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서해성의 박학다설] 쌀 이야기

지혜롬

tbs3@naver.com

2018-09-2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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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9. 28.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서해성의 박학다설] 쌀 이야기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죠.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네. 안녕하셨습니까? 추석 잘,

    ▶ 김종배 : 잘 보내셨죠?

    ▷ 서해성 : 제가 물어볼 말을,

    ▶ 김종배 : 그러게요. 제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 서해성 : 진행자의 말을 제가 뺏었군요. 잘못했습니다.

    ▶ 김종배 : 네. 정두언 의원님도 가끔 자기가 질문하고 막 이래요.

    ▷ 서해성 : 그렇군요.

    ▶ 김종배 : 요즘 진행자의 위치가 위태롭습니다. 오늘은 제가 주제를 제가 그러면 거꾸로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사실은 송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떡 얘기까지 갔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리고 사실은 서해성 작가께서 거기가 끝이 아니라 송편에서 시작해서 떡으로 일반화했고, 떡에서 시작을 해서 이제 쌀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제가 끊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지고 깜짝 놀라셨는데, 너무나 아쉬워하셔가지고 오늘 그 2탄을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야기는 쌀 이야기,

    ▷ 서해성 : 네. 쌀 이야기, 쌀과 폭탄.

    ▶ 김종배 : 네? 폭탄이요?

    ▷ 서해성 : 네. 왜냐하면 쌀이 이렇게 크게 발전하게 된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질소비료지 않습니까? 그런데 질소비료가 사실은 지금 흔히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폭탄을 자신들이 부를 때 질소폭탄이라고 부릅니다. 비료를 가지고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얘기들도 같이 농업을 둘러싼, 농업산업 혹은 농업과 어떤 관련된 산업들의 비인간성, 이런 것도 같이 얘기해보도록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저는 쌀과 폭탄이라고 해서 뻥튀기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어요.

    ▷ 서해성 : 그렇군요. 네, 뻥튀기도 있네요.

    ▶ 김종배 : 네. 어릴 때 진짜 맛있었는데, 쌀은 언제부터 사람이 먹었다고 혹시 기록에 남아있는 게,

    ▷ 서해성 : 네. 있습니다.

    ▶ 김종배 : 언제에요?

    ▷ 서해성 :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체로 정립되고 있는 설이 있는데, 대략 한 8, 9천 년 전, 그러니까 BC 한 4천, 5천, 이런 때겠다는 얘기죠.

    ▶ 김종배 : 그러겠네요.

    ▷ 서해성 : 중국 장강 유역에서 재배를 시작해서,

    ▶ 김종배 : 양쯔강.

    ▷ 서해성 : 네. 그리고는 인도나 인도차이나로 전래되었다, 이런 설이 있는데, 인도 원산, 그렇지 않고, 인도하고 두 개가 다 기원이다, 이를테면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 김종배 : 원산지가 또 인도라는 설도 있어요, 그러면?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이걸 이제 흔히 인류학에서 말할 때 단일기원설과 다중기원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데 근래에 와서 많이 좁혀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그런 논쟁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먼저 소개를 하고요. 그리고 이제 벼가 이제 벼과라고 그렇게 얘기했죠. 그냥 벼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알고 있는 벼과 식물의 대표적인 것들이 억새, 이런 것들이 다 벼과에 속하는 식물들이거든요.

    ▶ 김종배 : 억새도 벼과에 속해요?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락이 열리는 그런 벼만 생각하지 마시고, 원시적인 벼를 같이 생각해보시면서 방송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벼 종자도 우리가 먹는 쌀의 종자하고 동남아의 쌀의 종자하고 완전히 다르잖아요, 사실.

    ▷ 서해성 : 네. 다릅니다. 흔히 이제 우리가 먹는 걸 자포니카, 일본쌀이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 김종배 : 여기서 자포니카가, 그 자포가 재팬 할 때 그거에요?

