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리스트들이 주창하는 유라시아 기차 노선
한국은 섬이다. 삼면이 바다고 일면은 넘사벽이다. 유목민 입장에서는 이런 최악의 입지도 없다. 도대체 나라 밖으로 나가려면 비행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의 국경선만 개방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르고도 남을 버킷리스트의 끝판왕이 될 게 분명하다. 한국인이 기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짜릿하지만, 세계인이 몰려들기에도 이 이상의 종착역이 또 있을까? 이것은 꿈이 아니다. 판문점의 자유 왕래가 이뤄진다면 세계의 철도는 은하철도만큼 길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서울과 평양을 거쳐 남포를 찍고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러시아 전역과 유럽의 모든 도시, 그리고 파리와 런던을 잇는 지하터널을 통과해 런던을 거쳐 리버풀까지 다다를 수 있다. 남포로 가지 않고 신의주로 갈 경우 압록강을 건너 단동으로 들어가면 촘촘한 중국 대륙 열차를 이용해 중국 전역과 실크로드를 달려 이란과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파리에서 남으로 내달리는 TGV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리고 지브롤터까지 이어질 수 있다.
꿈꾸는 레일투어리스트들은 서울역을 세계 기차여행의 중심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또 하나, 부산역을 지나 해저터널을 뚫어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가 일본 열도의 중심 오사카와 도쿄를 거슬러 올라가 삿포로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을 구상하기도 한다. 조금 더 오버한다면, 철도는 삿포로에서 멈출 수 없다. 쿠릴열도를 다리로 연결하고 러시아 최동단 나우칸하이카에서 미국 알래스카주의 웨일즈까지 이어진다면, 그 열차는 미국을 종횡무진하고 남미를 뚫고 극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알래스카까지 철도가 이어지는 날이 언제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당장 실현 가능한 구간은 역시 이미 철도가 개설되어 있는 리버풀, 부산 구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고 긴 철도의 극점은 부산-리버풀이 되는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발이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섬에서 대륙으로, 기차로 가고 싶은 그 나라, 그 도시
TSR시베리아횡단철도
▶하바롭스크
▶슬류단카
한때 ‘바이칼 괴물’이라는 키워드가 해외토픽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이칼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보았다는 그 ‘괴물’은 기억 속에서 공룡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진이 공개된 적도 있었는데, 러시아 정부나 생물학자들이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바이칼호 영향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목격담을 믿는 분위기였다.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이 호수는 북서쪽 이르쿠츠크와 남동쪽 부래트 지역 사이에 있다.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쿨’에서 유래한 이름의 바이칼호수가 형성된 시기는 약 2500만~3000만 년 전. 지구에서 가장 오래 되고 큰 호수다. 3000만 년 전이면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이고, 그 호수 속에서 어떤 생물이 어떻게 진화해 왔을지 알 도리가 없다. 바이칼호수에 대한 연구는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그 ‘괴물’은 바이칼호의 생명체와 물, 하늘, 구름, 물그림자, 안개, 인간의 상상력 등등이 만들어 낸 형상이라는 정도로 현재는 소문이 마무리 되었다. 바이칼호를 연구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현재까지 그곳에는 850여 종의 생물과 230여 종의 조류, 1500여 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체 생물 가운데 60% 이상이 바이칼호에서 진화된 고유종이라고 하니, 그곳은 거대한 우주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괴물로 불리던 그 생명체가 지금도 바이칼 어디에선가 자신들의 생태계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는 없다. 바이칼호에서는 우리에게 친근한 곰, 사슴, 물범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을 바이칼로 보는 시각이 많은 이유다. 최소한 우랄 알타이족의 출발을 바이칼로 보는데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기원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바이칼은 이제 신비의 호수가 아닌, 사람을 품는 거대 자연으로 사랑받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섬에서 대륙으로, 기차로 가고 싶은 그 나라, 그 도시
유럽철도
▶폴란드 바르샤바
대표적인 복원 건축물로는 바르샤바 왕궁을 들 수 있다. 17세기에 완공되었던 이 건물은 전쟁 때 나치 독일군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는데, 어찌나 꼼꼼하게 복원을 했는지 진짜로 17세기부터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명소다. 또 한 곳의 복원 건축물로 ‘바비칸’을 들 수 있다. 현재 바르샤바의 신도심과 구도심의 연결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16세기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건축가 얀 밥티스트에 의해 지어졌다. 역시 2차 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원했다. 붉은 벽돌, 짙은 주황색 기와지붕 등이 유럽 특유의 낮은 잿빛하늘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바르샤바 여행의 필수 코스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바르샤바 출신으로 세계 인물 역사상 가장 특이한 경력과 2회에 걸친 노벨상 수상으로 인류 문명사에 이바지한 마리퀴리박물관도 바르샤바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바르샤바 여행의 대표적 랜드마크는 문화과학궁전. 패권 시대 구소련의 스탈린이 폴란드를 탐내며 선심 쓰듯 건축한 이곳은 실질적인 바르샤바 대표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 높은 빌딩을 바라보는 바르샤바 시민들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다는 게 현지인들의 이야기이다.
