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 계보를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정리한다. 박생광, 변관식, 이상범, 이인성, 김환기, 이응노, 김종영, 권진규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덟 작가의 작품과 미술관을 살펴보고, 한국 현대미술이 궁극적으로 이들로부터 기원하고 있음을 밝힌다. 전통 미술과 서구 근대미술을 접목시켜 한국적인 그 무엇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선구자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배 작가들의 계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구체적인 모습과 특징을 한눈에 보여준다.
1. 작가와 작품의 계보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직조하다
? 이 책의 특징 1
한국 현대미술은 무엇인가? 기존의 미술사 책들은 대부분 시대를 구분하여 한국 현대미술을 설명한다. 당대를 주도한 이론, 사조, 양식을 중심에 놓고 그에 맞춰 작가와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 방식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시작되는 1950년대 후반, 추상회화가 유행하는 1960년대, 앵포르멜과 모노크롬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1970년대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 전개 과정은 미술사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며, 작가의 개별성과 의도를 다른 맥락에 포함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 책은 개별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 계보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재구성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제작된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면밀히 분석하여 가장 뛰어난 작가 117명과 대표작 151점을 선별했다. 그리고 각 작가의 미술관과 작품이 다른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고,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계보를 만들어냈다. 이 계보는 한국 현대미술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이후 그 흐름이 어떻게 연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개별 작가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개성을 그대로 확인시켜준다.
“연대기나 역사적 사건 위주로 기술된 기존의 미술사가 아니라 한 미술평론가의 편애라는 관점으로 재구성된 미술사, 중요 작가와 작품으로 직조된 미술사를 쓰고자 했다. 이른바 한국 현대미술을 한눈에 그려 보이는 지도 같은 책이자 작가들의 계보와 작품들의 전후 영향 관계에 의해 구축된 지형도를 그리고자 했다.”
_〈머리말〉 중에서(6쪽)
2. 선구자 8명으로부터 기인하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조망하다
? 이 책의 특징 2
한국 현대미술에 계보가 있다면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릴 작가는 누구일까? 저자는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을 가능하게 한 근원으로 박생광, 변관식과 이상범, 이인성, 김환기, 이응노, 김종영, 권진규를 꼽는다. 이들은 각각 이미지의 주술성, 전통적 자연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한국적 모더니즘, 서체적 추상, 조각과 물질을 보는 관점, 사실주의적 구상조각 등을 화두로 온 생애를 바쳐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 8명의 미술관과 작품은 후배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뿌리를 이룬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 작가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고 의미를 헤아리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전후로 연결되어 나가는지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인성은 당대 현실을 바라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그리고 이인성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현실주의적 시각은 박수근, 이중섭, 오윤, 신학철, 안창홍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한국적 삶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화풍이 전혀 다른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이중섭의 〈흰 소〉, 오윤의 〈칼노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시선은 바로 한국인의 삶을 바라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미술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이인성)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그의 매혹적인 그림 안에서 당시의 고단하고 피폐한 식민지 일상을 접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몸을 응시하게 된다. (중략) 식민지의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이인성의 그림은 이후 박수근, 이중섭에게 전이된다. 그들의 경우는 1950~1960년대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과 빈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업을 했고, 이후 오윤과 신학철, 안창홍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첨예한 모순을 고발하는 경우로 나아간다”
_〈이인성: 현실을 반영하는 눈〉 중에서(228~229쪽)
3. 새로운 관점과 시각으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재정립하다
? 이 책의 특징 3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 미술의 영향 없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근대 시기에 밀려들어온 서구 미술의 영향은 분명 지대했다. 어쩌면 한국 현대미술사는 서구 미술 사조를 번역해온 역사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구 미술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서구인들이 그린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린 작품을 ‘한국 현대미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미술의 ‘현대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117명의 작가는 모두 자신들이 살던 시대에 서구 미술과 한국 전통 미술을 접목하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미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이들이다. 한국 현대미술만의 고유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구 근현대미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전통 미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별 작가와 작품의 특징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수용된 서구와 일본 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미술, 한국적인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해온 기록이 바로 한국 현대미술사다. 저자는 이렇게 한국 현대미술을 보는 눈, 우리 미술의 가치를 인식하는 총체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사를 새롭게 그린다. 독자들은 각자의 개성과 방법으로 우리 미술의 ‘현대성’을 성취하는 데 성공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현실과 맞물려 유기적으로 형성되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