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엘릭시르, 2013)은 악명 높은 여자 독살범의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독살범의 이름은 마리 마들렌 도브리.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마리는 163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명망 높은 사법관의 딸로 태어났다. 마리는 남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즐기기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21세 때 마리는 브랑빌리에 후작과 결혼을 했다. 후작도 마리처럼 방탕한 생활을 하는 한량이었다. 두 사람이 평범하게 결혼 생활을 할 리가 없었다. 후작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리는 자신의 집에 남자들을 끌어들였다. 마리가 만났던 남자 중에 남편의 친구이자 군인인 생트 크루아도 있었다. 후작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눈감아줬다. 아마도 후작은 자신 또한 바람기가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아내의 불륜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딸의 불륜에 관한 소문이 사교계에 퍼지게 되자 마리의 아버지는 분노했다. 그는 사법관 지위를 이용하여 생트 크루아를 체포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가뒀다. 생트 크루아는 자신을 감옥에 한 마리의 아버지를 독살할 생각을 품는다. 그는 옥중에 이탈리아인 독살범에게 비소로 독약을 만드는 비법을 배웠다.

 

체포된 지 6주 뒤에 감옥에 나온 생트 크루아는 자신의 독살 계획을 마리와 함께 실행하기로 했다. 비소 독약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가난한 병자들이 입원하는 자선병원에 위문을 핑계로 환자들에게 찾아가서 독이 들어간 과자를 나눠줬다. 이 사건으로 환자 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병원 측은 독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살인의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마리와 생트 크루아는 같은 수법으로 마리의 아버지를 독살했고, 마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형제들까지 독살하기에 이른다.

 

마리의 대담성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브랑빌리에 후작도 그녀가 처치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후작이 죽어야 생트 크루아와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의 계획은 실패했다. 생트 크루아는 후작을 독살하려는 그녀의 계획을 반대했으며 의도적으로 막았다. 생트 크루아가 마리의 계획을 방해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생트 크루아는 마리와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았고, 혹시나 그녀와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자신도 그녀로부터 독살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마리와 생트 크루아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고, 생트 크루아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가 생트 크루아를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리의 범행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녀는 가죽 깔때기를 입에 문 상태에 강제로 들이붓는 물을 마시는 물고문을 받았다. 끔찍한 고문을 받고 나서야 마리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1676년에 단두대에서 참수되었고, 그녀의 시체는 불에 태워졌다.

 

마리의 범행은 살인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소재로 글을 쓰는 추리작가들에게는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였을 터. 카는 화형법정에서 17세기 여자 독살범의 영혼을 불러들여 신비롭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작중인물인 스티븐스의 아내는 여자 독살범의 이름과 외모와 닮은 바람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그녀는 깔때기만 보면 무척 싫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마리가 깔때기를 이용한 물고문을 받았던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카가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다. 역사소설의 대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마리 도브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 ‘셜록 홈즈시리즈를 만든 코난 도일가죽 깔때기라는 제목의 짧은 공포소설을 썼다. 제목만 봐도 마리 도브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린다. 도일은 만년에 (일부는 가짜로 판명되었지만) 심령술에 심취했을 정도로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가죽 깔때기화형법정에 비하면 읽을 때 느끼는 공포 분위기와 긴장감이 덜 하다. 도일의 가죽 깔때기를 읽고 나서 카의 화형법정을 읽는 것이 낫다. 반대 순서로 읽으면 도일의 소설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책으로는 독약의 세계사(시부사와 다쓰히코, 가람기획, 2003), 킬러, 형사, 탐정클럽(외르크 폰 우트만, 열대림, 2007),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다나카 마치, 전나무숲, 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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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2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흥미진진해요.

cyrus 2015-06-29 17:52   좋아요 0 | URL
살인마 이야기는 언제나 봐도 흥미진진하죠. ^^

해피북 2015-06-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이나 지금이나 욕망에 대한 집착 과 범죄는 다를바가 없는거 같아요. ㅠㅅㅠ

cyrus 2015-06-29 17: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지구가 사라져도 인간의 욕심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6-30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특이한 작품이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