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창단년도 1902년
정식명칭 Real Madrid Club de Fútbol
연고지 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81,044명)
닉 네임 Blancos, Merengues, Vikingos
프리메라 리가 우승 34회(리그 최다)
코파 델 레이 우승 19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3회(최다)
유로파리그 우승 2회(1984/85, 1985/86)
UEFA 슈퍼컵 우승 4회(2002, 2014, 2016, 2017)
FIFA 클럽 월드컵 3회(2014, 2016, 2017)
레알 마드리드 창단년도 1902년
정식명칭 Real Madrid Club de Fútbol
연고지 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81,044명)
닉 네임 Blancos, Merengues, Vikingos
프리메라 리가 우승 34회(리그 최다)
코파 델 레이 우승 19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2회(최다)
유로파 리그 우승 2회(1984/85, 1985/86)
UEFA 슈퍼컵 우승 3회(2002, 2014, 2016)
FIFA 클럽 월드컵 2회(2014, 2016)

구단 소개

20세기 최우수 클럽으로 선정된 레알 마드리드의 본래 이름은 F.C 마드리드였다. 그러나 스페인 국왕의 이름이 걸린 킹스컵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Real(왕가, 왕가의)'이라는 칭호가 주어졌고, 그들은 레알 마드리드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국내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는 5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The Blond Arrow'로 불리우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만능 플레이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의 영입을 시작으로 헝가리의 수퍼스타 페렌치 푸스카스, 프랑스의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손꼽히는 라이몽 코파가 연거푸 마드리드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왼쪽 날개 프란시스코 젠토, 당대 최고의 센터백 산타마리아와 함께 '드림팀'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55년~60년까지 챔피언스 리그 5연패와 60년~65년까지 프리메라 리가 5연패를 연거푸 달성하며 '저승사자군단'이라는 공포스러운 별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11명의 선수가 모두 스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중의 별'은 디 스테파뇨였다. 그는 공격수지만 어느틈엔가 미드필드 아래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기도 하고, 측면쪽에서 탱크같은 돌파를 시도하는등 스테미너 넘치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강력한 왼발의 소유자였던 푸스카스 또한 디 스테파뇨와 컴비를 이루며 위력적인 공격 라인의 중심 역할을 해냈다. 디 스테파뇨는 무려 5번(53/54, 55/56, 56/57, 57/58, 58/59)이나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푸스카스도 모두 4회(59/60, 60/61, 62/63, 63/64)에 걸쳐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맞붙었던 59/60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푸스카스가 4골, 디 스테파뇨가 3골을 터뜨려 7:3의 대승을 이끌었던 기억은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명승부로 남아있기도 하다.

70년대, 산틸라나등을 앞세워 다시 한 번 프리메라 리가 5연패(77년~82년)의 기록을 달성했으며 80년대 들어서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미구엘 미첼, 우고 산체스등을 앞세워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85년~9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역사상 3번째 리그 5연패의 위업을 다시금 세웠고, 스페인의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요한 크라이프 감독이 지휘하는 바르셀로나에 밀려 90년대 초반들어서는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00년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새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전환기를 마련한다.

루이스 피구를 라이벌팀 바르셀로나에서 영입하겠다는 공약으로 회장에 당선된 페레즈는 2000년 피구를 시작으로 매년 한명의 슈퍼스타를 영입하겠다는 갈라티코 정책으로 팀을 새롭게 바꿔놨다. 2001년 지네딘 지단, 2002년 호나우두, 2003년 데이비드 베컴, 2004년 마이클 오언을 영입했다. 기존의 스타인 라울과 모리엔테스 투톱에 호나우두까지 가세한 공격력이 압권이며 지단과 피구가 이끄는 미드필드는 화려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갈라티코 시절 2001/02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지만 못했다. 공격쪽에는 스타선수들이 즐비했지만 수비쪽을 등한시한 결과 공수의 불균형을 초래했고 효율적인 축구를 하지 못했다.

갈라티코 정책이 실패하자 페레즈 회장은 2006년 2월 자진사퇴하고 칼데론 회장으로 바뀌었다. 칼데론은 이전의 갈락티코스가 아닌 다소간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다시금 불러들였고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 마드리드는 2002/03 시즌 이후 네시즌 만에 라 리가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게 되었다.

칼데론 시절 루드 판 니스텔로이, 클라스 얀 훈텔라르, 아르엔 로벤, 베슬리 스네이더, 라파엘 판 더 바르트 등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들이 연이어 영입되면서 네덜란드 커넥션 시대로 불리기도 했다. 이 당시 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04/05시즌부터 08/09시즌까지 6년 연속 챔스 16강 탈락을 겪으며 '16강 마드리드'라는 별명도 얻는 수모를 당했다.

2009년 칼데론 회장이 투표 조작 파문으로 물러난 뒤 다시 페레스 회장이 취임하면서 갈라티코 정책의 부활을 선언했다. 2009년 당시 최고 이적료인 8천만 파운드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했고 10/11시즌부터 ‘스페셜 1’으로 통하는 조세 무리뉴를 인터 밀란에서 데려왔다. 시즌 레알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무리뉴는 3위권과의 격차를 크게 벌이며 바르셀로나와 함께 독주 체재로 시즌을 시작해 마무리까지 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르셀로나의 벽은 넘지 못하며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무리뉴는 재임 기간 동안 팀을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시키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리그에서는 11/12 시즌 한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한시즌 역대 최다승(32승), 최다승점(100점), 최다골(121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팀주축 선수인 카시야스 골키퍼와의 불화설 및 내분설에 휩싸이며 팀을 떠났고 13/14 시즌부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13/14시즌을 앞두고 9100만 유로(약 1309억원)의 최고 이적료를 지불하고 가레스 베일을 영입한 안첼로티의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중반까지 잘 나갔지만 막판 에이스 호날두의 부상과 집중력 부족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과 4강에서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디드를 꺾고 12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통산 10번째 우승(라 데시마)를 달성했다.

14/15시즌 전반기 22연승으로 출발했으나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바르셀로나에 리그 우승을 내줬고 무관에 그치자 안첼로티 감독이 경질됐다. 15/16시즌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부임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경기력 부재와 선수단 볼화까지 겹쳐 결국 시즌 중 베니테즈 감독이 경질되고 B팀 감독을 맡고 있는 지네딘 지단이 감독을 이어받았다. 초보 감독인 지단은 팀을 잘 추려 바르셀로나와 끝까지 우승경쟁을 펼친 끝에 승점 1차로 리그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고 11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둬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16/17시즌 지네딘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는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해 1년 전의 아픔을 갚아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호날두의 엄청난 득점력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 최초의 2시즌 연속 우승이자 12번째 우승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