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평창올림픽 때 땅굴작전” 단톡방에 가짜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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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01. 오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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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③ 카카오톡 가짜뉴스 체험기

평양공동선언 뒤 극우 단톡방

회담 비난 논평·극우채널 링크

‘문재인 규탄집회’ 공지 떠

가장 많이 쓴 말 하나님·미국·문재인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는 곳에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한겨레>는 <한겨레21>과 함께 두달 남짓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세력을 추적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유튜브 채널 100여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개를 전수조사하고 연결망 분석 기법을 통해 생산자와 전달자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가짜뉴스를 연구해온 전문가 10여명의 도움을 받으며, 가짜뉴스 생산·유통에 직접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만났다. 가짜뉴스의 뿌리와 극우 기독교 세력의 현주소를 해부하는 탐사기획은 4회에 걸쳐 이어진다.

<한겨레>는 관련자들의 초청으로 카카오톡에 개설된 가짜뉴스 채팅방 31개에 들어갔다. 지난 8월31일부터 9월15일까지 이들 채팅방에 올라온 글들을 모두 내려받아 분석했다.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들을 추출해 이를 시각화하고, 가짜뉴스가 어떻게 유포·확산되는지 관찰했다. 채팅방의 인원수는 많게는 700~800명, 적게는 수십명 규모였다.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이 나온 9월19일, 극우성향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들은 당혹과 충격으로 부르르 떨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국 경제는 아작났다.” “소름 끼치는 남북 비밀 정상회담의 비밀.” “남북정상회담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인가.”

처음엔 분노에 찬 개인들의 소박한 성토가 많았지만 곧 ‘북에 다 퍼주려고 한다’거나 ‘공산주의자 김정은을 옹호하는 거짓 위정자의 실체가 곧 드러날 것’과 같은 전통적 반공 신념에 호소하는 주장들이 상소문처럼 쏟아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 논평, 김진태·김문수 등 몇몇 정치인의 남북정상회담 비난 발언,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기사들을 잇달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채팅방은 ‘드디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300개 이상 있다는 ‘300+’ 표시가 순식간에 생긴 방도 있었다. 이튿날에는 ‘긴급공지 5000만 국민과 동맹국 미국을 속이고 김정은에게 공산 혁명 전권을 위임한 문재인 이적세력 방북 귀환 규탄 긴급집회’라는 알림이 거의 모든 채팅방 상단에 공지사항으로 떴다.

보름 동안 추적 관찰한 채팅방들은 밤낮없이 분주했다. 한 가짜뉴스 연구자는 “꼭 알람을 꺼둬야 한다. 처음엔 재밌을지 모르지만 계속 보다 보면 우울증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이들 채팅방은 주로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통로로 기능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산 문현동 금 도굴 사건’과 같은 가짜뉴스가 올라오면 ‘좌익인생 24년 김문수가 말하는 문재인 정권’ ‘문재인 일자리 정책의 거짓말’ 등 문재인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정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올라왔다. 읽은 사람이 빠르게 늘면, 이어서 ‘나라 지키는 자유한국당 가입 원서’를 안내하는 페이지나, 더 폐쇄적인 에스엔에스(SNS)인 ‘네이버 밴드’ 가입 유도 게시글들이 따라붙었다.

가짜뉴스를 올린 이들은 관련 내용이 있는 유튜브 채널 주소를 계속 공유하며 관련 링크를 반복적으로 퍼뜨렸다. 행여 문재인 대통령 관련 긍정적 뉴스가 나오면 ‘속으면 안 된다. 문재인 금 도굴은 아느냐’고 훈계하고 남북 화해 움직임에 대해서는 ‘땅굴은 알고 있느냐’고 힐난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아이디 ‘안○○’ 등 복수의 가입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기사가 링크되면 반복적으로 ‘청와대가 태평 김일선 교수(유튜브 채널 운영자)에 대하여 문현동 금 도굴 사건 명예훼손죄로 부산지방경찰청에 조사 및 처벌을 지시’했다거나 ‘평창올림픽 때 땅굴작전으로 북한 특수부대를 남한 경찰복과 군복으로 위장시켜 남한을 접수하려 했던 계획이 있었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이 와중에 한편에선 끊임없이 틈새를 노려 건강 관련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여자들이 주로 건강에 관심 많은 고령층이라는 점을 노린 정보들이었다. “항암제는 맹독성으로 암을 고칠 수 없다” “206가지의 씨앗에서 추출한 영양물질인 ○○를 먹으면 손상된 장기가 재생된다” 등의 가짜뉴스가 외국 병원의 임상 사례와 함께 올라왔다.

가짜뉴스 카톡방에서는 모든 문제를 음모론적 시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정어의 사용빈도가 높았다. 마귀(7464회), 죄(7389회), 지옥(5262회), 거짓(4257회), 멸망(3423회) 등의 단어가 정세와 여야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높은 빈도로 연결되며 등장했다. 기독교인이 많다 보니 성경에 대한 인용도 많았는데, 특히 자주 등장한 성경은 요한복음(3498회), 야고보서(2878회)였다.

‘하나님’은 가짜뉴스 카톡방에서 압도적 1위(4만2000회)로 등장한 단어다. 그 뒤를 잇는 단어가 ‘미국’(1만8409회)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하나님 다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존재였다. 3위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문재인(1만6445회)이었는데, 내용은 비난 일색이었다. 이밖에 북한(1만1472회·5위), 신천지(1만1009회·6위), 김정은(7793회·12위) 등이 저주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됐다.

이들은 모든 기성 정치인과 모든 기성 언론을 불신했지만,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일부 유튜브 채널은 신뢰했다. 특히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이 스타 언론인 대접을 받았다. 이용희(에스더기도운동), 김일선(태평 김일선), 한성주(케이에스케이티브이), 변희재(미디어워치티브이), 지만원(시스템뉴스), 손상윤(뉴스타운티브이) 등의 이름이 카톡방에 자주 등장했다.

이들 방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주기적이고 강렬한 소수자 혐오 정서였다. 성소수자, 이슬람, 난민 그리고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글들은 대체로 ‘교수·교회 성직자’에게 받았다며 유포되는 글이 많았다. 이들은 소수자 혐오를 복합적으로 엮어 말하는 것을 선호했다. 예컨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공산당+섹스=젠더 차별금지법’의 제목을 단 가짜뉴스가 공감 속에 퍼졌다.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슬림을 들여와 개신교를 죽이는 동시에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을 늘려 오랫동안 통치하겠다는 뜻”이라거나 “인민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뜻”으로까지 비약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도입을 앞두고 있는 병역거부자 대체 복무제는 “이단 확산을 꾀하는 개신교 약화 목적”이라며 “지금 사탄의 세력이 밀려오는데 주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라고 신앙에 호소했다.

가짜뉴스 카톡방은 사실성과 연관성(맥락)이 거세된 채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이 날것의 언어로 부딪히는 전쟁터였다. 이들에게 사실과 정보는 특정 정치적 견해에 끼워 맞춰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는 “정권교체 이후 보수세력이 소셜미디어에서 응집해 결속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에게 가짜뉴스는 대화를 할 소재로 충분할 뿐 사실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가짜정보들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H6s김완 기자, 변지민 <한겨레21>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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