    ▷ 서해성 : 네. 일본인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그리고 인도지역에서 주로 먹었다고 해서 그걸 인디카, 흔히 이렇게 말하죠. 그러니까 자포니카 쌀은 흔히 끈기가 좀 있고, 그리고 약간 둥글고,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인디카는 이제 날렵하고, 풀기가 좀 없는, 한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 김종배 : 그래서 동남아 같은 경우 쌀을 먹을 때 이제 손으로 꾹 눌러서 먹는다고 하는데, 그게 다른 게 아니라 종자의 차이 때문에, 그러니까 끈기가 없어가지고, 그러니까 젓가락으론 도저히 먹기 힘들고,

    ▷ 서해성 : 젓가락으로 집을 수가 없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제 손으로 먹는 거다, 제가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본 것 같아가지고,

    ▷ 서해성 : 네. 그런데 이제 또 하나는 그런 것들, 문화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먹게 되었는지, 그것 때문에 문화의 차이가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걸로 문화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따가 조금 소개를 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벼과 식물이라는 게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게 1억 4천만 전이라고 합니다.

    ▶ 김종배 : 오래됐네.

    ▷ 서해성 : 저나 김종배 선생님이 벼 전문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전부 다 자료를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혹여라도 제가 농업학자라든지 그런 건 전혀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 IRRI라고 부릅니다. 이따가도 얘기가 나오겠습니다마는 거기 있는 한 연구자가 이 벼라고 하는 게 구대륙, 여기서 구대륙이라는 것은 신대륙과 구대륙 구분하는 게 아니라 이 지구가 현재의 오대양 육대주로 생기기 이전의 대륙,

    ▶ 김종배 : 쪼개지기 전에?

    ▷ 서해성 : 네, 쪼개지기 전에. 곤도아나 대륙에 이게 벼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저도 거의 처음 들어보는 얘기인데, 그러니까 이 곤도아나 대륙은 쪼개져가지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리아, 남극, 마다가스카르 등으로 쪼개졌다고 합니다.

    ▶ 김종배 : 네. 네, 맞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이게 흔히 말하는 판게아 이론이라는 거기서 나오는 건데, 그때부터 이렇게 있었는데, 그때는 숲에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수경이 아니고, 숲에 있었는데, 나중에 온난다습한 그런 몬순기후가 지구상에 생기면서 거기에 적응한 식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가만 있어봐, 한반도에서도 아주 오래된 볍씨가 발견되지 않았어요?

    ▷ 서해성 : 많이, 자주 발견됐습니다. 세계적으로 자주 발견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건 이제 우리가 주로 주장하는 편이고요. 세계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그런데 분명한 건 한반도에서 오래 전부터 이제 벼를 재배해왔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산 호수공원이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거기 가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발견지라고 하는 이렇게 푯말도 있고 그렇습니다, 거기에.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네. 그 지역 일대에서 여러 군데를 이제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지표조사를 했는데, 거기서 볍씨가 발견된 겁니다. 그런데 했는데, 그 주장에 따른다면 거기에선 두 개가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자포니카하고, 이제 그걸 단잎형이라고 합니다. 짧다, 이거죠. 그리고 이제 장잎형 인디카가 다 나왔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것대로 인정한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벼를 먹기 시작한 게 신석기시대로 소급해야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게 틀렸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후속 연구가 좀 더 있어야 되는 그런 상황이고요. 그렇게 되면 중국보다 더 우리가 먼저 하게 되는 그런 일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쉽지 않은 일이고, 논박이 불가피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주장이 1998년하고 2001년에 청주 흥덕 옥산에서 소로리라는 곳이 있는데, 소로리볍씨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고대형 볍씨는 자포니카, 우리 흔히 말하는 일반벼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포니카 계통의 재배벼, 그러니까 원시배가 아니고 재배벼, 야생벼가 아닌,

    ▶ 김종배 : 야생벼가 아니라,

    ▷ 서해성 : 네. 재배벼의 씨앗이 발견됐는데, 대략 이제 이게 1억 한 5천만 년 전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이렇게,

    ▶ 김종배 : 네?

    ▷ 서해성 : 연구자들에 의하면, 제 주장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왔는데, 그럼 이게 문제는 구석기시대로 소급된다는 겁니다.

    ▶ 김종배 : 1억이 아니라 만 3천년 전?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제가 1억 3천이라고 했습니까?

    ▶ 김종배 : 네. 깜짝 놀라갖고,

    ▷ 서해성 : 네. 만 3천에서 만 5천 년 전,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되는 게 그럼 이게 구석기시대로 소급되는 겁니다. 흔히 이제 우리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 농경을 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

    ▶ 김종배 : 맞아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웠어요.

