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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가와기타 미노루(川北稔)는 교토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문학박사(서양사학 전공)를 취득했으며 현재 오사카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영국사』, 『영국 근대사-종교개혁부터 현대까지』, 『공업화의 역사적 전제-제국(帝國)과 젠틀맨』, 『민중의 대영제국-근대 영국사회와 아메리카 이민』, 『미국은 누구의 것인가』 등이 있다.
번역 장미화
역자 장미화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와세다 일본어학교를 수료했다. 현재 신한종합연구소 금융실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며, 일본 정기간행물의 번역, 집필,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역서로 『부자는 20대에 결정된다』, 『2000만 원부터 시작하는 부자 입문』, 『행복한 노년의 삶』, 『영업, 논리로 승부하라』, 『My Goal : 자기 자신의 목표를 가져라』, 『맨얼굴 미인 되기』(가제, 근간) 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설탕의 신비
누구나 좋아하는 설탕
'세계상품'이란 무엇인가?
노예무역을 낳은 설탕
약인가, 식품인가
식품이 된 설탕
설탕은 어디에서 왔나?
설탕의 원료, 사탕수수
이슬람 교도에 의한 지중해로의 도입
사탕수수 재배에 필요한 조건
십자군과 설탕
대서양 섬들의 시대와 안트베르펜의 시장
콜럼버스의 교환
브라질당의 시대
카리브 해 시대의 시작
카리브 해와 설탕
해적의 바다, 카리브 해
설탕혁명
플래네이션이란 무엇인가?
'중간항로'의 공포 - 노예무역
삼각무역 - 유럽과 아프리카와 카리브 해
설탕과 차의 조우
해열제 역할을 한 설탕
신학상의 설탕
권위의 상징 - 설탕 데커레이션
차와 설탕의 랑데부
건망증 약, 홍차
차를 마시는 여러 가지 방법
왜 홍차에 설탕을 넣었는가?
'국민적 음료'로의 길
영국의 '상업혁명'
하나로 연결된 세계
커피하우스가 낳은 근대문화
커피하우스의 유행
정보센터로서의 커피하우스
거품의 붕괴
문학·정치와 커피하우스
초컬릿하우스
뜨거운 논쟁 - 차는 마약인가, 약인가
설탕은 제왕
차, 커피, 초콜릿
가정으로 확산되지 못한 커피
민중의 영웅 '밀수왕'
'영국 젠틀맨'이 되고 싶었던 식민지 플랜터들
차를 보이콧한 식민지 사람들
미국인의 음료가 된 커피와 코카콜라
프랑스의 카페
초콜릿, 아스테카로부터의 선물
초콜릿도 '약'
고형 초콜릿의 시초
'세계상품'으로서의 초콜릿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
화가 호가스와 흑인들
세계무역의 주도권을 다툰 유럽제국들
흑인 서머싯에 대한 판결
카리브 해 최초의 흑인국가 아이티
설탕과 럼주 -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불만
영국식 아침식사와 '오후의 홍차' - 노동자계급의 차
주식과 부식
말과 스코틀랜드인이 먹는 음식, 포리지
'성 월요일'의 소멸과 도시 노동자의 생활
'영국식 아침식사'의 성립
'근대세계체제' 속의 아침식사
설탕을 넣은 홍차의 두 가지 의미
노예와 설탕을 둘러싼 정치
영국의 곡물정책 전환
설탕 과보호정책과 차에 대한 독점 허용
'갑싼 아침식사'로
기묘한 역전
영국령 설탕식민지의 말기
사탕수수 여행의 끝 - 사탕무의 도전
온대지방에서도 설탕을 재배할 수는 없을까?
사탕무의 보급
근대 과학기술과 노예노동의 경쟁
황혼기의 설탕
세계사를 움직인 설탕
상품을 통해 보는 세계사 - 세계사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슬람교도에 의한 지중해로의 도입(25P-)
유럽인 가운데 처음 설탕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기원전 4세기경 동방원정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이다. 하지만 설탕이 유럽이나 그 외 지역으로 널리 전파된 것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다. 그 후 사탕수수의 재배와 제조기술은 코란과 함께 서방으로 뻗어나갔고, 지중해 동부의 여러 섬들과 아프리카 북부, 스페인에서도 활발히 재배되었다. 유럽의 크리스트교도가 설탕을 알게 되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말 십자군운동 때부터다. 그 후 설탕의 여행의 주도자는 크리스트교의 성서를 한 손에 쥔 포르투갈인들로 바뀌었고, 이리하여 대서양의 여러 섬에서 아프리카인 노예를 이용해 이루어진 사탕수수 생산은 16세기 초부터 급속히 성장하여 이 무렵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국제시장으로 떠오른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일단 모인 다음 유럽 각지로 팔려나갔다.
