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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감독·배우 된 전직 비보이 남연우 "연기 목말라 직접 카메라 들었죠"

김시균 기자
입력 : 
2018-05-23 16:01:01
수정 : 
2018-05-24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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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15]척 봐도 배우인데, "거리에서 알아보는 이가 없다"고 했다. 소속사도 없고, 차도 없어 거의 'BMW'(버스·메트토·워킹)를 애용한다는 그다. "에이, 설마요"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띄우니 그가 억울한 표정이 되어 되받는다. "아, 전혀 못 알아보시는데. 1년에 한두 번 알아보면 대단한 건데요(웃음)."

올해 나이 서른여섯. 이름은 남연우. 영화계에 웬만큼 알려진 이 연기파를, 이제는 감독이기도 한 그를 대중이 거의 못 알아본다라…. 하기야 찬찬히 뜯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주연 출연한 영화 모두 비(非)주류 인디 영화였다. 제1회 들꽃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타낸 '가시꽃'(감독 이돈구·2012)이 그러했고, 이후 주연으로 나온 대다수도 대중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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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연우 / 사진=양유창 기자
짚어 보자.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2016) 말미, 어두컴컴한 터널 속 생존자 성경(정유미)과 수안(김수안)이 힘없이 걸어가던 신이 있다. 저 멀리 터널 반대편에선 안면 가득 위장크림을 바른 군인 둘이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던 차, 사병 하나가 무전기에 대고 말한다.

"터널 맞은편에서 두 명이 접근하고 있다. 아이와 성인 여성으로 추정."

군인의 시선에 아직 그들이 감염자인지 아닌지 구별이 어려운 상황. 자칫하면 좀비로 오인돼 사살될지 모른다. 일촉즉발의 위기. 과연 둘은 무사히 구조될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린 수안의 노래가 터널 바깥으로 구슬피 울려 퍼진다. 캄캄한 터널이 소녀는 무서웠을 것이다. 이제 군인은 외친다. "생존자 접근,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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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에서 남연우는 군인으로 단역 출연했다. / 사진제공=NEW
이 군인이 남연우였다. 단역인 데다 위장크림 범벅인지라 알아보기란 실상 불가능했다. '나의 독재자'(2014) 오디션 배우, '로봇, 소리'(2015) 국정원 요원2, '대호'(2015) 철포회수대 소대장 등 그간 거쳐온 배역 모두 마찬가지. 기껏해야 구름처럼 스쳐 가는 단역이었다. 최근 개봉한 팔씨름 드라마 '챔피언'(2018)에서도 그랬다. 조연이지만 대사 한 줄 없었고, 선글라스까지 써 안면 인식 또한 힘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그는 직접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제작부터, 연출, 연기, 편집 일체를 거의 홀로 감당해냈다.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데 기회가 좀처럼 안 오니까요. 제가 직접 찍으면 연기만큼은 원 없이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사실이었다. 상업 영화계 벽은 이상하리만치 높았다. 50여 개 프로필을 부지런히 돌려도 연락 오는 곳은 두세 군데 정도. 그것도 전부 조·단역 오디션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연기에 대한 갈증은 자연히 깊어만 갔다. 그러다 결국 사비 털어 찍은 첫 단편이 '그 밤의 술맛'(2014). 3년 뒤엔 '진정성'과 '위선'이란 테마를 녹인 첫 장편 '분장'(2017)까지 선보인다. 말하자면 그에게 연출은 곧 연기의 연장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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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연우 / 사진=양유창 기자
최근 충무로 남산한옥마을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용산구 보광동에서 홀로 자취한다는 그는 "지하철타고 왔는데 생각보다 가깝더라"며 조금 더운 듯 갈색 외투를 훌훌 벗어 던졌다.

-뭐랄까요, 배우님은 인디 영화계에 비해 상업 영화계에선 주목을 덜 받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양쪽 간에 단단한 벽이 놓여 있는 느낌이랄까. 사실 연기적으로나 연출력에서나 이미 검증받은 분이심에도 불구하고요. '가시꽃' 주인공이었던 성공이만 봐도 그렇습니다. 고교시절 여고생 장미(양조아)를 집단 성폭행한 가해자 중 하나가 훗날 그녀를 위해 핏빛 복수극을 벌이는 끔찍한 참회록이었죠. 어딘가 모자라는 듯한 성공이의 음울하고도 복잡다단한 표정, 어수룩한 몸짓과 말투, 걸음걸이 일체가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이 영화로 들꽃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일약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르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요. 여전히 프로필 돌리며 조·단역 출연을 하고 계시대요.