    ▷ 서해성 : 이게 세계 일반이론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 있는데, 그게 아니라기보다는 좀 더 치열하고, 과학적이고, 또 다른 사람들 설득할 수 있는 그런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으면, 또 필요하면 국제연구 같은 것도 같이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벼가 언제 처음 생겼냐 하는 문제는 이렇게 논쟁이 분분합니다. 세계 학계의 통설은 장강 일대, 중국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이게 다양한 형태로 전파되었다. 한국에도 유입된 경로를 세 경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서해바다로 곧장 건너왔다, 일설에는, 장강에서. 두 번째는 산둥반도를 통해 왔다. 그렇지 않고, 먼 대륙, 위로 돌아서 대륙을 통해서 왔다. 흔히 말하는 중국에서의 문명 전래를 얘기할 때 일반코스죠, 이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랬다는 설들이 같이 겹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세계 기원이라고 하는 중국에서조차도 논박이 다양합니다. 그러니까,

    ▶ 김종배 : 너무 오래된 얘기여 갖고, 그런데 아무튼 이 소로리볍씨라고 하는 게 야생벼가 아니라 재배벼 맞아요?

    ▷ 서해성 : 저는 그렇게, 자료에는 그렇게 나와 있는데,

    ▶ 김종배 : 그럼 재배한 게 오래된 역사라는 거잖아요, 이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적 공인을 받으려면 후속 연구가 더 튼튼하게 진행되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현재까지 우리 학자들은 그렇게 주장, 일부 학자들은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략 이제 우리가 세계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재배종은 대략 8천 년 전쯤에 나온 것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 서해성 : 네. 8천, 9천 년 전쯤에 나온 것으로 이렇게 보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흔히 아시아종하고 아프리카종이 있었는데, 아프리카종은 대개 이제 퍼지질 못했고, 아시아종이 개량화 되었는데, 그게 아까도 말씀드렸던 우리나라에서 일반벼라고 말하는 자포니카 그리고 인디카, 자바니카, 이렇게 있는데, 자바니카라는 것은 인도네시아를 얘기하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렇네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자바니카하고 인디카는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말하는 일반미하고 안남미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안남미, 맞아. 안남미라고,

    ▷ 서해성 : 안남미는 사실 그 베트남의 중부에 있는 그 지역 이름인데, 어떻게 해서 안남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아마 일본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일제강점기 때,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유래, 기원은 이 정도로 하고, 고고학자들 영역으로 넘기고요. 쌀 맛이 어느 정도 다르다고 그래요?

    ▷ 서해성 : 아까도 조금 간단하게 말씀드렸는데, 자포니카는 쌀알이 둥글고, 짧고, 끈기가 있고, 그리고,

    ▶ 김종배 : 안남미.

    ▷ 서해성 : 안남미라고 하는 것은 길고, 납작하고, 찰기가 없는데, 이게 문제는 세계 쌀 무역량의 90%는 차지한다는 겁니다.

    ▶ 김종배 : 안남미가?

    ▷ 서해성 : 우리는 흔히 일반미가 훨씬 더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유럽이나 뉴욕 가보면 대부분 이 사람들이 안남미 먹고 있거든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통일신라시대 혹은 발해하고 같이 있었던 시대라서 남북국시대라고 그렇게 부르는데, 그때의 이제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북부사람들은 조를 주로 먹었고, 남부는 보리를 먹었고, 귀족은 쌀을 먹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쌀이 널리 재배되기는 했으나 많이 먹을 그럴 정도로 재배되지는 않았다. 사실 고려시대에도 쌀이 그렇게 널리 재배,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진 않았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주로 이제 귀족들이 먹었거나 그걸 이제 화폐를 대신해 쌀을 통용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조선시대 과전법 이후에 비로소 사람들이 이 밥을 먹게 되었다고 해서 이씨들이 준 밥이라고 해서 이밥이라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 김종배 : 이밥이라고 하는 게 기원이 그거에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이씨 조선에서 먹게 되었다고 그래서,

    ▶ 김종배 : 그래서 이밥이에요?

    ▷ 서해성 : 네. 그러다 나중에 발음이 이제 미음, 비읍, 피읖이 같은 발음이지 않습니까? 이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정말 그렇게 된 것은 영조시대 이후에 이른바 국사책에서 보면 광작이 유행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 김종배 : 광작?

    ▷ 서해성 : 널리 농사를 지었다, 지주자들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 이제 관계시설들이 정비가 되었고, 또 모내기가 본격화된 게 그때입니다, 이앙법.

