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선물세트? 추석포장세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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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82>‘배보다 배꼽’ 과대포장

직장인 권영혜 씨(35·여)는 최근 추석을 앞두고 지인에게 화장품 선물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스킨, 로션 등 기초 화장품 세트를 고르던 권 씨는 스킨(5만 원), 로션(5만 원)을 각각 낱개로 구매하는 것보다 선물세트 가격(12만 원)이 더 비싼 것을 알게 됐다. 선물세트에는 해당 제품의 샘플이 1개씩 추가로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포장값이었다. 매장 점원은 “선물용 패키지 제품은 포장부터 특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물용 패키지는 구성품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 놓은 것일 뿐이다. 권 씨는 “고정대나 포장지 등을 빼면 상자 안에는 빈 공간이 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각종 선물세트 중에는 내용물에 비해 쓸모없는 공간이 과도하게 많은 ‘과대 포장’ 상품이 적지 않다. 이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허례허식 중 하나다. 선물의 크기나 부피가 정성의 척도라거나, 이왕이면 크거나 묵직한 선물을 해야 한다는 관습이 낳은 결과물이다.

과대 포장 제품의 문제점은 포장지나 상자 처리 등 환경 문제는 물론이고 비용 부분에도 있다. 포장을 더 한 만큼 그 비용을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지난해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추석 선물세트 24종(생활용품, 가공식품)의 판매 가격을 조사한 결과 세트 상품의 판매가격이 해당 세트의 구성품을 낱개로 각각 구입한 가격보다 평균 12%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포장 기준은 종합선물세트의 경우 제품이 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는 선물세트가 많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4월 명절 선물세트 과대 포장 단속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제품(77건) 중 포장 공간 비율을 위반한 사례가 전체의 88.3%(68건)로 가장 많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크고 두툼한 선물을 선호하는 우리의 선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과대 포장 제품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불필요한 과대 포장 문화를 바꿔보려는 유통업체들의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정육세트를 담는 종이 상자를 올해부터 밀폐 용기로 바꿨다. 현대백화점은 과일 포장 시 외관상 들어갔던 리본과 상자를 한 번 더 싸는 보자기 포장을 모두 없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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