 책장만 넘기다가 결국 책을 덮었을 때, 왠지 주눅이 들죠. 남들이 말하는 명작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깜냥밖에 안 되나 싶어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서 어린이책은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점도 맘에 들고, 문학적 의미나 숨겨진 작가의 의도 같은 걸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명징한 것도 좋습니다. 읽고 나서 ‘아, 좋다’라고 말하면 그뿐입니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통찰이 어른들 책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좀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한다는 매력이 있죠. 무엇보다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고요. 그러니 아이가 없더라도 가끔은 동화책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백설공주』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색다르게 느껴질 테니까요.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