    ▶ 김종배 : 그러면 모내기라고 하는 게 영조시대나 와서야 그러면 나타나는 거예요?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모내기라고 하는 게 이중부담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사실 노동력이 상당히 집중되는 거죠. 하여튼 그러니까 그 시대에 와서 이제 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 김종배 : 그러면 이전의 재배라고 하더라도 그럼 그 이전의 재배법은 모내기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볍씨를 논에 뿌려버린다거나,

    ▷ 서해성 : 직파법이었죠, 직파법.

    ▶ 김종배 : 그런 건 거죠?

    ▷ 서해성 : 모내기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익이 있는데, 우선 뿌리가 튼튼하고, 사실 골을 낼 수 있죠.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유리하고, 또 적당한 숫자만큼을 단위면적당에 정확하게 심을 수 있죠, 모내기를 하게 되면요. 그리고 또 비료를 주기가 더 쉽죠, 그렇게 되면요. 그리고 나중에 벼를 벨 때도 물골에 따라서 물을 적당하게 뺄 수가 있죠. 그러니까 모든 점에서 더, 사실 모내기라는 게 단순히 한 가지만이 느는 게, 그것 때문에 단지 모를 내어서 생산량이 느는 게 아니라 그런 종합적 관리가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 농업생산력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게 모내기가 있을 수 있고,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그다음에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어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가장 큰 게 사실은 쟁기도 그중에 하나이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왜냐하면 그냥 그 해에 계속 거기다 씨앗을 뿌리면 사실 그 지력이 떨어지게 되지 않습니까? 쟁기가 이제 16세기 초에 유럽에 본격적인 쟁기가 처음 등장합니다. 당연히 이 쟁기는 중국에서 건너간 것입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중국이 세계적인 정말 국가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인정해야죠.

    ▷ 서해성 :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당나라 때 장안, 지금의 시안이죠, 그러니까. 인구가 100만 명이었을 적에 그 300년 뒤에 런던 인구가 만 5천 명이었습니다.

    ▶ 김종배 : 당나라 때 인구가 100만이라면 그건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 서해성 : 네. 당나라 때 100만이었는데, 로마는 그 300년 뒤에 송나라 무렵에 3만 5천 명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닌, 그럼 이게 왜 그럼 이렇게 비교하느냐? 바로 쟁기의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농업생산량의 차이.

    ▷ 서해성 : 네. 먹고 살 게 있으니까,

    ▶ 김종배 : 그렇죠. 사람 입이 몇 개인데,

    ▷ 서해성 : 그럼요. 먹고 살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100만 명이 농업생산에 가담 안 하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도시니까,

    ▷ 서해성 : 장안에 살고 있으니까, 도시민이니까, 이 사람들 먹여 살리려면 그만큼은 생산량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맞죠.

    ▷ 서해성 : 그런데 중국은 춘추전국, 우리가 흔히 그럴 때 전국시대 후기부터 볏쟁기, 왜 흙이 나와 가지고 오른쪽으로 이렇게 나가는 것 있지 않습니까? 그 볏쟁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천하라는 개념이 그럴 무렵에 형성됩니다. 천하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사실 제왕이 누굴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그걸 천하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농업생산력과 함께 그렇게 되었다. 쟁기의 등장으로 수렵채집사회가 완전히 종식했다, 이렇게 말할 수 습니다.

    ▶ 김종배 : 우리가 흔히 쌀 문화권,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보면 거의 전 세계적으로 쌀이 있었다면 쌀 문화권을 특정을 할 수 있는 건가요?

    ▷ 서해성 : 네. 특정을 할 수 있죠. 쌀 문화권이 대개 이제 중국 양자강 이남, 장강 이남 지역이 쌀 문화권이고, 장강 이북 쪽으론 밀 문화권이죠.

    ▶ 김종배 : 화북 쪽, 이런 쪽은?

    ▷ 서해성 : 네. 왜냐하면 간단합니다. 밀을 서양, 마찬가지로 서유럽에서도, 유럽이라고 그냥 부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주로 밀을 심죠. 그래서 이제 그 사람들한테는 가면 한국사람들 가면 유럽들판에 가면 제일 놀라게 되는 게 논둑이 없죠.

    ▶ 김종배 : 그렇죠. 맞아요.