콜럼버스의 교환(31P-)
초기에 설탕은 아시아에서 채취되는 향료와 마찬가지로 귀중품이었으나, 향료와는 달리 유럽인 자신들의 손으로 플랜테이션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 점차 널리 사용되는 식품으로 보급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누구나 좋아하는 설탕은 거의 무한한 시장이 존재했으므로, 이 고급식품을 플랜테이션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포르투갈을 선두로 한 유럽 각국은 앞다퉈 새롭고 광대한 사탕수수 재배지를 찾아나선다. 콜럼버스가 서반구를 향해 떠났던 두번째 항해에 사탕수수를 가져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설탕혁명(43P-)
이처럼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전 세계의 정치가들과 실업가들은 설탕의 생산권 확보와 그 유통의 장악 문제를 놓고 온갖 지혜를 짜내느라 고심했으며, 그 결과 브라질이나 카리브 해의 섬들에 사탕수수를 위한 대농장인‘플랜테이션’들이 만들어졌다. 이 플랜테이션에는 유럽제국, 그 중에서도 영국 자본이 주로 주입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노예로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특히 오늘날의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노예를 이용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경영한 포르투갈이나 카리브 해 지역에서 노예들을 활용해 사탕수수 생산에 힘을 쏟았던 영국은 설탕에 대한 패권 장악에 성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나라다. 이를 두고 토바고의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흑인 역사가 에릭 윌리엄스는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삼각무역(59P-)
이처럼 노예무역과 설탕의 수입무역은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예컨대 영국 리버풀을 출발하는 노예무역선은 아프리카 흑인왕국이 원하는
총과 유리구슬, 면직물 등을 가득 싣고 가서 서아프리카에서 노예와 교환한다.
이어서 획득한 노예들을 비극의 ‘중간항로’를 따라 수송해 가서 남북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에서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설탕(또는 면화)을 사들여 리버풀로 되돌아오는데, 이러한 일련의 무역을 역사가들은‘삼각무역’이라 불렀다. 이 삼각무역에 의해 아프리카,유럽, 아메리카의 세 대륙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연결되었는데, 유럽은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항구도시와 상인들의 경제력도 급속히 신장된 반면 아프리카에는 비참한 영향을 미쳤다.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1천만여 명이 끌려갔던 탓에 성장의 동력 자체를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베닌 왕국 같은 연안의 흑인왕국 중에서는 노예사냥을 생업으로 삼고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을 팔아넘긴 대가로 이익을 취한 나라들도 있었으나, 이런 식의 장사를 계속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제발전은 이룰 수 없었다.
출판사 서평
상품을 통해 보는 세계사
하나의 상품을 통해 근대의 세계사를 살펴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 가외기타 미노루 교수는 이를 위해 본서에서 주로 설탕과 차, 면직물 같은 상품을 거론하지만, 그 밖에도 이와 유사한 상품으로 밀이나 쌀 같은 기본 식량 외에 기본적인 의류도 있다. 최근에는 석유나 자동차도 그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전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상품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세계 각지 사람들이 영위했던 구체적인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었으며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또 어떤 일로 즐거워하고 눈물을 흘렸는지.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과 공감하기가 불가능한 만큼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설탕과 같은 상품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왕족이나 상류계급 사람들뿐 아니라 기층민중들의 생활,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꾼들에 의해 강제로 잡혀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눈물과 땀과 한숨으로 지새웠던 카리브 해 노예들의 고단한 삶 등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상품’의 경우는 전 세계에서 통용된 상품이므로 그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좇아가다 보면 세계 여러 지역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잘 알게 된다. 예컨대 설탕은 주로 카리브 해에서 생산되었지만 이를 위한 노동력이 된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에서 공급되었으며 생산된 설탕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므로 설탕의 역사는 세 대륙을 동시에 시야에 두지 않으면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또 유럽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설탕을 소비했는지, 카리브 해 노예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알아야 하며, 노예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필히 생각해 봐야만 한다.
