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의 인물탐구]레지스탕스 영화제 집행위원장 오동진 “영화판에도 레지스탕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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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00년이다. 왕조시대인 대한제국 이후 1919년 4월 13일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상해임시정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며 역사왜곡을 시도하다 결국 몰락했다. 내년 ‘민국 100년’을 기념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 논란의 종지부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미온적인 대처로 대한민국 100년에 대한 준비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프랑스가 건국 100년 기념으로 에펠탑을 건립하고, 미국이 건국 100년 기념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변변한 사업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나마 촛불혁명 이후 허겁지겁 대한민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몇 가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 중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는 지난 6월 음악회를 열었다. 정치적 노선은 달랐지만 항일과 음악을 공유했던 음악가 정률성과 한유한의 곡으로 엮은 〈바람과 구름이 되어〉 오페라를 선보였다. 이어 8월에 학술대회, 9월에는 영화제가 열리고, 11월에 문학제가 예정돼 있다. 9월 6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리는 ‘레지스탕스 영화제’의 오동진 집행위원장(55)을 만났다.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 역사 영화제


“이 영화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100주년 법통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기획된 역사 영화제다. 내년 임정기념관 건립을 앞두고 이어지는 음악제, 학술제, 영화제, 문화제의 한 파트다. 임정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종찬 위원장은 이 영화제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음악제, 학술제보다 대중적인 영화제가 사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14개국 18편의 영화가 선을 보인다. 작품 선정 기준과 알제리 해방투쟁 영화인 〈알제리 전투〉를 개봉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정치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담을 수 있지만 레지스탕스 영화제에서는 반제국주의, 반식민해방투쟁 영화만 골라 선보이자고 했다. 이 취지에 맞춰 작품을 선정하다 보니 알제리 해방투쟁을 그린 영화를 선정했다. 프랑스에 대항했던 알제리의 9년간 투쟁을 굉장히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그런데 ‘레지스탕스 영화제’에서 레지스탕스는 나치에 저항한 프랑스인의 저항을 나타내는데, 개막작이 프랑스 식민지에 대항하는 알제리의 해방투쟁을 다루는 점이 특이하다.

“프랑스가 강대국으로 이중성이 강한 측면이 있다. 이 영화는 지금 알카에다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수준 높은 영화다. 이 작품에 대해 서로 충분히 원장과 논의했다.”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흔히 맞닥뜨리는 주최측과의 견해차이나 과도한 간섭 등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종찬 위원장에게 “우당 후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고 지원은 하되 간섭이 거의 없는 리버럴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어려웠던 점은 매우 예산이 적었고, 또 집행이 늦어 원하는 작품을 상영할 수 없었다고 한다. 9월 6일 개막작은 1966년 작품 〈알제리 전투〉이고, 9월 7일에는 한국영화 〈유관순〉(1959년), 중국 〈진링의 13소녀〉(2011년), 〈일본춘가고〉(1967년), 〈체 게바라: 뉴맨〉(2010년), 〈노비〉(2014년〉 등의 작품이 상영된다. 한국영화는 〈유관순〉,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년), 〈반도의 봄〉(1941년) 등 4편이 상영된다.

내년부터는 북한 영화도 상영 계획



이밖에 〈치열한 현재〉는 프랑스 68혁명, 중국 문화혁명 등 파리, 프라하, 베이징 등 세계사의 강렬한 순간을 기록한 다큐영화다. 항일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영화제에 일본영화가 많이 상영되는 점도 이채롭다. 오 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놀랐던 것은 의외로 일본영화 중 자신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다큐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일본 오우라 노부유키 감독의 〈야스쿠니, 지령, 천황〉은 245만명 전몰자가 합장된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에서도 매우 첨예하게 정치 이데올로기가 맞부딪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일본영화 〈개미군단〉 〈노비〉도 일본군의 참담한 실상을 폭로한 영화다.