    ▷ 서해성 : 네. 논둑이 없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물을 저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쌀은 물을 저장하지 않으면 이걸 유지할 수가 없죠.

    ▶ 김종배 : 그래서 논둑이 필요한 거죠.

    ▷ 서해성 : 물이 다 새어 나가버리면 농사를 어떻게 짓겠습니까?

    ▶ 김종배 : 그러니까, 맞아요.

    ▷ 서해성 : 더구나 한국은 논둑이 정말 세계적으로 발달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산이 많기 때문에 물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중국에서도 이제 논둑이 발전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물을 저장해야 되기 때문이죠. 한국사회가 사실은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사회거든요, 한국이라는 국가가요, 산이 많기 때문에. 그런데 큰 홍수가 안 나는 이유가 논에서 물을 많이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 김종배 : 그렇다면서요?

    ▷ 서해성 : 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농업문화, 그리고 밀 문화가 되면 이제 밭둑이 사라지는 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데 큰 차이가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유가 뭐냐면 벼농사는 물을 수로를 통해서 물을 나눠 써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래서 이제 물싸움이 벌어지죠.

    ▷ 서해성 : 물꼬싸움이죠. 그런데 동시에 그것은 다른 한편 뒤집어서 말하면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 독점이 불가능하죠.

    ▷ 서해성 : 네. 맞아요. 그 얘기입니다. 협업이 불가능한 거죠. 그리고 농사짓는 시간이 대략 두 배쯤 더 들어갑니다. 아까 말씀, 모내기, 김매기, 뭐 여러 가지 해서 더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른바 이웃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집이 한 채 있는데, 들이 넓다, 이건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웃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또 하나는 당위면적당 생산량이 밀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 김종배 : 벼가?

    ▷ 서해성 : 네. 벼가 높습니다. 알곡이 많이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사실은 알곡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거잖아요.

    ▶ 김종배 : 무거워서 그런 거죠.

    ▷ 서해성 : 무거워서 그런 거죠. 네, 그런 거죠. 그러니까 이 당위면적당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그 노동집약적인 부분도 있지만 수확량을 나눠서 먹기 위한 사람도 많이 모이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그런데 그 수확량 얘기하니까 저 어릴 때 그때 뉴스에서 난리가 났었던 게 통일벼 개발했다고 해서,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할 때거든요. 쌀밥만 싸오면 혼나는, 그래서 혼식이 장려가 되었던,

    ▷ 서해성 : 그런 때가 있었죠.

    ▶ 김종배 : 네. 그래서 꼭 도시락 뚜껑 열어서 검사하던 시절이었는데, 통일벼가 개발이 됐다고 이러면 쌀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었거든요. 통일벼,

    ▷ 서해성 : 네. 통일벼 생각나시죠? 정식명칭은 사실 통일형 벼입니다.

    ▶ 김종배 : 통일형 벼? 그건 뭐에요?

    ▷ 서해성 : 우리가 무슨 뭘 만들 적에 스타일이라는 것, 스타일. 타입, 통일형, 했던 건데, 이게 어떻게 나온 거냐면 사실 이걸 개발한 사람은 허문회라고 하는 서울대학교 교수였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그런데 근무를 했냐면요,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 아까 말했던 곳입니다. IRRI라고 하는 것인데, 이게 뭐냐면 미국이 녹색혁명을 주도합니다.

    ▶ 김종배 : 이때?

    ▷ 서해성 : 네. 녹색혁명이라는 게 뭐냐면 사회주의가 집약생산을 해가지고 농업생산력이 많이 늘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미국이 자본주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특히 제3세계라고 흔히 부르는 나라들이 이 미국 생산이 늘지 않게 되면 그 사람들 혹시라도 사회주의에 물들까봐서 이제 이걸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이제 그린레볼루션이라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 김종배 : 녹색혁명?

    ▷ 서해성 : 네. 그래서 이제 멕시코에서 한 번 성공을 했고요. 그리고 이제 필리핀에 옮겨놓고, 필리핀을 중심으로 보면 쭉 위로 보면 쌀 문화권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네. 그렇게 해서 거기에 만들어놓고, 외국인 학자들을 이제 불렀던 거죠, 이런 사람들 와서 해라. 그래서 거기서 근무하던 한국 사람이 거기 명칭으로 IR667이라고 하는 것들 이제 얻어낸 겁니다. 이게 이제 통일형 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것들을 개발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제 그 당시 했던 유명한 슬로건이 ‘통일벼로 통일, 유신벼로 유신’, 이렇게 말했거든요.