▷아, 옛 생각이 나는데요.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시꽃'이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됐잖아요. 그때 내걸려 있던 포스터를 봤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네요. 재미있게도 제가 나온 두 영화 포스터가 나란히 내걸려 있더라고요. 방은진 감독님의 '용의자X'와 이돈구 감독님의 '가시꽃'이었어요. '용의자X'에선 대사 한 줄 없는 이미지 단역 형사였어요. 그런데 '가시꽃'에선 제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잖아요. 상업영화 현장에선 조·단역을 전전하는데, 독립영화 쪽에선 제 얼굴이 내걸린 포스터가 크게 붙는 거죠. 아이러니했어요. '아, 내가 마주한 게 이 벽인가. 이게 참 큰 벽이구나, 다른 게임이네' 싶었어요. 제가 놓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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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첫 장편영화 '가시꽃.' / 사진제공=인디스토리
-그 벽이라는 말씀이 지금 영화계의 해묵은 현실이 아닐까 싶어요. 상업과 비상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긴 해도, 실상 그 경계는 여전히 강고하니까요. 그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떠셨어요.

▷제 인생 처음으로 '관객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가지게 됐어요. 좌석 한쪽에서 청남방에 재킷에 바지를 입고 숨죽여 제 영화를 봤어요. 그러다 끝나고 모더레이터 분이 굉장히 흥분된 목소리로 저를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부국제 주인공입니다, 올해 부국제의 발견!" 이러시면서(웃음). 당황했죠. 저를 영화 상영 전날 인근 술집에서 보셨나봐요. 그래서 더 반가우셨을지도요. 근데 관객분들이 절 보시더니 '어' 하면서 살짝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잠시 일었어요. '가시꽃'에서 성공이가 굉장히 어수룩하고 모자란 학생으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왁스 바르고 제 나름 스타일리시하게 하고 무대에 섰으니까.

-그러고 보면, 그런 뒤에도 계속 상업영화에선 이렇다 할 큰 배역은 없으셨어요. 영화제에서 주목받는다고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구나, 라는 걸 새삼 실감하겠더군요.

▷무명배우가 프로필을 50군데 돌리면 두세 군데에서 오디션 기회가 올까 말까 예요. 그 오디션조차도 조연이나 단역 오디션이죠. 그것도 저는 감사해 최대한 열심히 준비하고 찍죠. 하지만 그래도 배우잖아요. 맡는 배역이 배역이다 보니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랄까요, 갈증 같은 게 자꾸만 커져요. 적어도 독립영화 쪽에선 그 갈증을 해소할 통로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제가 극을 주도하고 이끌고 갈 수 있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많이 하게 됐고요.

'가시꽃'은 남연우의 첫 장편이다. 제작비는 300만원가량. 실상 노개런티 출연이었다. 하지만 돈보다 연기가 간절했던 그에게 출연료는 구애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돈구 감독은 고교 시절 비보잉으로 알게 된 19년 지기. 동생이 공들여 쓴 시나리오를 읽고 한바탕 전율이 일었다. "스토리라인도 좋고 저랑 정반대인 인물인지라 굉장히 호기심이 생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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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첫 장편영화 '가시꽃.' / 사진제공=인디스토리
 이 감독 페르소나이기도 한 성공이는 평소 그의 모습과 판이했다. "내 경험 녹이는 것보다 새 모습 연기하는 게 즐겁다"는 그로선 또 하나의 '도전'. 그렇게 출연에 응했고, 9월에 5일, 11월에 5일씩 10회차를 찍어 나간다. "'가시꽃'은 내게 가장 각별한 작품이자 가장 난감했던 영화"라고 그는 회고했다.

 "아무래도 첫 영화이니까요. 그리고 성공이가 상당히 소극적이고 음울하거든요. 말투나 눈빛, 걸음걸이 모두가요. 저랑 다르죠. 그래서 일상에서 그런 친구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정말 치밀하게 분석했어요.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연습하는 거죠. 어색하지 않으려면 기존의 저 자신을 빼고 성공이가 되어야 하니까요."

-근데, 연기 이전에 비보잉을 했다고 하셨는데.

