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멸치 타령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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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8   |  발행일 2018-02-28 제31면   |  수정 2018-02-28

남해 바다가 지척인 곳에서 태어나 자란 덕분에 철마다 다양한 해산물을 맛보며 살았다. 시공(時空)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간의 한계인데, 나는 꽤 축복받은 공간을 부여받은 셈이다. 도시 사람들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일반상식만 고수할 때 나는 봄 도다리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게 ‘생멸치 무침회’라는 특별상식도 일찌감치 체득했다.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시절, 시골 읍내 전통시장은 엄청 멀었다. 제철 특산물을 장거리로 만들어 온 가족이 머리에 이고 지게로 져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만나는 전통시장은 그래서인지 더 좋았고 별천지 같았다. 채소와 과일을 팔아 만든 돈으로 어머니는 주로 생선과 해조류를 사셨다. 한 달여 먹을 소중한 찬거리였다. 고등어·꽁치·전갱어·갈치·조기·서대·민어·도다리·전어·멸치 등등 전부 자연산이었다. 50여 년 전이었으니 당시엔 양식장이 없었고, 양식할 필요도 없었다. 여러 생선 중에서 멸치는 볶음·국물용·술안주 등 여러 용도로 쓰이는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마른 멸치는 큰 종이상자로 두 박스씩 사왔다. 3남2녀에 할머니까지 여덟명 대가족이 함께 먹어야 했다. 그 멸치상자 속에는 멸치뿐 아니라 디포리·장어 새끼·꼴뚜기 새끼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쫄깃쫄깃한 꼴뚜기들을 주워먹는 재미에 빠져 멸치들을 함부로 휘젓다가 꾸중을 듣곤 했다.

벚꽃이 망울을 터뜨릴 무렵에 삼천포·고성·통영에서 쏟아져 나오는 봄 생멸치는 전통시장에 굳이 가지 않아도 산골에서도 살 수 있었다. 상인들이 1t 트럭에 생멸치를 싣고 “멸치가 왔습니다. 멸치 사러 오세요”라고 방송하면서 마을을 순방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주로 젓갈을 담그기 위해 멸치를 샀다. 그런데 죽은 지 몇 시간 안 되는 생멸치는 무침회로 만들어 먹곤 했다. 머리와 뼈를 발라내고 깻잎·상추·당근·양파·풋고추·빻은 마늘·오이 등을 함께 넣고 초고추장으로 버무리면 완성됐다. 대구에서 자란 아내는 처음에 내가 읍내 시장에서 감성돔·숭어회와 함께 생멸치를 사자 “그 젓갈 같은 것은 왜 사느냐”고 나무랐다. 그런데 감칠맛 나는 생멸치 무침회의 진면목을 알고는 감성돔과 숭어는 밀쳐내 버릴 정도로 마니아가 돼 버렸다. 생멸치 무청 조림은 또 얼마나 맛있던가. 그 멸치 철이 오고 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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