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추석 선물로 '백남기 우리밀' 강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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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사라고 위에서 강요", 경찰청 "원하는 사람만 사면 돼"




경찰청이 추석을 앞두고 소속 경찰관들에게 '백남기 우리 밀 선물 세트〈사진〉'를 사라고 홍보한 것이 경찰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백남기씨는 2015년 서울 도심에서 열린 불법 집회 당시 경찰 버스에 줄을 묶어 끌어내려다 경찰에 쏜 물대포에 맞아 숨졌다. 일부 경찰은 "폭력 집회를 막다가 벌어진 이 사고로 경찰관들이 유죄(有罪)까지 받았는데 동료 경찰관들에게 백씨를 기리는 선물 세트까지 사라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했다.

경찰청은 이달 초 내부 메신저로 백남기 우리 밀 선물 세트를 공동 구매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경찰청 직원들에게 보냈다. 밀가루·부침가루 등으로 구성된 선물 세트로 개당 2만9000원이다. 백남기씨가 창립에 참여했던 우리밀살리기운동 관련 회사가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를 백씨의 업적을 기리는 '백남기기념사업회' 기금에 보탠다. 지난 2월 처음 설 선물로 백남기 세트를 공동 구매했던 전남경찰청이 추석을 앞두고 경찰청에 동참을 제안했다고 한다. 백씨는 전남 보성에서 밀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경찰청은 "원하는 사람만 구매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청에 근무하는 한 경위는 "한 간부는 직원들에게 1개씩 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했다. 다른 경찰청 직원은 "불행한 사고이지만 당시 폭력 집회에 투입된 경찰들이 거액을 배상하고 직업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백씨를 추모하고 기리는 선물 세트를 사라니 경찰이 된 데 자괴감까지 든다"고 했다.

경찰 내에도 백씨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사건 직후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했던 경찰 지도부가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이 잘못했다'며 여러 차례 사과하자 "경찰차를 끌어내는 시위대에 관용을 베풀라는 것이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시위로 경찰 버스 50여대가 파손되고 경찰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시위를 주도했거나 백씨처럼 과격 행동을 한 참가자 51명이 입건됐다.

1심 재판부가 물대포를 쏠 때 살수차 작동 절차·규정을 지키지 않은 혐의로 한모 경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모 경장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자 경찰들은 이들을 돕자며 자발적으로 1억원을 모았다.

백남기 선물 세트는 20일까지 전남경찰청에서는 900여개, 경찰청에서는 70여개가 팔렸다고 한다.







[이정구 기자 jg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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