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악화는 내수 침체에 산업·인구구조 변화 대응 못한 탓”

입력
기사원문
남지원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ㆍ고용노동정책 전문가, 노동연구원 개원 30주년 좌담회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0주년 기념 특별좌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성재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전병유 한신대 교수, 강성태 한양대 교수, 이승렬 사회정책연구본부장, 배규식 원장, 장지연 부원장, 정이환 한국과기대 교수.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1987년 6월항쟁과 이듬해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태동한 고용노동정책 연구 국책기관 한국노동연구원이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노동연은 노동시장 분석과 고용정책, 실업대책 등 사회보험, 노사관계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를 쌓아나가고 정책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일 경향신문과 노동연이 함께 개최한 기념 좌담회에서 노동연 간부들과 고용노동정책 전문가들은 최근 고용동향을 평가하고 노동시장 내 격차를 줄이고 활력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과 소득주도성장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좌담회에는 노동연 배규식 원장, 장지연 부원장, 조성재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이승렬 사회정책연구본부장과 이날 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고용노동정책 전문가인 전병유 한신대 교수, 강성태 한양대 교수, 정이환 한국과기대 교수가 참석했다.


- 9월 고용동향에서 고용증가율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병유 교수 = 첫째로 내수경기가 많이 침체됐는데 이 부분을 챙기지 못한 것 같다. 또 하나는 구조적으로 2015년 전후로 ‘터닝포인트’가 왔다. 인구구조가 바뀌며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경쟁력이 약한 제조업의 구조조정 문제도 이 무렵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들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지난 정부 때 대응이 잘 안됐다. 2017년에는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았던 측면도 있다. 산업구조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 최저임금 영향은 어떻게 봐야 하나.

배규식 원장 = 최저임금이 6~8월 고용동향에 약간 부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작았던 것으로 본다. 최저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서 일관되게 고용이 줄었다면 분명 최저임금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음식점업이나 소매업은 고용이 줄었으나 사회복지나 개인서비스 업종에서는 오히려 늘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줄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늘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직원들을 해고한다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통계다.

강성태 교수 =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경제전망이 어떻게 되는지, 최저임금을 어떻게 감내할지에 대한 구체적 전망이 도통 나오지 않다가 한 달 반밖에 안되는 심의기간에, 그것도 단편적 주장들만 언론을 통해 쏟아졌다는 점이다. 최임위에는 독자적 조사분석 기능이 없어 여러 부처와 연구기관에서 경제상황을 분석해줘야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론을 낼 수 있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인데 (2020년도 최저임금 결정 전인) 내년 2~3월 정도에 노동연과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국책기관들이 최저임금 인상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우리 경제가 감내할 만한 선이 어디까지인지 분석해주길 바란다.

이승렬 본부장 = 최저임금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 비중이나 인구구조 변화 같은 다른 요인들을 다 발라내고 최저임금 영향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계인프라를 보완하고, 연말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고용증가율 둔화가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과잉정치화된 해석이다.

-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된다.

조성재 본부장 = 산업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고용 유발효과가 작은 반도체 등은 잘되고, 자동차와 조선처럼 고용 유발효과가 높은 산업들은 헤매고 있다. 조선업은 바닥을 쳤으니 곧 회복되겠지만 한국지엠과 현대차 등이 부진한 자동차산업이 위기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곧 일자리가 수백만개 없어질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이 있는데 지나치게 기술중심적, 기술결정론적이다.

전병유 교수 = 새로운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일터를 혁신해 전통적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다.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 어디일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은 | 고용률 둔화의 원인으로 단정은 과잉정치화된 해석

고용없는 성장 어떻게 | 데이터 활용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창출 고민해야

일자리·사회정책 결합 | 고용의 양과 질 함께 확대 쉽잖아…사회안전망 시급

소득주도성장 문제는 | 공정거래·산업정책 등 세부적 정책패키지 제시 필요

노동연 화두와 과제는 | 특정기업 아닌 제도 통한 삶의 안정 보장 시스템 구축


- 일자리 정책을 어떻게 다른 사회정책들과 결합해야 할까.

정이환 교수 = 지금까지는 임금 수준이 고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낮았고, 대기업은 일감을 하청으로 돌렸다. 전체적으로 저임금 고용이 많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게 문제가 되는 시기가 왔다. 선진국은 임금과 일자리, 복지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킬지를 고민한다. 우리도 이제 그런 고민을 할 때가 됐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일자리의 질을 올리려 해왔지만, 이제 이것을 어떻게 복지정책과 결합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장지연 부원장 = 고용의 양과 질 둘 다 확대하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다. 고용의 질을 올리려면 불가피하게 일시적이든, 조금 더 긴 시간이든 일자리를 잃는 분들이 생긴다.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음 일자리로 빠르게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 소득주도성장 방향 자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다

배규식 원장 =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야 내수시장이 커지고 새 투자 기회가 생긴다. 소득의 핵심이 임금이므로 이를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 격차를 줄이고 소득분배를 연계해서 선순환구조와 균형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최저임금만 자꾸 부각돼 안타깝다. 여전히 대기업들이 각 산업을 독점하고 있다. 지대를 추구하는 대기업 독점구조를 줄이고, 하청업체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분배를 개선할 종합적 방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산업정책 등 종합적 그림이 필요한데, 소득주도성장의 세부적 정책 패키지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 노동연 30주년 화두를 ‘포용’과 ‘활력’으로 잡았다.

배규식 원장 = 한국에는 ‘4대 차별’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지역 차별이다. 앞의 3가지 요소는 노동시장 내에서의 차별을 낳는 요인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차이가 벌어지는 이런 구조는 지속불가능하다. 이런 차이를 끌어안자는 게 포용이다. 활력은 노동시장 내 활동성을 키우는 것이다. 노동시장 내 차이가 있더라도 이동성이 있고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데 활력이 없으면 정체되고 희망이 없어진다. 고용노동 시스템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고, 노동시장이 역동적으로 돌아가야 전체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

정이환 교수 =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 것인지, 노동시장 내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숙제다. 지금 한국 고용시스템은 기업 내부 노동시장 중심으로 돼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 되면 임금도 많이 받고 고용도 보장되고 기업 복지도 누린다. 여기에 속하지 못하면 큰 격차를 감수해야 한다. 특정 기업이 아니라 사회제도를 통해 삶의 안정을 보장받는 ‘사회적 노동시장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30년간 노동연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방향은.

강성태 교수 = 1987년 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 중에서 노동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기구를 꼽으라면 헌법재판소와 한국노동연구원을 들 수 있다. 노동연이 생기면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노동법 연구가 시작됐다. 노동권 향상이나 노동 중심의 고용노동정책과 사회정책 개발에 노동연이 그동안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한다.

배규식 원장 = 노동연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의 산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초기에는 권위주의적 법과 제도를 고쳐 나가고 새롭게 만들어진 노사관계의 틀을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0년대에는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을 도입하고 실업대책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2000년대에는 비정규직 문제와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정규직화, 최저임금 문제 같은 현안뿐 아니라 원·하청 문제,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처럼 기존 노동법 틀에서 벗어나 있는 문제들을 법적 틀로 어떻게 끌어올지 고민하고 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