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2000년에 한국에 정착한 함경도 출신 윤종철 요리사에게 문자 메시지로 물어보니 단박에 답이 왔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고 합니다. 갑오징어는 그냥 오징어라고 합네다^^.”
함경도 사나이로부터 직접 확인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그럴 만하다. 수산물은 종을 가리는 것이 농작물보다 까다롭다. 생물학 분류는 어민의 말을 그다지 돌아보지 않는다. 숭어를 예로 들면 이렇다. 어디서는 가숭어가 숭어다. 어디서는 숭어가 가숭어다. 그 새끼가 모치다. 숭어와 가숭어의 혼란에 모치가 껴들기도 한다. 밀치라는 말도 있다. 누구는 밀치를 가숭어의 경남 방언이라 하지만, 겨울 밀치회야말로 진미라고 뽐내는 경남 사람끼리도 숭어, 가숭어, 밀치에 대한 설명이 엇갈린다. 이제 문헌을 따라가 보겠다.
함경도 사나이 말 그대로다. 옛 문헌 속 오징어는 곧 갑오징어다. 그림 속 주인공이 바로 갑오징어(참오징어, Sepia esculenta)다. 그 몸속에 그림처럼 타원형의 뼈가 있다. 한자로는 오적어(烏賊魚)라 했다. 갑오징어의 뼈를 오어골(烏魚骨) 또는 오적골(烏賊骨)이라 쓰기도 했다. 오어골로는 지혈, 부인병 등에 쓰는 약을 만들었다.
오징어든 꼴뚜기든 한민족은 잘만 먹었다. 19세기 초 기록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이미 오징어를 골패 모양으로 썰어 볶는 요리가 나온다. 마른오징어는 물에 불려서 쓰라고 했다. 19세기 말 기록인 <시의전서(是議全書)>는 나들이용 찬합에 어울리는 포감으로 여러 수산물과 함께 오징어와 꼴뚜기를 꼽았다. 오징어란 갑오징어이고, 꼴뚜기는 갑오징어를 뺀 나머지다.
오징어 한 마리마저 증언한다
문종은 1452년 명나라 사신에게 오징어를 2000마리나 선물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마다 오징어 어획고와 시세는 언론의 큰 관심사였다. 오징어는 지난 100년간 반찬, 회, 구이, 마른오징어 형태로 대중매체에 등장한다. 오징어는 주전부리였고, 교외로 가는 열차에서 먹기 맞춤한 안주였다.
그런데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언제부터 중부 이남에서 화살오징어가 갑오징어를 대신해 오징어족을 대표하게 되었는지. 통감부가 주도해 편찬한 <한국수산지>는 원산 이북 해역을 빼고는 한반도 전역에서 갑오징어와 화살오징어가 다 잘 잡히되, 강원도만은 화살오징어가 우세하다고 보고하기는 했다. 이쯤이 희미한 단서다. 오징어 한 마리마저 증언한다. ‘아무말 대잔치’를 넘어서는, 사실에 바탕한 촘촘한 음식 문화사 서술이 이렇게 어렵다고!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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