    ▶ 김종배 : 그런데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아버지나 이런 분들은 통일벼로 밥 짓는 것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맛없다고.

    ▷ 서해성 :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마저 말씀드리고, 조금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4년에 쌀 생산량이 3천만 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인구가 3천만이었어요. 그래서 그게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딱 그 대응하도록, 이게 3천만 석 돌파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사람들을 갈궜는지, 정말 갈궜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농촌지도자 사람들이 와서 일반벼 심으면 못자리 밟아버리고,

    ▶ 김종배 : 들들 볶았죠.

    ▷ 서해성 : 네. 볶았죠, 정말로. 그렇게 됐던 거죠. 그러니까 그때 이제 그리고 쌀을, 정작 쌀은 많이 나오는데, 쌀을 못 먹게 했죠. 그래서 그때 유행했던 노래가 꽁당보리밥이라는 노래였죠.

    ▶ 김종배 : 맞아. 꽁당보리 기억난다. 네, 맞아요.

    ▷ 서해성 : 혼분식 장려하고, 도리어 그랬던 거죠. 그런데 이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 쌀은 이게 변종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일반벼하고 안남미를 교합한 겁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러다 보니까 한국사람 입맛에는 찰기가 없으니까 맛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밥이 빨리 꺼집니다.

    ▶ 김종배 : 안 먹었어요, 잘, 그래서.

    ▷ 서해성 : 밥이 꺼진다고요. 그런데 두 개를 결합하니까 생산량이 30% 증가한 거예요. 이게 양이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어쨌든 간에 그렇게 됐던 것이죠.

    ▶ 김종배 : 간단히 얘기하면 질보다 양, 이거였지, 뭐.

    ▷ 서해성 : 그렇죠.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74년부터 이게 3천만 석 돌파하고, 그럼 이게 더 널리 심어야 되잖아요? 10년도 못 지나서 아무도 통일벼를 안 심게 되었죠.

    ▶ 김종배 : 맞아요.

    ▷ 서해성 : 10.26 이후에 통일벼 심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통치권자의 죽음과 어떤 식물이 같이 한 건 이게 진짜 처음일 거예요.

    ▶ 김종배 : 그렇네.

    ▷ 서해성 : 그러니까 안 심게 된 거죠.

    ▶ 김종배 : 그때 또 정말로 맛없는 쌀의 어떤 대명사로 해서 불렸던 게 정부미라고 불렸던,

    ▷ 서해성 : 그렇죠. 이게 사실은 군량미로 저축을 했던 그걸 배출을, 방출을 하는데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혼합곡이라고 해서 보리가 이제 오래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쌀보다 더 빨리 이제 풀어지기 때문에 풀기가 없어서, 그러니까 보리는 납작보리를 만들고, 기계로, 거기에 쌀을 적당하게 섞은 혼합곡과 일반벼, 통일벼를 방출을 했는데, 그게 3년이 먹으면 대개 쌀이 찰기가 없어서 한국인한테는 정말 먹기 어려운 쌀이거든요.

    ▶ 김종배 : 누렇게 변했었죠. 그런 것도 봤어요.

    ▷ 서해성 : 네. 그런 것들 이제 사람들한테 먹게 했던 그런 시대였죠. 그런데 이게 정말 심각한 게 이 통일벼가 병충해에 약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그럼 농약을 많이 쳤을 것 같은데,

    ▷ 서해성 : 바로 그러니까 농약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게 통일벼였습니다. 왜냐하면 곤충들이, 우리는 이제 병충해라고 말하는 게 대부분 곤충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곤충들이 농약에 적응을 하게 된 거예요. 점점 더 그럼 농약을 센 걸 써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이게 통일벼와 함께 시작된 겁니다. 오늘날 이렇게 많은 농약을 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서 시작된 거죠.