▷원래 꿈이 비보이였어요. 고교 때까지 밥 먹는 시간 빼면 춤만 췄어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고교 3학년 때까지 하루 8시간씩이요. 만약 그 시절 그렇게 영화를 했다면 지금보다 성공해 있으려나(웃음). 그래도 끈기 하나는 그때 제대로 배웠어요. 제 몸을 컨트롤하는 법부터 무언가 성취해 내는 짜릿함 또한 일찍 맛봤죠.

-비보이로는 거의 1세대인 거죠.

▷1.5세대 정도 되죠. 누군가로부터 전수받을 환경이 아니었으니 자발적으로 팀을 꾸리고 친구들과 연습했어요. 이 팀 저 팀 오가며 대회도 많이 출전했고요. '익스프레션'이라는 유명 크루에도 잠시 있었어요. 제가 파워무브 전문인데, 헤드스핀은 꽤 잘했어요.

-국내 비보잉 선수 출신 배우로는 아마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보잉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어릴 때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춤 추고 연기하면서 달라진 거죠. 당시 모험심은 좀 있었나봐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늘 늦게 들어오셨어요.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으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같은 노래가 꼭 나오더군요. 그걸 반복해서 보고 듣다가 따라하게 됐어요. 그러다 학교에서 팀을 꾸렸고 학예회까지 나갔죠. 책상 모아놓고 무대 만들어서요. 제 기억으로는 그게 세상 바깥으로 나온 첫 순간이에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을 췄군요.

▷비보이로 꿈을 정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예요. 우연히 비디오를 보는데, 브레이크댄스를 추더라고요. '오사카 댄스 페스티벌' 영상이었을 걸요. 그때 본 것에 자극받고 친구들과 비보이 팀을 바로 꾸렸죠.

-부모님은 뭐라 하시던가요?

▷걱정 많이 하셨겠죠. 근데 한 번도 춤추지 말라고, 공부하라고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어릴 때 직접 키워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이 많으세요. 그래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도록 풀어놓아주신 거죠. 진짜 비보잉에 완전히 빠져 지냈어요. 대학 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어요. '오로지 비보이, 한국 최고의 비보이가 되자, 내 나이대 최고의 비보이가 되자'며 미친 놈처럼 춤만 췄어요.

-영화랑은 동떨어진 세계였네요.

▷10대까진 영화 보러 갈 돈이 없었어요. 그게 돈 낭비라 생각될 정도로요. 그만큼 가난했어요. 어릴 때 친구 따라 '토이스토리' 보러 한 번 간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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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연우 / 사진=양유창 기자
그랬다. 그를 키운 건 팔할이 가난이었다. 출생 전 양친이 운영하던 옷가게는 부도가 났고, 빚 문제를 청산하려면 어떻게든 돈부터 벌어야 했다. 그러던 차, 둘째인 그가 태어났다. 당시 양친은 조그마한 꽃집을 가까스로 차린 후였다. 환경은 지독히도 열악했다. 주차장과 건물 사이 차가 두 대 정도 들어설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곳에 엉성한 비닐하우스를 세웠고, 판떼기를 깔아 온 가족이 숙식을 해결했다.

어머니로선 산후조리할 시간도 없는 여건이었다. 둘째를 등에 엎고 달동네 언덕길을 매일 같이 오르며 꽃배달을 하러 나갔다. "어머니가 언젠가 그러시더라고요. 갓난아기인데 온종일 햇살 세례를 받아 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그는 이모집에 보내진다. 이제 막 100일이 지난 시점. 형 하나 키우기도 벅찼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모 밑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컸다"며 "내겐 이모가 제2의 부모"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원망 같은 건 없었다. 도리어 그는 어머니에게 죄스러워했다. 그 어린 꼬꼬마 시절 당신께 무심코 뱉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때는 이제 막 말문이 트였을 무렵. 수원에서 형 손을 잡고 걸어오는 어머니와 오래간만에 재회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모 손에 길러진 그는 눈앞의 어머니가 영 어색했다. 결국 이모 품에 파고들어 이같이 말한다. "저 아줌마 누구야."

일순간 사위로 쓸쓸한 침묵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럼, 초등학교 입학 때부턴 한결 나아지셨나요.

▷그 시점부터 경제난에서 조금은 벗어났어요. 하지만 여전히 가난했죠.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월세로 전전했고요. 하도 자주 다닌지라 이사짐을 안 풀고 산 적도 많아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부모님이 얼마나 근심 걱정이 많으셨을까 싶어요. 혹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보셨나요. 거기 나오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그러다 춤을 만났고, 그토록 몰두하신 거군요. 연기와의 접점은 전혀 없는 길 같은데.

