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비과학적 관습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같은 해에 태어난 외국인에 비해 한두 살이 많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독특한 나이 셈법 때문이다. 12월 31일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연출한다. ‘한국 나이’ ‘햇수 나이’ ‘세는나이’로 불리는 이런 관습은 과거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등 유교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통용됐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세는나이를 없앴다고 한다. 첫돌이 돼야 비로소 한 살이 되는 게 정상인데 세는나이로 하면 두 살 때 돌잔치를 하게 되는 셈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세는나이가 사라졌다. 일본의 경우 1902년 법적으로 ‘만 나이’를 쓰도록 장려했으나 실생활에서 정착이 잘 되지 않자 1950년 아예 ‘나이 세는 법에 관한 법률’까지 만들어 세는나이 관습을 없앴다.

우리나라도 법률 및 각종 공문서에선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사용한다. 민법상 성인이 되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19세는 만 나이다. 그래서 스무 살이 돼도 투표소에 못 가고 성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진풍경이 벌어진다. 인터넷엔 만 나이를 계산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때와 경우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나이를 현실에 맞게 통일할 필요가 있다. 세는나이는 실생활에 불필요한 혼란을 주고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비과학적이다.

이 같은 비과학적 언어습관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TV에서 새벽에 벌어지는 스포츠 중계방송을 예고할 때 흔히 “오늘 밤 12시 반부터 중계해드리겠습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밤 12시 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하루는 24시간이어서 “내일 0시 반”이 적확한 표현이다. CNN BBC 등 외국 방송은 어김없이 ‘다음날 am 00:30’으로 예고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주변과 일상의 소소한 비정상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