    ▶ 김종배 : 그렇군요. 통일벼로부터 그러니까 이 농약 과다사용이 시작이 된 거네요, 그러면?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고대사회도 사실은 이 농약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농약이 아니라 병충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신의 저주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면 점점 나중에는 침출액이라든지 와인에다가 이렇게 종자를 담가놔서 소독을 한다든지 올리브 찌꺼기로 서양에서는 병충해를 잡는다든지 이를테면 이런 시도들 다 했어요. 우리도 그렇게 했죠, 사실은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농사직설에도 그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마른 쑥이나 재 등을 이용해서 종자를 보관하거다 그런 데에 담갔다가 빼면 훨씬 더 이듬해에 병충해가 생기지 않은, 이게 세종 때 나온 농사직설에 들어있는 책 내용이에요, 이게요.

    ▶ 김종배 : 그런 방법을 썼었구나.

    ▷ 서해성 : 네. 그리고 그랬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이걸 사용하게 된, 유럽으로 이제 치면 1874년 무렵에 DDT,

    ▶ 김종배 : DDT.

    ▷ 서해성 : 그 유명한 DDT가 뛰어난 살충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거고, 그러면서 살충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보통 농약이라고 했는데, 지금 말씀한 살충제, 이런 거고, 또 농약은 다른 개념으로 비료, 비료가 등장을 하는 거잖아요.

    ▷ 서해성 : 네. 비료도 같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농약을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이제 나치의 연구자였던 슈레더라는 사람이 독가스를 연구하다가 살충제를 제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게 개발을 한 겁니까?

    ▷ 서해성 : 네. 이게 농약과 인명살상이라고 하는 게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라는 말씀을 같이 드리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대사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를 지금 오늘날에 왜 유기농 하는 분들은 그것들을 다시 따라하고 있다, 복원하고 있다.

    ▶ 김종배 : 고대의 농법으로 돌아가는 거고,

    ▷ 서해성 : 네.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실은 제가 이 방송을 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정확하게 농약을 얼마나 이 나라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사실은 없더라고요, 사실은요.

    ▶ 김종배 : 그런데 하여간 많이 사용한 건 저도 기억이 나요.

    ▷ 서해성 : 네. 엄청나게 사용을 하고 있고요.

    ▶ 김종배 : 진짜로 많이 썼었어요.

    ▷ 서해성 : 1975년에 농약회사가 154개였는데, 지금 현재 대략 1,2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 김종배 : 현재?

    ▷ 서해성 : 네. 농약회사가 그렇게 나와 있고, 단위면적당 농약생산량은 그렇게 줄지 않고 있다는 것도 통계에 나와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농약이 좀 줄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걸 같이 생각하는 거죠.

    ▶ 김종배 : 그런데 앞서 시작을 하면서 폭탄 이야기까지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되는 얘기에요?

    ▷ 서해성 : 그러니까 독가스를 만든 나치의 연구자 프리츠 하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동시에 질소 독가스 개발자인데, 이 사람이 질소폭탄을 만든, 질소비료를 만든, 그러니까 그런 사람입니다. 질소에서 이제 비료를 추출하는 거잖습니까? 질소라는 건 공기 중에 있는 거니까요. 이게 나중에 폭탄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1915년에 처음 독가스를 사용했는데, 그때 이 사람이, 프리츠 하버가 이 독가스 공격을 실제로 지휘했던 사람입니다.

    ▶ 김종배 : 최초의 화학전입니까, 그러면?

    ▷ 서해성 : 생화학전을 처음 지휘했던 사람이죠. 그러니까 그래서 이 사람의 별명이 독가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여전히도 우리 농약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라는 말씀을 제가 드리는 것이고요. 그때 그런 걸 만들었던 회사, 그런 회사들이 없어지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 중요한 농업회사 혹은 씨앗회사 혹은 화학회사, 이런 일로 현재도 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 김종배 : 이론상으로는 그러니까 비료공장은 만일의 사태에는 군수공장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로도 연결이 되는 거겠네요, 그러면?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전환되는 겁니다, 그렇게. 현재 우리도 그렇게 분류하고 있는 거고요, 실제로요. 지금 이제 그때 나치회사였던 회사 중에 하나가 유명한 그 바이엘입니다.

    ▶ 김종배 : 바이엘?