▷고2 때였나. 담임이 "어디 갈래" 물으시더라고요. 인문계였는데 고3 때 예대와 체대 준비반이 한 반씩 있었어요. "어디 가야 할까요?" 되물었죠. 그러니 "넌 기초체력이 좋으니 체대 가라" 하시길래 "예" 했어요.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턱걸이하고 멀리뛰기하고 그러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싶더라고요. 그러다 독립영화를 난생 처음 접해요. 비보이 출연작을 찍는다는 공보를 우연찮게 봤고, 오디션에 지원한 거죠. 오디션장이 진풍경이었어요. 와, 구석구석에서 부모님이랑 와서 전부 연기 연습하고 있고.

-준비는 해 갔나요?

▷아뇨, 제가 비보이니까 그냥 몸만 가면 되겠지 한 거죠. 신기했어요. 저기선 춤 연습하고 저기선 연기하고 있고. 그래서 저도 몸 좀 풀자 싶어서 비보잉을 하는데, 전부 자리에 멈춰서 저만 보더라고요. 그러다 제 차례가 와서 오디션장에 들어갔어요. 연기해 보라길래 "준비 안 했는데요"라고 했죠. 그러니 다들 '이놈 뭐야' 하는 표정이더라고요. 그러다 춤을 선보이니 다행히 끄덕끄덕하셨어요. 그렇게 캐스팅됐죠.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영화라는 작업이 누구는 조명, 누구는 촬영, 누구는 오디오, 누구는 분장, 누구는 의상, 누구는 미술, 저마다 파트가 있더라고요. 가족처럼 팀을 이뤄 움직이는 게 특히 인상 깊었어요.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제 모습은 좀 흉칙했지만 많은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 그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아, 나 영화하고 싶다' '배우 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때 처음 생겼죠.

-그거였군요, 가족 같은 분위기에 귀속될 수 있다는 것.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많이 외로우셨나봐요.

▷그래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배경이 구성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영화가 구성원을 만드는 거 잖아요. 그렇게 가족처럼 맺어지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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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연우 / 사진=양유창 기자
-고교 끝무렵까지 비보잉만 했으니 준비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요.

▷(연극영화과에) 지원하는 족족 다 떨어졌어요. 한 번은 전문대에서 상황 연기를 하는데, 제시 조건이 이런 거였어요. 샤워를 하러 목욕실에 들어간다. 물 온도 맞추고 샴푸를 짠다. 물을 트는데 차가운 물이 나온다. 다시 온도 조절한다. 이번엔 뜨거운 물이다. 이런 걸 15~20분 준비하고 들어가는 거였어요. 근데 정말 막상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앞에서 다 지켜보는데 고개 푹 숙이고 있다가 '앗 차가, 아 뜨거' 이러니 "나가!"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입대를 택한다. 지원한 곳마다 줄줄이 낙방하면서 박탈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준비된 게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던 차, "그럴 거면 군대나 가라"는 '아는 형님' 충고에 육군 보병에 지원한 거였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해였다. 배치는 32사단 육군 보병, 보직은 운전병. 1982년생 스무 살이므로 부대에서 그가 가장 어렸다.

 오로지 배우가 되겠다는 열망뿐이었다. 군부대의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더뎠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기 독학에 들어간다. 관찰 수첩을 만들어 끊임없이 주변을 기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눈앞에 개미가 지나가요. 그럼 개미가 어떻게 걷고 자기보다 큼지막한 걸 어떻게 들고 다니는지 일일이 메모해요. 부대에 온갖 사람이 다 있잖아요. 관찰할 게 참 많죠. 이런 사람은 이렇고 저런 사람은 저렇고. 그 모든 관찰이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그러다 전역 후 바로 한예종에 들어간 건가요?

▷아니요, 제대 직후 연극, 단편영화 가림 없이 마구 지원했어요. 'OTR'(Our Theatre Review)라는 공연 관련 사이트가 있어요. 거길 기웃거렸죠. 공연계 쪽으로는 비보이한 게 있어 몸을 쓸 줄 아니까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몇 편의 공연에 올랐고, '뫼비우스의 띠: 마음의 속도'(2004)라는 단편에 출연해요. 제1회 환경영화제 개막작이었죠. 양아치 4인방으로 나왔는데, 그때 동갑내기 구교환 배우('꿈의 제인' 주인공으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연우와 함께 일약 주목받았다)랑 함께했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메모리즈'(2007)라는 단편에도 나왔는데, 이번에 '챔피언' 찍은 김용완 감독님 작품이에요. 그러다 24살에 한예종 시험보고 25살에 입학한 거죠.