▶베를린
그래서 우리도 통일해서 반도가 아닌, 태평양과 아시아-유럽을 잇는 출발점이 되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생태계가 된 비무장지대, 부산과 대전, 서울과 평양, 그리고 신의주를 잇는 한반도 종주 벨트, 개마고원 트레킹, 백두산 등정 등 무궁무진한 관광 자원, 개발이 멈춘 북한의 자연 등등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서서 상상하는 것은 당연히 즐겁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까?
독일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사람이라면 브란덴부르크 장벽에 올라 얼싸안고 춤추던 독일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기억할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하면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에 완성된 고전주의 양식의 개선문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제4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때인 1788년부터 건축이 시작되었고 건축가는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이다. 문을 바라보면 어쩐지 그리스 고대건축물이 연상되는데, 역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참고했다고 전해진다. 문의 상단은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가 조각한 말전차 모습의 청동상인 ‘콰드리가’와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조각물로 장식되었다. 개선문으로 지어진 이 문은 당시는 물론 19세기 이후에도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독일군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장소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958년까지 복원 공사를 했다.
베를린에서 어디를 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시 전체가 볼거리, 느낄 거리로 가득하다. 베를린을 초록의 풍요로 이끄는 ‘티어가르텐공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빈티지 공원 ‘베를린 동물원’, 상상을 짓뭉개는 건축미로 유명한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베를린의 전설을 머금고 있는 ‘포츠담 광장’,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박물관 섬’, ‘의회 건물’, ‘베를린 중앙역’ 등을 들 수 있다.
▶리버풀
리버풀은 항구도시 답게 도심과 이어지는 크고 작은 도크들이 즐비한데, 그중 앨버트도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 앨버트도크 빌딩은 물론 캐닝도크, 리버풀박물관 등 리버풀을 대표하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비틀즈 박물관인 비틀즈 스토리도 앨버트도크에서 연결된다. 비틀즈의 결성부터 해체, 무대 이야기, 사사로운 이야기, 유품 등 비틀즈에 관한 모든 것을 전시해놓은 이곳은 비틀즈 팬에게는 영원한 성지로, 일반 관광객에도 꼭 들려볼 만한 코스다. 오디오가이드의 수준이 세계 최강이라는 칭찬도 자자하다. 비틀즈 스토리 관람이 끝이 나면 매슈 스트리트 10번가에 있는 ‘캐번클럽’으로 이동한다. 캐번클럽은 비틀즈가 결성 초기에 주로 활동했던 클럽이었는데 비틀즈의 성공에 힘입어 리버풀 로큰롤의 심장이 되었다. 클럽은 1973년에 문을 닫았지만 1984년에 건축물을 복원하고 클럽도 재건, 일 년 내내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는 리버풀 여행 대표 명소가 되어 있다. 라이브 공연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다.
그밖에도 리버풀대성당, 로얄리버빌딩, 월드뮤지엄, 워커아트갤러리,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 머시사이드마리타임뮤지엄 등 종교, 문화, 예술, 해양 관련 뮤지엄들도 항구 인근에 밀집되어 있다.
▶부산 - 규슈 해저터널은 꿈일까?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30호 (18.05.29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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