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결제가 80%… 日, 카드·모바일 결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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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13. 오전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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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과 은행 인프라 잘 구축돼, 국민 61% "현금결제 안 불편해"
"경제 활력에 나쁜 영향 끼친다" 캐시리스 후진국 탈출 열올려




'캐시리스(Cashless·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 사회)추진협의회'.

지난달 9일 일본 도쿄에서 이런 이름의 새로운 민관 협의체가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주도로 발족한 캐시리스추진협의회는 현금 외 신용카드나 전자화폐 결제 비율을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는 2025년까지 4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궁극적으로는 '현금 외 결제 비율 80%' 달성이 목표다.

일본에서 이같이 비장한 협의체가 등장한 이유는 하나다. 현금 거래만을 고집하는 가게와 국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수도 도쿄에서조차 '○○페이' 같은 전자화폐는 물론 신용카드조차 받지 않는 '캐시 온리(only)' 매장이 많다. 일본 국민도 현금 결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본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현금 외 결제 비율은 2015년 기준 18.4%로 한국(89.1%) 중국(60.0%) 영국(54.9%) 등보다 훨씬 낮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일본의 상황을 '캐시리스 후진국'이라고 지칭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현금 결제 문화가 국가 경제에 손해를 끼친다고 본다. 우선 외국인 관광객들이 '현금 결제 문화' 때문에 쓸 돈을 다 쓰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지난해 12개국 외국인 관광객 6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방일 외국인 여행자 의향 조사'에 따르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았더라면 돈을 더 썼을 것"이라고 답한 외국인이 68%에 달했다.

경제산업성에선 현금 결제를 우선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조2000억엔(약 12조원)의 기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현금 결제 문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이 부담하는 현금 조달 비용 및 ATM 기기 관리 비용은 연간 2조엔(약 20조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쓰비시UFJ은행은 2023년까지 ATM 기기 20%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체국은행 역시 ATM 송금 수수료 무료 서비스를 현행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여기에 현금만 받는 업장 대부분이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영세업자인 만큼 '캐시리스' 결제 방법을 받아들여 현금 결제 업무를 줄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정부가 '캐시리스 결제' 보급에 팔을 걷고 나서자 기업들은 각종 '○○페이'를 쏟아내고 있다. '라인 모바일'은 지난 6월 영세 상점의 '라인 페이' 결제 수수료를 3년 동안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3%가 넘는 수수료 때문에 카드 결제를 꺼리는 영세 상점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소프트뱅크도 곧 '수수료 0원' QR 코드 결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캐시리스' 확대 정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현금주의'라고 불리는 일본 국민의 각별한 현금 사랑 때문이다. 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가 지난 8월 발표한 '캐시리스 사회에 관한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200명 중 61%가 현금 결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현금을 선호하는 이들은 '현금 지불이 불편하지 않다'(61%) '신용카드를 쓰면 낭비한다'(36%) '카드 보안 문제가 신경 쓰인다'(26%)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의 치안과 은행 인프라가 좋아 현금 이용이 편리하다는 인식도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한국의 세액공제제도 등이 보완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연간 카드 이용액 일부를 공제해주는 등의 '당근'을 주지 않는 한 일본 국민의 현금주의 성향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g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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