-군대 때부터 노력한 게 빛을 본 거군요. 한예종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영화 수업을 제대로 받았겠네요.

▷두 분의 은사님이 계세요. 한 분은 최용진 한예종 연극원 교수님이신데, 연기론을 전수받았어요. 최 교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란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거였어요. 인간을 구성하는 원리랄까요, 연기 훈련이란 것이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해야 한다는 거죠. 중요한 건 '논리'였어요. 이전에 제가 연기를 할 때 감정부터 계속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감정 전에 특정 인물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 이해하기 위한 밑바탕으로서 논리, 맥락으로서 논리를 고민하게 되었거든요.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가시꽃'에서의 성공도 그런 훈련을 기반으로 인물을 구축했어요.

-자기 감정만 앞세운 연기가 아니라 감정을 있게 한 논리부터 세워 놓고 가야 그 인물 연기가 수월하다는 거네요. 다른 은사님에게선 무엇을 배웠나요.

▷강혜연 교수(영화감독)님으로부터 '카메라 연기' 수업을 들었어요. 굉장한 수업이었어요. 영화 찍는 감독으로서 필요한 게 첫째가 '연기 연출'이고 둘째가 '콘티'라는 걸 그때 이해했죠. 똑같은 배우가 똑같은 시나리오에 기반해 연기해도 카메라 위치에 따라, 컷이 어디서 들어가느냐에 따라, 어디서 무빙하고 픽스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지더라고요. 카메라 배치에 따라 영화가 판이해지는 거죠. 이를 위해 정확한 콘티를 짜야 했고요. 이 신은 어떻고 저 신은 어떤지, 무빙을 어떻게 들어가게 하고, 컷은 어떻게 나눠야 할 지 등등이요.

그렇게 배우와 감독으로서 지반을 탄탄히 다진다. 남들보다 느지막이 시작한 만큼 누구보다 독하게 임했다. 피 끓던 10대 시절 한국 최고 비보이라는 꿈을 향해 전력하던 그때처럼, 다시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러나 생계는 해결해야 했기에, 졸업 후 틈틈이 백화점, 복사기 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 일도 겸한 그다. 그러다 '가시꽃'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연기 학원과 대학가 등지로 강의 일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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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우의 첫 단편 연출작 '그 밤의 술맛'(2014). 이 영화로 미장센단편영화제에 진출했다. / 사진제공=이야기秀CUT
-2014년 첫 연출작 '그 밤의 술맛'을 선보이셨죠. 이 단편은 배우 너머 감독으로서 가능성까지 보여준 작품이었어요. 현지(김예은)라는 여자가 있고, 그녀와 결혼을 앞둔 형서(허정도)라는 남자가 있죠. 그리고 그들 사이 설원(남연우)이라는 남자가 있고요. 설원은 현지의 오래된 옛 사랑인데, 옛 사랑을 막 대하는 형서를 보고 분개하죠. 결국 화장실에서 만난 형서에게 주먹을 날리고요. 이 영화로 미장센 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도 초청받으셨어요.

▷일종의 초단편 영화였죠. 그냥, 멋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제 딴엔 애초 영웅담이라 생각했는데 주변에선 정작 제가 연기한 설원이 가장 지질이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맞네, 내 생각이 짧았네' 싶었어요. 연애도 제대로 안 해본 상태이고 미련을 못 버려 지질함의 끝을 보이다 결국 망가지거든요.

-2년 후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장편 연출작 '분장'을 선보였어요. 이로써 본격적으로 감독 데뷔를 하죠. '꿈의 제인' 주인공 구교환 배우와 더불어 배우님의 해나 다름 없었어요. 어떻게 연출하게 된 영화인가요.

▷'그 밤의 술맛'을 인상 깊게 보신 한 PD님이 "다음 이야기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자기가 제작해도 되겠냐길래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다 했죠.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도 투자가 안 들어와요. 그때 느꼈어요. 영화 한 편 찍기 쉽지 않구나. 그러다 한 달이 더 지나 결국 제가 찍기로 했어요. 생전 처음 어머니 손을 빌려 1700만원을 모았고, 제작부터 전 과정을 전임했어요. 사실 배우들이 거의 노개런티로 도와준 거죠. 함께해준 분들 모두 저처럼 연기에 목말라 계셨거든요.

