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의 청경우독] '소득주도성장' 논란의 번지수가 틀렸다, J노믹스&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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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07. 오후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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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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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J노믹스의 4대 바퀴…생산적 논쟁 통산 보완책·변화 필요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경제'라는 단어가 나왔다. 경(經)은 날줄을 의미하는 데, 이 날줄을 따라 씨줄(緯)이 모여 천이 된다. 곧 '경'은 거창하게는 법칙, 철학 쉽게는 기준 또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두고 오만가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자리 수 5000개 증가, 1·5분위 소득격차 확대, 실업자 수 증가 등 기대에 미달하는 경제지표가 나오면서 실패한 정책이니 물리라는 주장이 나왔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필요하다면 적절한 시기에 책임지겠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진화에 나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수' 입장을 밝히자 일각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망국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논란의 중심에는 '소득주도 성장'이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일자리 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4개의 바퀴로 구성돼있지만 유독 소득주도 성장이 회자되는 이유는 당장 민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만큼 반대 논리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모두 죽게 생겼다"는 둔탁한 주장 하나만으로 효과는 극대화됐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렇듯 정책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정치적 레토릭보다 '가지 않은 길'을 보완하고 공감대를 넓힐 더욱 속 깊은 논쟁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거쳐온 20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김영삼 정부의 급격한 금융자유화의 결과였음에도 외환 위기를 국가 주도형 경제 모델 탓으로 돌린 주류 신자유주의자들이 내놓은 정책은 무수한 부작용을 낳았다.

주류 신자유주의자들의 입김은 적극적인 개방과 민영화 그리고 규제 완화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은 경제 활력을 잃었다. 성장률은 고도 성장기를 벗어나면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이례적으로 외환 위기 이후 6% 수준에서 반 토막, 삼 분의 일 토막 났다. 대기업은 수백조 원을 유보금으로 쌓아두고도 투자를 꺼렸고, 외국인 주주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단기 성과에 몰입했다. 이 가운데 정부 역시 번번이 중장기 경제 계획과 산업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삶은 불안해졌다. 고용이 갈수록 불안해지는 가운데 이를 보완할 공공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그쳤다. 공공복지 지출 비중이 30% 선인 프랑스, 핀란드는 고사하고 미국(19%), 칠레(11%)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정책은 국민을 고난에서 구제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좌도 우도 아닌 경계에 있는 경제학자라고 평가받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렇게 단언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평화적 정치 혁명인 촛불 혁명은 외환 위기 이후 2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이 불공정하고 잔인한 데다 역동적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국민의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는 정책들로는 부족하고, 더 적극적으로 경제, 사회 체제를 바꿔야 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사실 논란의 중심에 선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정책이 아니다. 처한 상황과 세부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 등이 써온 정책이다. 신고전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와 일군의 호사가들이 평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이론'이 아니란 얘기다. 미완으로 끝났지만 이른바 친박(친박근혜)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추진한 '가계소득 증대 세제 3대 패키지'도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한다.

더욱이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J노믹스'의 일부에 불과하다. J노믹스라는 이름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저성장 상황을 분석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발간한 이후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줄곧 경제 교사 역할을 해왔다.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써온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여기에 학계 비주류인 포스트케인스식, 슘페터식 정책이 더해져 탄생한 것이 J노믹스다.

무엇보다 J노믹스는 과거 '성장' 담론에 대해 ㅌ거부감을 가졌던 진보 진영의 관성을 벗어나 혁신 성장을 앞세웠다. 201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이 성장 담론 부족이라는 성찰의 결과였다. 여기에 고수해온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개혁을 담았다. 동시에 다른 한 축인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한 소득 주도 성장에 힘을 실었다. 그 뿌리는 임금 주도 성장론이다. 국책 연구원인 노동연구원이 2012년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비중이 일본, 독일, 영국의 2배 이상 높은 한국의 현실을 반영해 근로자 중심의 소득 개념인 임금을 영세 사업자로 확대한 '소득'으로 바꾼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정책 시행 이후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불가피하고 선명성이 강한 소득 주도 성장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등 각론에 대한 비판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만든 일본판 케인스주의자들 '리플레파'의 임금 상승 유도 정책,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등으로 대표되는 새케인스주의,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의 '포용적 성장론' 등 생산적 논쟁은 보기 어렵다. 보수적 균형 재정을 탈피한 재정 확대 정책을 포함해 J노믹스에 빠져 있는 통화 정책에 대한 논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직 기자 방현철이 쓴 'J노믹스 vs. 아베노믹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생산적 논쟁의 출발점에 있는 여러 책 중 하나다. 저자는 J노믹스를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케인스주의 재정 확대 정책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시코노믹스)과 일본(아베노믹스)의 임금 주도 성장과 신고전파에서 포스트케인스주의자들이 주장해온 정책과 한계를 꼼꼼히 개관한다.

임금과 소득을 비용으로 접근해 단기 마이너스 효과만을 확대하는 단선적 사고는 한국의 경제 현실이 처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저자 역시 생산적 논쟁을 통해 세부 보완책을 마련하고 정책의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J노믹스에 대한 섣부른 평가와 예상를 피했다. 그러면서 "우선적인 목표로는 수출에 기대지 않고도 3~4퍼센트대의 안정적인 내수 주도 성장을 하는 것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보탰다.

꼬일 대로 꼬인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경세제민을 위한 골든타임은 생각보다 짧을지 모른다.



<방현철 지음/이콘/1만5000원>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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