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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석고대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죄를 청합니다.
 어린이날 석고대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죄를 청합니다.
ⓒ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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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수십만의 인파가 몰린다는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 나는 하얀 개량한복을 입고 거적 위에 올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석고대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경까지 약 7시간 반 동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석고대죄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무릎을 꿇고 있는 나의 모습은 큰 죄를 지은 죄인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충분했기에, 사람들은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가 저지른 죄목들을 읽기 시작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저지른 죄들 (1)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저지른 죄들 (1)
ⓒ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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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저지른 죄들 (2)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저지른 죄들 (2)
ⓒ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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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침에 자리를 깔고 석고대죄를 하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예상한 대로 어린이대공원 직원들 몇이 다가왔다.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이래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기 집회신고 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1인 시위는 집회신고 안 해도 됩니다."

약간의 작은 실랑이가 오고가다 내가 말했다.

"제가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면 경찰 불러서 끌어내세요."

직원들이 그렇게 가고 난 후 잠시 후, 정말 경찰 한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경찰관은 죄목들을 읽고 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치기 시작하셨다.

"저 아저씨가 죄인이 아니라, 이건 어른들하고 정치가들 보라고 해 놓은 거예요. 그냥 지나가지 말고 좋은 내용이니까 읽고 가요. 우리 대원들도 한 번 이리 와서 읽어봐."

그 경찰관은 석고대죄를 제지하기는커녕 고맙게도 꽤 한참을 사람들에게 홍보(?)했다.

석고대죄, 안 해 봤으면 말을 말어

이렇게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다소 엉뚱한 이유에서였다. 나는 지난달에 일제고사 반대 1인 시위를 수차례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석고대죄와 같이 차라리 앉아서 하면 다리가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으로 판명되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은 서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고 다리 아픈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사실 원래 계획은 10시간 동안 하는 것이었으나, 중간에 너무 힘이 들어 7시간 반만에 중단한 것이다.

사극에서 보던 석고대죄는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직접 해 보니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혹시라도 석고대죄를 하려는 분이 계신다면, 꼭 무릎 보호대와 장갑 착용을 권하고 싶다.

장시간의 석고대죄를 하려고 할 때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중간에 화장실은 어떻게 가고 밥은 어떻게 먹느냐이다. 그리고 나는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 하는 것이기에 더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한 친구가 중간에 도시락을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친구, 나는 중간에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위치가 정확히 어디야?"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이야. 찾기 쉬운데."
"무슨 대공원?"
"어린이대공원. 너 혹시 설마!"
"여기 서울대공원이야. ㅠ.ㅠ"

그 친구는 그래도 한참 후에 와 주었고 나는 맛있게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다.

교육문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시민들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시민들
ⓒ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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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꿇어앉아 있는 동안, 많은 분이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또한, 여러 사람에게 진지하게 교육 문제를 생각할 시간이 된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다양한 반응들도 접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저 아저씨는 왜 저러고 있어?"라는 질문에 "저 아저씨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라며 설명해 주는 어머니도 있었고, 애들이 저런 거 보고 공부 열심히 안 할까봐 걱정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그리고 어떤 분은 나에게 이제 되었으니 그만하고 일어나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석고대죄의 의미대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것을 참회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거창한 생각보다 나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교육문제에 관해 이러니저러니 하며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다. 또 이게 바뀌어야 하네 저게 잘못이네 등등 수많은 생각과 주장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른 누군가가 잘못했고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거창한 목표에 좌절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책임을 느끼고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만약 한 사람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나라 인구 5천만 가운데 한 사람이 변화된 것이니, 우리 사는 세상의 5천만 분의 1 정도는 바뀐 것이 아니겠는가.

한 어른은 내가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을 다소 비아냥거리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저런 게 죄면, 어른들이 다 저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말도 안돼..."

그리고 한참 후 몇몇 청소년들이 다가왔는데 그 중 한 명이 마치 그 어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우리나라 어른들은 다 이러고 있어야 해. 한 1년은 다 이러고 있어야 해."


태그:#석고대죄, #어린이대공원,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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