-성소수자를 연기하는 연극배우를 직접 연기하셨어요. 작품 전반에 배우님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더라고요. 진정성 있는 연기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핵심이었는데, 소규모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어울리며 그들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여긴 송준(남연우)이 정작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위선적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요. 그러면서 방황하고 고뇌하는데 무대 위에서 연기는 외려 더 빛이 나죠. 그런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녹여내는 솜씨가 제법이었어요.

▷좋게 얘기해주시는 분이 많았는데, 정작 저는 송준이처럼 힘들었어요. 제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컸거든요. 시나리오 쓸 땐 송준이란 인물에게 더 많은 걸 채워넣고 싶었거든요. 근데 물리적 여건이 따라와주질 못했어요. 제가 제작도 해야 하지, 연출도 해야 하지, 의상도 골라야지,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멘붕'이 오는 거예요. 저의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은데 평소 말투와 행동이 좀 나와버렸죠.

-자신의 본래 모습이 연기로 표출될 때, 그 자연스러움이 때때로 강점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그럴 땐 희열을 잘 못 느끼거든요. 가급적 새로운 모습이 나올 때 가장 만족스러워요. 미리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준비해 간 인물을 준비한 대로 소화해냈을 때 가장 기쁘죠. 예를 들면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그렇지 않나요. 맡는 배역마다 말투 행동 몸가짐이 모두 다채롭잖아요.

-가만 보면 그간 출연했고 직접 찍은 영화 속 배역들이 사회의 어두운 그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어요. 무언가 내외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이들이랄까요. 좋아한다고 밝힌 작품도 그런 점에서 공통 분모가 보여요. 이를 테면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2011)을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셨고,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2008), 린 렘지의 '케빈에 대하여'(2011) 같은 작품들도 선호하시고. 하나같이 인물에 초밀착하는 작품들이네요.

▷아마도 그런 게 제가 잘 아는 얘기여서겠죠. 부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쓰기 무리에요. 혹 '지아이 유격대'라는 장난감 아세요? 팔 다리, 목이 막 돌아가는 장난감인데, 어릴 때 그걸 갖고 혼자 집에서 이야기하며 놀았어요. 그게 지금의 저를 이루게 해준 씨앗이 아닐까 해요. 거기에 최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인물의 논리를 찾아가는 훈련,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한 마디로 요약하는 훈련 같은 것을 계속 했던 거죠. 이를 테면 '분장'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 익숙해진 남자의 최후, 이런 식으로. 외화 얘길 하셨는데, 제가 다르덴 형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예요. 각각의 인물들이 저만의 굉장히 논리적인 흐름으로 말하고 행동하거든요. '자전거 탄 소년'은 스무 번 더 봤어요. 어떠한 흐름 안에서 사건과 말과 행동에 대해 인물들이 평가를 하고 넘어가요. 거기에 수반되는 논리가 기가 막히죠. 최근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보이A'(2007)가 그렇게 다가왔고요.

사진설명
남연우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한 첫 장편 연출작 '분장'.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이었다. / 사진제공=무브먼트
그는 현재 새 영화 연출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분장'에 이은 두 번째 장편으로, 가제는 '내 나이 열네 살'. 시놉시스에 따르면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쓴 어느 섬 마을 소년이 15년 수감 뒤 출소해 도시의 홈리스로 거리를 정처없이 떠도는 이야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지원작으로 선정돼 이르면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간다. 물론 이번에도 남연우 본인이 직접 나온다.

그는 스스로를 '현재진행형인 배우'라고 했다. 아직 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뜻일 테다. 그도 그럴 것이, 독립영화가 아니고서야 큰 영화 주연 한 번 못 해본 그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욱 "무모해지겠다"고 했다. "'분장' 이후 변화는 조금 있었죠. 하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건 아니었어요. 대중이 아직 저를 잘 모르시니까. 그렇다고 불안하진 않아요. 설사 죽기야 하겠어요. 돈 떨어지면 단역이라도 나가면 되지.(웃음)"

아마도 머지않은 일이지 싶다. 영화제 위주로 알려져온 그가 더 많은 대중에게 각인받는 날이 오는 것은. 그는 아직 현재진행형, 그러니까 가능태로서의 배우, 그리고 감독이지 않은가. 조금 더 무모해져도 좋다는 소리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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