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앨범 '스물셋' 앨범 커버

아이유 앨범 '스물셋' 앨범 커버 ⓒ 아이유(iu)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이런 장면을 상상해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원제: ノルウェイの森, 한국 판 제목: 상실의 시대)이 나왔을 때, 비틀스의 앨범을 유통하는 EMI에서 갑자기 성명을 발표한다면 어땠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님, 비틀스의 곡 '노르웨이안 우드'(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사의 화자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성편력이 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생각만 해도 웃긴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틀스의 곡 '노르웨이안 우드'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것은 맞다. 하지만 하루키는 비틀스의 곡을 해석해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그 곡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만 차용했을 뿐이다. 제목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창작물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원뜻을 무시하고 '노르웨이 숲'으로 번역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제'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단순 해석한 노래가 아니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4번째 미니앨범 < CHAT-SHIRE(챗셔) >의 쇼케이스를 연 가수 아이유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4번째 미니앨범 < CHAT-SHIRE(챗셔) >의 쇼케이스를 연 가수 아이유 ⓒ 로엔트리


그러나 아이유의 '제제'에 대해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번역해서 출판한 '도서출판 동녘'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상처받고 있을 수많은 제제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구요. 그런 작가의 의도가 있는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다니요. (중략) 이를 두고 제제를 잔인하고 교활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 생각이 듭니다."

도서출판 동녘은 물론 아이유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유의 '제제'는 이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의 제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 속의 제제가 아니라, 아이유의 상상 속에서 재창조된 '또 다른 제제'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창작 행위는 단순한 해석이나 평가와는 전혀 다른 맥락을 띤다. 아이유의 가사 속 제제는 더는 우리가 알던 제제가 아니다. 아이유가 만든 '제제'는 아이유의 말처럼 "순수하면서 잔인한, 모순점을 많이 가져서 매력 있고 섹시한" 아이다. 아동학대를 당해서 아픔이 많다는 사실은 사라진 채로 만들어졌다. 물론 제제의 나이는 소설에서처럼 5살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밍기뉴는 목소리가 없는 '나무'다. 나무에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것, 나무를 유혹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유의 '제제'는 <나의 오렌지 나무>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는 걸 증명한다. 도서출판 동녘이 무슨 권한으로 아이유가 재창조한 제제에 대해 참견을 하는가? 

음악적 실패, 그리고 도덕적 단죄

 아이유 앨범 표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아이유의 미니앨범 앨범 <챗셔(chat-shire)> 표지. 이 표지에 아이유 측은 '제제'라는 캐릭터에 성적인 코드를 만들어 넣었다(붉은색 원 안). ⓒ 로엔 엔터테인먼트


 아이유 앨범 표지 속 제제의 모습

위 앨범 표지 속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제제 캐릭터를 확대한 모습.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에서는 5살 소년인 제제가 이 앨범 표지에서는 좀더 자라 망사 스타킹을 입고 있다. ⓒ 로엔 엔터테인먼트

물론 아이유의 '제제'가 좋은 가사는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제목이 '제제'라는 데에서 오는 한계가 크다. 이미 대중들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나온 제제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와 상반됐지만 이름만 동일한 캐릭터가 제목이나 가사에서 등장할 경우 당황하거나 반발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목이 청자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셈이다.

나아가 대중이 아이유의 텍스트 해석과 그에 따른 재창작의 과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제제라는 캐릭터를 '순수하면서도 잔인한 것'으로 도식화시켰다는 것, 나아가 굳이 제제라는 캐릭터에 성적인 코드를 만들어 앨범 표지에 넣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거나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유가 '제제'라는 곡으로 대중에게 호응과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음악적 실패일 뿐이다. 도덕적으로 추궁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론의 흐름은 아이유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명저를 모독했으며, 아동학대 피해자인 어린 제제를 성적 대상화시켰다고 분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제제가 실재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며, 그 캐릭터가 다른 형식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창작자의 상상력을 억압하면, 대중문화는 빈곤해진다

마녀사냥에 언론도 동참하며 논란을 과도하게 부추기고 있다. "5살 제제가 섹시한가"식의 선정적 제목이 난무한다. 어뷰징 기사들은 실시간으로 아이유 비난 여론을 전달하는가 하면, 심지어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아이유는 왜 묵묵부답일까'라는 제목의 글이 걸려있다.

그럼 아이유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인 제제를 모욕해서 죄송합니다"는 말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처럼 아이유를 도덕적으로 단죄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이해하기 힘들다.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을 재가공한 것임에도 "표현의 자유도 대중들의 공인하에 이뤄지는 것입니다"(도서출판 동녘)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예술에 대한 한국의 '도덕적 엄숙주의'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중이 쏟아내는 비난이 두려워 창작자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억압하게 된다면, 대중문화는 자연스럽게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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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제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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