설탕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과거의 역사가들은 국가나 국민을 단위로 하여 세계의 역사를 이해했다. 국민들이 부지런한 나라는 부강해지고 게으른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가난해졌다는 학설은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카리브 해에서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흑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었으며, 단지 이 지역이 ‘세계상품’인 설탕의 원료, 즉 사탕수수의 생산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곳에 플랜테이션을 건설하고 ‘모노컬처’사회를 도입함으로써 이 땅의 현재와 미래의 잠재성장력을 철저히 착취했다. 따라서 카리브 해에 설탕 플랜테이션이 성립된 것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된 사실은 두 현상을 함께 보아야만 그 맥락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또 아메리카합중국 남부에 노예제와 면화 플랜테이션이 성립된 것도, 18세기까지는 세계 면직물 생산의 중심지였던 인도가 면화 플랜테이션의 나라로 전락한 것도 모두 영국의 산업혁명과 떼어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설탕이나 면직물 같은 세계상품이 우리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이 공업의 발달처럼 인류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에대해서는 물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들 상품을 놓고 벌어졌던 쟁탈전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 심각한 후유증이 아직까지도 지구상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이 연대나 사건, 인명 따위나 달달 외우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우리와 친숙한 부분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즉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여기에 오기까지 어떤 역사적 변천을 거쳤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과거부터 ‘모든 역사학은 현대사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세계는 하나’라는 표현을 우리는 흔히 사용하는데, 그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설탕의 세계사』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그것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1996년 초판이 나온 이래 14쇄 이상 거듭 찍혀나왔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당초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중고등학생을 위한 책으로 출간되었던 터라 문체가 평이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친절한 부연설명이 달려 있어 평소 역사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도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씌어 있지만, 소재를 다루는 깊이나 내용 면에서 대학생 이상이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이 국내 독자들에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보다 깊이있는 역사인식을 가능케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 책속으로 추가 *
약인가, 식품인가?(65P-)
설탕은 본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식품이었을까? 만일 식품이었다면 칼로리 보급원으로서의 ‘식량’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조미료였을까?
실제로 설탕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용도와 의미가 있었다. 이슬람 의학에서 설탕은 가장 흔히 쓰이는 약재였고 중세유럽에서도 설탕은 결핵치료 등 10여 가지 효능을 가진 약재로 여겨졌다. 그 증거로 11세기의 위대한 아라비아의 의학자 이븐시나는“설탕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라고 단언했고, 12세기 비잔틴제국 황실에서 일했던 의사도 해열제로 설탕에 절인 장미꽃잎을 처방했으며, 15세기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의 의과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한 의학서에도 설탕은“열병, 기침, 가슴의 병, 까칠까칠한 입술,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씌어 있다. 나아가 14, 5세기 유럽 전역에‘흑사병’이라고 불렸던 페스트가 크게 유행했을 때에도 설탕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한편 설탕은 후추나 향료처럼 고급스러운 조미료이기도 했다. 특히 백설탕에는 뭔가 신비적인 의미가 있다고 간주되었으며, 때로 정교하게 세공된 장식품으로 만들어져 국왕이나 귀족의 파티, 의례를 화려하게 장식하곤 했다. 오늘날 결혼피로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웨딩케이크의 기원도 여기서 비롯된다.
차와 설탕의 랑데부(71P-)
17세기 이후 설탕소비가 극적으로 증가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어떻게 성립되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나갔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7세기 초 설탕과 차는 약국에서 취급될 만큼 귀중한 ‘약품’이었다. 따라서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이런 것들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이나 젠틀맨 같은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 내지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무역상인들뿐이었다. 즉 이 시대에 차나 설탕은 대단한‘스테이터스 심벌'(status symbol, 신분의 상징)로, 이는 마음껏 사치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영국인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영국의 독특한 차 문화 이면에는 무수한 아프리카 노예와 아시아의 가난한 농민들이 흘린 눈물과 땀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식 아침식사’의 성립(149P-)
산업혁명 후의 영국에서 도시노동자들의 생활조건에 가장 적합했던 것은 홍차와 설탕, 가게에서 산 빵과 포리지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다. 설탕을 넣은 홍차를 기본으로 하는‘영국식 아침식사’는 제대로 된 부엌이 없더라도 뜨거운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준비가 가능한 음식이었다. 특히 설탕을 넣은 홍차는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즉효성 있는 칼로리 보급원이었다.
즉효성이라는 의미에서는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일하는 도중에 차를 마시는‘티 브레이크’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충분한 칼로리를 보급하여 정신이 번쩍 든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야말로 공장 경영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던 노동자였던 것이다. 차가운 빵을 한순간에 더운 요리로 바꿔주는 한 잔의‘설탕을 넣은 홍차’가 없었다면 19세기 영국 공업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은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89222606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10월 15일 |
쪽수 | 190쪽 |
크기 |
160 * 216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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