레지스탕스 영화제 포스터

-의외로 한국영화가 적게 소개되는 느낌이다. 최근에 〈암살〉 〈밀정〉 등 항일투쟁 영화가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의외로 우리에게 항일·반제국주의 투쟁을 주제로 한 영화가 별로 없다. 이런 영화는 해방정국에 잠깐 제작되다 60~80년대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반공영화만 만들어졌다. 아마 친일 청산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시대적 분위기에서 항일투쟁 영화가 제작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항일투쟁 인사들이 빨치산 활동 등 이념적 문제에 걸려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짝호〉도 내면은 반공영화다. 항일투쟁 영화는 대부분 2009년 이후에 나왔다. 〈암살〉 〈밀정〉 〈박열〉 등이 그런 부류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으면 북에는 항일투쟁 영화가 많지 않을까. 최근 부천영화제에서 북의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우리도 그러려고 했다. 신상옥 감독이 만든 〈불가사리〉를 포함해 북한영화 8편을 소개하려 했는데 준비가 늦었다. 문화관광부에서 지원예산이 너무 늦게 집행됐기 때문이다. 영화를 도입하기 위한 북한 접촉 승인을 받고 필름을 디지털화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내년에는 상영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북한에 항일투쟁 영화가 많지만 선전용도 많다는 점을 감안해 선별해야 한다.”

-최근 tvN과 넷플릭스에서 〈미스터 선샤인〉과 같이 거액을 들여 항일투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항일투쟁 작품에 고정적인 관객이 있는 것인가.

“이는 일종의 역설이다. 지난 보수정권 동안 역사교육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학생들은 갑신정변이 언제 일어났느냐는 사실만 외울 뿐이다. 그러나 역사드라마에는 디테일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사람들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줄 알지만 실제는 잘 모른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보통 요약본으로 봤거나 줄거리만 대충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역사의 굴곡점을 소재로 영화 수천 편을 만들어도 남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백범 김구나 안중근 의사만 알았다. 그러나 영화 〈암살〉을 통해 묻혀 있던 김원봉을 대중적으로 발굴했다.”

-19세기 반제국주의 투쟁뿐 아니라, 〈택시운전사〉와 같은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한 민주화투쟁 영화도 레지스탕스 영화제 성격에 맞지 않을까.

“그렇다. 당초 그런 점도 고려했다. 그런데 작품 편수가 많아지면 저작권료와 상영료가 늘어나고, 수입비용도 늘어난다. 예산이 빠듯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생각했다. 나중에 그런 영화도 할 것이다.”

레지스탕스 영화제는 특정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갇히기보다 ‘이승만에서 김원봉까지’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작품을 선별했다. 하지만 그는 “이승만이 최고의 독립운동가라는 다큐는 상영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암살〉 〈밀정〉 등을 제작한 사람에게 ‘레지스탕스 어워드’를 주기로 했다. 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등을 초청해 독립운동사와 관련한 세미나를 할 예정이다. 영화제는 최소한 3년은 지속돼야 정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지원이 지속되는가도 중요하다. 오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는 유료화는 아니라도 협찬 등을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회계처리 등이 매우 복잡해 포기했다”면서 “앞으로는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 출신으로 영화 전문잡지 창간도

오동진 집행위원장은 1964년 서울 출신이다. 82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학생운동으로 인한 강제징집 등을 거치고 겨우 졸업했다. 졸업 후 방송위원회를 거쳐 91년 〈문화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94년 〈연합뉴스〉, 95년 〈YTN〉에서 문화부 기자를 했다. 영화기자와 〈YTN〉에서 10년 가까이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거의 완벽한 영화인이 됐다. 2001년에는 〈필름 2.0〉이라는 영화 전문 주간지를 창간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했다. 다시 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회사를 차렸다가 또 망했다. 기자가 ‘그냥 차분히 월급쟁이나 하지 왜 사업에 뛰어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40대 중반에 하면 다 이뤄질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며 웃었다.

8월 23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레지스탕스 영화제 발표 기자간담회장에서 오동진 집행위원장과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등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이은 사업 실패 대가로 그는 냉엄한 세상을 배웠다. ‘작은 영화’ 예찬론자인 그는 영화계의 극명한 양극화를 처절하게 체험했다. 또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 할 재능 있는 감독이 택배 포장을 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직접 봤다. 서울환경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마리끌레르 영화제 집행위원장,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 등을 지내며 독립·다큐영화에 애정을 가졌다. 자신의 영화평론집 〈작은 영화가 좋다〉에서 영화계의 권력과 자본의 폭력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 수 2500개 중 〈신과 함께〉가 1900개 스크린을 독점하고 나머지 영화는 걸릴 스크린이 없어 사장된다”면서 “사회의 극심한 양극회보다 더 극심한 것이 영화계 양극화”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성 있는 독립영화나 다큐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고용도 창출되고 영화계가 산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9년 동안 영화진흥공사 등 문화관광부는 블랙리스트나 만들었지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작은 영화에 대한 예찬과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었다. 본인 말대로 ‘상·중·하 세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것’이다. 기자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혁명을 해야 한다. 레지스탕스가 했듯이.(하~하~)”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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