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맨유 로고 사건의 전말

정용인 기자

[언더그라운드.넷 ] 수화기 넘어 상대방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그 문제로 회의 중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7월 8일 오전, 출판사 브레인스토어 관계자와 통화했다. 아마도 악몽 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저자 인지도 등을 고려해 여느 때보다 더 많이 찍은”(이날 오후 출판사 관계자의 통화) 신간 표지에 ‘일베제작 로고’가 들어간 것이다. 맨유 공식로고의 손부분을 ‘o’으로, 삼지창 끝부분을 ‘ㅂ’으로 교묘하게 조작한 로고다. 여간한 눈썰미를 지니지 않고선 쉽게 눈치채기 어렵다. 결국 출판사는 이날 오후 늦게 “서점에 깔린 책들을 전량 회수하며, 이미 구입해간 독자도 착불로 책을 보내주면 개정판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베 조작 로고가 책표지에 사용되어 논란이 일었다. 출판사 측에서는 전량회수 방침을 밝혔다. /뽐뿌게시판

일베 조작 로고가 책표지에 사용되어 논란이 일었다. 출판사 측에서는 전량회수 방침을 밝혔다. /뽐뿌게시판

<누구보다 맨유전문가가 되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일베가 만든 맨유 로고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일까. 과거 몇 차례 비슷한 사고를 겪은 SBS 측이 제작한 ‘스브스뉴스’가 그 경위를 세세하게 공개한 적이 있다.

KBS 이광용의 ‘옐로카드’ 프로그램에서도 ‘일베’가 조작한 로고가 사용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SBS와 똑같은 과정으로 당했다”고 해명했다./KBS 방영캡쳐

KBS 이광용의 ‘옐로카드’ 프로그램에서도 ‘일베’가 조작한 로고가 사용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SBS와 똑같은 과정으로 당했다”고 해명했다./KBS 방영캡쳐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맨유 고화질 로고’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 맨 앞에 나오는 맨유 로고가 일베를 상징하는 ‘ㅇ’와 ‘ㅂ’를 교묘하게 삽입한 일베제작 맨유로고다./Google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맨유 고화질 로고’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 맨 앞에 나오는 맨유 로고가 일베를 상징하는 ‘ㅇ’와 ‘ㅂ’를 교묘하게 삽입한 일베제작 맨유로고다./Google

촌각을 다투는 방송제작자들로서는 공문을 주고받으며 로고를 입수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구글 이미지 검색을 활용한다. 디지털 열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디자인 작업에서는 가급적이면 고화질 이미지를 선호한다. 구글 이미지 검색의 고급검색을 통해 큰 사이즈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다가 일베 사용자들이 만들어놓은 ‘트랩’에 빠지는 것이다. 지난 4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역시 일베로고가 등장해 곤욕을 치른 KBS 이광용 아나운서는 기자에게 “KBS도 똑같은 과정으로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인스토어 측이 당한 맨유 로고는 올해 2월 9일 ‘엠블럼제작’이라는 일베 회원이 만들어 올린 것이다. 8000×8000의 초고화질 이미지다. <누구보다 맨유전문가가…> 책 표지에 이 로고가 사용된 걸 누가 최초로 발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주요 커뮤니티에서는 9시27분쯤에 ‘레사모’에서 처음 퍼온 것으로 돼 있는데, “일베가 해냈다!”라며 일베 회원이 처음 글 올린 시간(9시16분)과 몇 분 차이나지 않는다. 이 로고를 제작한 일베 회원이 “씨X!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고는 내가 만들었다!!!!!!”라며 글을 올린 시간은 9시53분이다.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열악한 출판 제작환경 등 보다 무거운 토론 주제가 나올 수 있다. 여기서는 딱 하나만 짚자. 검색엔진 구글에서 ‘맨유 로고’로 검색하면 지금도 일베에서 만든 로고들이 최상위 검색 결과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일베회원이 올린 올해 2월 최초 게시물을 보면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버전의 제목을 달고 있다. 다시 말해, 꼭 국내가 아니고 외국에서라도 누가 실수로 이 ‘트랩’을 밟은 게 발견되면 그걸 인증해 베스트게시물로 선정돼보겠다는 속셈이다.

구글 측에 문의해봤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경우가 명백하더라도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하는 것이 맞을까. 구글 측은 “구글은 웹상에 있는 내용을 인덱싱해서 보여주는 검색엔진이며, 검색엔진으로서 구글은 최소한의 검열과 필터링을 하려고 한다”며 “논쟁적인 주제는 논쟁적으로 놔둬야 한다는 것이 구글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결론: ‘똥’을 밟지 않으려면 각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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