    ▷ 서해성 : 네. 그런데 바이엘이 몬산토사잖습니까? 그런데 불가능하거든요. 바이엘보다 몬산토가 훨씬 더 큰 회사거든요. 뒤에 이제 그런 국제금융자본들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듀퐁이 더 큰 회사로 확장이 되고, 신젠타가 중국회사와 합병을 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런 모든 것들과 카르텔을 맺고 있는 게 이게파르벤, 독일말로, IG 파벤이라고 영어로는 그렇게 읽는데, 그게 뭐냐면 바로 나치 전범기업입니다. 바로 아우슈비츠에서 그런 독가스, 신경가스, 이런 것들 생산했던 회사이거든요. 그러니까 지클론비라고 그러는데, 그 폭탄 이름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 생산했던 그런 회사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재도 이런 살충제나 살균제나 혹은 제초제나 이런 것들을 같이 생산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요. 월남전에 사용했던 에이전트 오렌지, 이런 것들이 일정하게 변형되어가지고 여전히도 제초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같이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인간이 살기 위해서 먹으려고 하는 쌀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비료를 생산을 했는데, 또 한편으로 그것이, 똑같은 어떤 기법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여졌다, 이런 얘기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참 그런 것 보면 아이러니라고 해야 되는지, 뭐라고 해야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이럴 때 참 하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하나는 생명을 파괴하는, 이게 똑같은 기술인데,

    ▶ 김종배 : 그러니까,

    ▷ 서해성 : 그러니까 정말 그때 인도 이야기가 참 맞는 것 같습니다. 물은 똑같은 물인데, 소가 먹으면 젖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 서해성 : 사용자에 달려있다.

    ▶ 김종배 :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누가 어떻게 쓰느냐, 이게 결국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네요.

    ▷ 서해성 : 그렇겠죠. 그런데 오늘날 또 GMO가 참 큰 문제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GMO를 시험하고 있는 곳이 27개가 그런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 김종배 : 유전자변형농산물, 이렇게 봐야 되는 거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중에 상당수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게 유전자변형 벼라고 합니다. 우리 국민들 현재 먹고 있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앞으로 이게 농업생산 문제가 생겼을 적에, 식량문제가 생겼을 적에 아주 중요한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그런 상황인데, 이런 데에 대해서도 우리가 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 김종배 : 그런데 다시 이제 우리 역사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쌀과 관련해서 꼭 짚어야 되는 인물이 있나요?

    ▷ 서해성 : 네. 한 분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분은 이미 얘기했죠. 박정희라고, 아까 통일벼 얘기할 때 얘기를 했고, 한 분 더,

    ▶ 김종배 : 통과하고, 네.

    ▷ 서해성 : 네. 한 분 더 얘기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여기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요. 캘리포니아에서 쌀을 심어가지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 있습니다.

    ▶ 김종배 : 맞아요. 성함이 어떻게 됐었죠?

    ▷ 서해성 : 김종림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 당시에 이제 미국 신문에 라이스킹, 쌀왕, 이렇게, 백미왕, 이렇게 소개됐던 분이신데요. 이분이 이제 22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 있는 철도노동자, 이런 것들 했는데, 이분이 이제 1차 대전이 터지니까 전체적으로 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쌀 생산을 해가지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습니다.

    ▶ 김종배 : 그 돈으로,

    ▷ 서해성 : 네. 그 돈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북쪽으로 좀 가면 사막이 나오는데, 거기에 있는 윌로우스라고 하는 곳에서 비행장을 만들고, 그리고 비행기를 사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군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독립군들을 양성했던,

    ▶ 김종배 :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그때 소개를 해 주셨던 분, 맞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하나의 쌀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쌀 한 톨이, 그걸 잘 보여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떡에 이어서 제2탄으로 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 서해성 : 네.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정리하겠습니다.

    ▶ 김종배 : 네.

    ▷ 서해성 : 흔히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들어있다,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또, 밥이 하늘이다, 이런 말들이 있는데, 이 말은 밥이 세상과 생명을 살리는 중심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이제 곧 지금 벼를 베는 철입니다. 가을 추수는 이런 아주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추수하는 일을 하늘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들 했습니다.

    ▶ 김종배 : 그랬나요?

    ▷ 서해성 : 네. 그렇습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그런데 그 하늘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나눠먹지 않으면 하늘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죠. 여기서 하늘이라는 것은 나눠먹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추석 연휴가 또 끝나가고, 또 그러고도 또 연휴가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옆에서 힘든 분들 같이 돌아보는 그런 가을걷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종배 : 추수 직전에 논, 그러니까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에 물결치는 장면 보면 정말 장관인데, 그것도 정말 장관입니다.

    ▷ 서해성 : 시골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 김종배 : 이렇게 박학다설 마무리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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